지금 나는 행복해요.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흙과 물 그리고 햇빛만 있으면 살 수가 있어요. 강정에 온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에요. 이 땅 위에 서서 모멸감을 받으면서도 왜 이 일을 하고 있냐면 순수한 이상과 가치에 대한 희망 때문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있어요. 나는 꿈을 꿔요. 구럼비 속에 죽어가는 생명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는 꿈을요.
---「땅에 평화를 심는 사람, 정선녀」중에서
지킴이들이 여기에 살거나 머무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누군가 하지 않은 일을 계속하고 있잖아요.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거죠. 자신이 살아온 삶이나 육지에서의 생활이나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강정에 있는 친구들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도 강정에 오면서 기본적으로 이어온 내 삶을 포기하고 왔고요. 근데 여기 온 사람 중에 그런 것을 티내는 사람은 없어요. 그냥 묵묵히 있는 거죠.
---「사람 때문에 울고 웃으며 유토피아를 만난, 하쿠」중에서
맨발로 구럼비를 걷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파 계속 눈물이 났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양윤모 선생님을 만나 강정 이야기를 들었어요. ‘도대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 두 시쯤 영진 삼촌, 종인 삼촌이 구럼비 끝에 앉아서 울고 있는 걸 봤어요. 그 삼촌들이 통곡하고 화를 내면서 이야기하고 계셨는데 낯설고 격적이었죠. 그때가 2011년 4월이었어요.
---「강정에서 할망이 되고 싶은, 테라」중에서
강정에서의 시간은 내면적인 성찰과 성장의 시간 이었죠. 이 세상의 많은 존재가 깊게 연결되어 있고, 내가 여기서 뭔가를 하는 게 저쪽에 엄청나게 영향을 준다는 자각을 했어요. 강정마을 주민들을 만나서 몸과 마음으로 이 진실을 확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설사 내가 방구석에 처박혀 울고 있다고 해도 혼자이지 않았다는 것, 구럼비도 나와 연결되어 있고, 시골 분들의 눈물도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게 내가 강정에서 찾은 삶의 진실, 진리인 거죠.
---「강정에서 할망이 되고 싶은, 테라」중에서
백배에 매일 가고 인간띠잇기 진행을 하면서 활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나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시간에 안전하게 참여하는 방법을 안내해요. 백배와 인간띠잇기는 나에게 힘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만드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해군기지 앞에 우리의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에요.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평화운동 끝나지 않았구나’ 볼 수 있는, 현장 사진을 통해서 멀리 있는 사람들도 ‘평화운동을 이어가고 있구나’ 알 수 있는 그 일을 매일 하고 있어요.
---「관계와 변화가 쌓여가는 역사적 장소를 지키는, 카레」중에서
매년 새해가 될 때 ‘언제까지 이 싸움을 하게 될까? 준공되면 어떻게 될까? 기지가 완공된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걱정되기도 했어요. 근데 기지가 준공되고 얼마 있지 않아서 경찰도 용역도 사라졌어요. 몇 년간 매일 같이 경찰과 대치했던 상황이 사라지고 나니 얼떨떨했어요. 해군기지가 완공되었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보다 앞으로 뭐하지 하는 생각이 컸어요. 한 동안 지킴이 그룹에서도 미래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 방향성을 고민했고,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식을 알리는 사람, 혜영」중에서
강정에서 지킴이들의 활동이 이어질 수 있는 힘은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해군기지 반대운동 외에 다른 활동들이 생겨나는데에 있는 것 같아요. 강정에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가 생기고, 비슷한 관심사들을 확인하면서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요. 또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 것도 힘이 돼요. 강정에서 투쟁에도 같이 할 수 있지만, 자신이 가진 주제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다양한 실험을 할 수도 있고요.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않고 잠깐 살아볼 수도 있고요. 아름답고 풍요로운 제주의 자연을 누리는 것도 힘이 되는 경험 중에 하나에요. 사람들이 머무르며 각자의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강정지킴이들과 투쟁에도 힘이 돼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식을 알리는 사람, 혜영」중에서
해군기지가 폐쇄되면 제일 기쁘겠지만. 그래도 즐거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에요. 강정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요. 평소에 나는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그런데 강정에 수많은 국내, 국제 활동가들이 오니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삶의 네트워크가 커졌어요. 내가 강정이 아니었으면 이 사람들을 어디서 만나겠어요. 그 사람들과 한 공간을 숙제처럼 안고 있게 되니까 그 공간이 삶의 거점이 되고 고향이 됐어요. ‘해군기지’라는 숙제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된 거죠. 10년 전에 강정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그때는 아주 소수였어요. 불이 거의 꺼져 있었죠. 하지만 이 투쟁을 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언젠가 불은 다시 피어오른다는 것을 배웠어요. 운동이 지치고 소강상태가 된 것으로 보일지라도 얼마든지 다시 피어오를 수 있어요.
---「마지막 불씨를 지키고 싶은, 최성희」중에서
예전에 동티모르에서 전쟁으로 모든 게 폐허가 됐는데 커다란 나무가 살아남았고 그 나무 아래에서 평화학교를 했던 기억이 났어요. 무너진 학교 건물 앞에 파괴되지 않은 나무가 살아남은 희망 같았거든요. 해군기지 정문에서 우리가 하는 활동이 살아남은 희망 같아요. 눈앞에 보이는 전쟁을 회피하지 않고 백배와 인간띠잇기를 하며 하루하루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지요. 그날의 일이 나에게는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강정 그리고 예멘 난민의 경험이 교차되는 순간이었어요. 평화는 갈등이 없고 순탄한 게 아니라 현실을 인식하고 직면하는 것, 고통스러울지라도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학교에 기대어, 호수 정주」중에서
강정 뿐 아니라 평택 대추리, 밀양이나 성주 소성리처럼 강정과 함께 역사를 쌓아가는 현장들이 있잖아요. 멀리서 볼 때와 직접 현장에서 함께 할 때 그 투쟁에 대한 감각은 분명 달라요. 오랜 시간 이어지는 투쟁 사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현장에 대해 상상하기 어렵죠. 자신들이 경험한 세계만큼 질문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싸움이 졌다거나 끝났다거나 하는 말들로 현장의 투쟁을 평가해서는 안돼요.
---「살아있는 학교에 기대어, 호수 정주」중에서
여기 있는 친구들의 힘은 의외성과 고집스러움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예를들면 해군에 항의하는 표시로 텐트를 치고 자고 자장면이랑 짬뽕을 배달시켜 먹어요. 정월대보름에는 쥐불놀이, 연날리기도 하고 이동식 난로를 가져와 군고구마도 구워 먹고요. 또 어떤 친구들은 요가도 하고 춤도 추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며 뮤직비디오 찍듯이 공연도 해요. 또 분필로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와서 전시회도 하고요. 이게 다 투쟁이고 운동이죠. 무겁고 힘들 수 있는 일들을 재미있는 놀이로 전환 시켜 함께 하는 거죠. 이런 걸 기지정문 앞에서 총을 멘 군인들 앞에서 해요.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면 웃겨요. 재기발랄하고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고 놀라는 순간들이 많아요.
---「투쟁 속에서 보금자리를 만드는 사람, 반디」중에서
강정투쟁에서 지킴이들이 갖는 독특한 위치가 있어요. 마을 주민에도 제주도민에도 끼지도 못한 위치에요. 완벽한 운동 조직도 아닌 이 애매한 자리에서 낼 수 있는 우리의 목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애매한 위치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뭐였을까? 끈질기게 원칙을 고수하면서 해군기지 폐쇄를 외치는 것, 소수자들이 연대할 수 있게 공간을 열어놓은 것인 것 같아요. 주민들과의 관계가 이전처럼 가깝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그래서 다양한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한 덩어리로 묶여지면 우리의 색깔이나 목소리를 잃어버릴 것 같아요.
---「어떤 미래를 기다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평화운동가, 딸기」중에서
지킴이들을 보면 군사주의와 자본주의적인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걸 느껴요.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며 나도 더 단순하게 삶을 정돈해서 살려고 노력하게 돼요. 말과 행동을 단지 투쟁 안에서의 일치뿐만 아니고, 삶의 방식 안에서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여기에서 뭔가를 계속하게 하고, 할 만하게 해줘요. 이곳에 없었으면 운동과 생활을 분리한 채로 활동했을 것 같아요. 평화바람과 강정에서 검소하게 살면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려고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삶의 방식이 제일 많이 변했어요.
---「어떤 미래를 기다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평화운동가, 딸기」중에서
재작년 영화 제작지원 인터뷰 심사위원한테서 질문을 받았어요. “강정에 아직도 살고 있냐, 그런 곳에서 사는 건 어떠냐”고 묻는데 무례하다고 느꼈어요. ‘그런 곳’이라고 규정짓는 말이 차별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보통 그런 질문을 할 때 너는 나랑 다르지 하는 걸 기본으로 딱 깔고 가는 거죠. 어떤 사람은 그걸 존경의 표현으로 사용할 수도 있죠. 거기서 싸우시는 거 대단하다 하면서. 그렇지만 내 삶의 철학 안에서는 그것도 차별 같아요. 강정이라는 현장을 자신들의 삶과 구분 지으며 특별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니까요. 별생각 없이 다양한 경로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강정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숙연해져요. 투쟁현장에 있는 게 어떠냐고 물으면 아직 대답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예술가와 활동가를 넘나드는 영화감독, 그레이스」중에서
친구들이 어떤 일을 겪으면 그 파동이 나에게 오잖아요. 강정 공동체는 일종의 3D 거미줄 같아요. 개인적인 안부를 나누는 사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강정이라는 투쟁 현장에서 연대를 하다 만난 사이예요. 서로를 일하는 동료로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에요. 정치 신념을 공유하는 무리도 아니고요.
---「예술가와 활동가를 넘나드는 영화감독, 그레이스」중에서
강정의 평화운동과 내가 관심 있던 이야기들의 만남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강정에서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도 하게 되었어요.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통해서 외국의 다양한 병역거부 사례를 접하게 됐는데요. 징집 대상인 남성들의 병역거부 뿐아니라 징집 대상이 아닌 여성이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운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페미니즘과 평화운동의 교차성이 드러나는 부분이에요. 마을에서 활동하는 친구들 중에서 군사주의에 반대하며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외국의 사례를 공유하면서 우리도 해 보자고 했죠. 세 명의 친구가 2018년에 여성병역거부 선언을 했어요. 강정에서의 나는 강정과 외부의 접점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주 지역 혹은 육지에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연결하는 일들을 하게 되었어요.
---「따뜻하고 열려있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이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