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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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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314g | 113*183*30mm
ISBN13 9791198030726
ISBN10 119803072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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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버터와 설탕, 레몬과 달걀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다섯 시가 되자 타이머가 울렸고, 나는 케이크를 꺼내 오븐 위에 올려놓았다. 집 안은 고요했다. 아이싱 초콜릿이 담긴 그릇이 바로 코앞 조리대에서 대기 중이고 케이크는 오븐에서 막 꺼냈을 때가 가장 맛있는 법이니, 나로서는 도무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나는 케이크 팬의 옆면, 가장 눈에 안 띄는 부분으로 손을 뻗어 진한 금빛이 도는 따뜻한 스펀지 케이크를 한 덩어리 떼어냈다. 초콜릿을 듬뿍 골고루 묻혔다. 통째로 입 안에 집어넣었다.
--- pp.15~16

분명 초콜릿 맛이었지만, 그 맛이 퍼지며 흔적을 남기는 동안 동시에 내 입안에 가득 차는 것은, 하찮음과 위축된, 화가 난 느낌의 맛, 어쨌든 엄마와 연관이 있는 듯한 거리감의 맛, 엄마의 복잡한 소용돌이 같은 생각의 맛이었다. 마치 아스피린을 여러 알 집어 먹게 만드는 두통 때문에 이를 앙 다무는 엄마의 느낌까지 맛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 좀 누웠다 올게…… 하던 엄마 말 속의 말줄임표처럼 침대 협탁 위에 한 줄로 놓여 있던 아스피린의 맛 같은……. 그중 어느 것도 아주 고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맛에서는 뭔가가 빠져 있는,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한 맛이 났다.
--- pp.20~21

우리는 잠시 같이 서 있었다. 오빠는 깊고 한결같은 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천천히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 안테나 같은 속눈썹과 손가락 끝. 나는 오빠가 가족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뭘 모르고 있을까도. 그는 어떤 가족 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p.189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감정을 맛으로 느낄 수 있거든.
--- p.220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도 있고, 기쁨과 공포가 한데 섞이는 기묘한 저녁도 있는 모양이다. 수프 맛은 내 안을 통째로 씻어내주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친절하며, 집중돼 있고, 온전했다. 그것은 당연히, 두말할 나위 없이, 내가 먹어본 최고의 수프였다. 요리에서 진정한 안식처를 찾은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잦아들었다.
--- p.290

음식 안의 균형은 날마다, 한 입 한 입 먹을수록 점점 변해갔다. 엄마의 생일이 돌아왔을 때 나는 엄마를 위해 크림치즈를 얹은 코코넛 케이크를 구웠고, 우리는 커다랗게 물결무늬가 진 케이크 조각을 놓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여덟 살. 내가 만든 케이크가 속삭였다. 넌 아직도 여덟 살로 돌아가고 싶어 해, 네가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로.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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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오빠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목성이야.
왜 저기 있는 거야?
그냥 나타난 거야. 오늘 날짜에 맞추어서.

이 소설에서 오빠가 로즈에게 다가와 먼 하늘에 떠 있는 목성을 가리키는 대목을 좋아한다. 늘 곁을 주지 않던 존재가 어느 날 스스로 가까이 와 무엇인가를 툭 말할 때. 그 말은 언제나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던 이의 내면에 오래 자리 잡는다.

엄마가 만든 케이크에서 엄마의 텅 빈 마음, 스산한 외로움의 맛을 느끼는 로즈의 이상한 능력도 어느 날 그냥, 그렇게 찾아왔다. 모두의 감정에 공명하지만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는 로즈의 소리 없는 메아리를 따라가며 이 책을 읽었다. 한 소녀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능력이 실은 그들에게도 있었음을 깨달을 때, 이 따뜻하고 서글픈 이야기는 환상적으로 아름다워진다. 서로가 아파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은 이미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차분하고 절제된 문장과 밀도 높은 감정으로 속삭여준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소설, 나의 책장에 꽂아두고 평생 헤어지고 싶지 않은 책이다.
- 이도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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