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현재, 한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약 2,900만 명이고, 사망자는 약 3만 2천 명이다. 월드오미터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미국, 인도, 프랑스, 독일, 브라질, 일본에 이어 일곱 번째로 많고, 누적 사망자 수는 34번째로 많다. 이 커다란 숫자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숫자 하나하나는 바로 생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배우이자 작가인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의 책 『죽기 위해 사는 법』에서 지진으로 인한 재난 사고에 대해 언급하면서, 가령 “5천 명이 죽었다는 걸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한 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라며, 그것은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고 말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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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사별 경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면담하지 못했지만 코로나시대라는 경험맥락속에서 코로나시기 사별 경험과 애도와 추모문화의 변화과정과 현실을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에 대한 어렴풋한 상을 그려내려 했고 나름 애도 코뮤니타스라는 실천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사별 경험의 사례수가 작고 제한된 시간의 면담이었기에 일반화하기 어려운 한계를 갖는다. 다만 방향이 정해졌으되 구체화되는 과정은 여러 변수의 작용에 의해 움직일 것이기에 후속 연구에서 이를 좀 더 다루어야 한다. 지난 인간의 역사에서 죽음의 역사가 늘 공존하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듯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이미 우리와 함께 산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의지와 희망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의 삶을 위해 죽음을 새로이 인식하고 애도문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일은 지금의 위기의 해법을 구하는 과정이며, 희망과 경각심과 변화의 측면에서 이를 이해할 때 위기를 기회와 희망으로 바꿔내는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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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현재 시행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유의미성을 철학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물음을 제기하였다. 첫째,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하는 죽음을 어떤 의미에서 ‘고독사’로 규정짓는가? 둘째, 그렇다면 왜 사망 직전까지 육체적인 검사와 치료에만 집중하는가? 전자의 경우,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하는 죽음을 고독사로 규정할 수 있다면, 이것은 공간적으로 홀로 거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거주할지라도 임종 과정에서 연명장치에 의존한 후 의사의 사망선고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가족과의 작별인사나 주변의 정리도 거의 생략되는 관계 단절에서 오는 죽음으로 규정되며, 이러한 죽음을 ‘관계적 고독사’로 고찰하였다. 그 결과 임종기 환자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통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생애 마지막을 가족, 주변인과 함께 함으로써 병원 치료 중 관계적 단절로부터 오는 고독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것은 연명의료결정법의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통해 유의미하게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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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안락사는 적어도 고려해 볼 수 있는 죽음의 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의학의 놀라운 발전은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연장시켰고, 모든 질병을 만성질환으로 변화시켜 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늙고 병들지 않을 수는 없더라도 좀처럼 죽지 않을 수는 있다. 이렇게 연장된 삶 속에서 이전에는 불가분한 것으로 보였던 노화와 죽음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더 이상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사람들은 늙는다는 것, 약해진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혐오하며, 이 두렵고 혐오스러운 노화를 피할 수만 있다면 죽음은 결단할 수도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노화는 무엇보다 피하고 싶고 혐오스러운 것이지만 죽음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무엇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락사 도입을 찬성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안락사에 대한 증가하는 선호는 동시에 말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주는 증표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조력존엄사법이 ‘제안 이유’에서 인용하고 있는 80%에 달하는 안락사에 대한 찬성 여론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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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적인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죽음은 당사자에게 종결 그 자체를 의미하였지만, 장례는 산 자들에게 사회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에 따라서 장례 도상이 그려진 아티카식 도기화는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성소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그랬듯이 공동묘지에서도 조형물을 세우는 주체의 사회적 위신과 명예가 고려되어야 했다. 따라서 장례는 망자의 시신과 그의 삶의 흔적을 돌보는 일과 산 자들의 위신과 명성을 함께 돌보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 아테네에서 기원전 6세기경에 ‘솔론의 법’과 기원전 4세기 말의 ‘사치금지법’ 등과 같은 장례와 묘소 조형물에 관한 법령의 존재는 아테네에서 장례 문화가 민감한 사회적 문제로 지속하였다는 점을 방증한다.
--- p.173
죽음은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양적 혹은 계량적 측정만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죽음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체험되고, 체험하는 이들에게 상이한 시간과 공간적 의미를 낳는다. 죽음은 수많은 질적 차원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학은 그와 같은 죽음의 문제와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현상학적 이해를 요구한다. 의료 현장에서의 죽음은 여러 모습을 띤 채 드러나며, 현상학적 체험 연구는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띤 죽음의 질적 의미를 살피고 그로부터 최상의 의미를 도출한다. 오늘날 우리는 죽음과 관련해서 존엄사, 안락사, 호스피스 완화, 연명의료, 낙태 등의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의학은 자연주의적 이해를 넘어 현상학적 체험 연구를 동반할 때 더 나은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죽음의 다양한 장면들에 대한 포용은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태도이며 그러한 장면들로부터 발견되는 상이한 의미들은 오히려 죽음에 관한 실용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현상학적 체험 연구는 죽음 체험의 다양한 양상과 함께 그 양상들의 본질 규명을 통하여 죽음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을 내세운다. 그런 점에서 현상학적 질적 체험 연구는 나름의 실용적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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