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는 ‘피해’가 아닌 ‘가해’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가해자를 향해야 할 비난은 구부러진 화살 마냥 피해자를 향한다.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말았거나 아랑곳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가해자다. 성폭력 증거가 없으면 피해자는 ‘명확한 가해자’가 되고, 성폭력 증거가 명백하면 ‘합의도 해주지 않는 야박한 가해자’가 된다. 가해자가 자살하면 피해자는 ‘살인녀’가 되고, 가해자가 이혼하면 ‘가정파탄범’이 되고, 가해자가 파면되면 ‘잘나가는 직장상사 모가지 자른 사람’이 된다. 지독한 편견이다. 이 견고한 편견에 균열을 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쓴다.
--- pp.6~7
성폭력 피해자들이 죽지 못해 겨우 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면서 언뜻언뜻 힘들었던 기억으로 주춤하는 나날들이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듯이 피해자들도 그러할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성폭력 피해를 ‘영혼의 살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인은 존재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피해자의 보통의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 뿐이다.
--- pp.7~8
폭력에 관한 강의를 할 때, 청중에게 폭력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어보곤 한다. 대부분은 ‘때리는 것, 욕하는 것, 집어던지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어떤 ‘행위’라는 것이다. 행위에 초점을 두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그 행위가 나온 동기에 따라 어떤 사안은 폭력으로 보지 않게 된다. 행위자의 해명에 공감하면서 ‘폭력’의 딱지를 떼어준다. … 폭력이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너무 무서워서 눈앞이 캄캄한 것, 너무 겁이 나서 말문이 막혀 버리는 것, 너무 떨려서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은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피해자 입장’에서 느끼는 폭력이다. 우리가 피해자 관점에 서지 않으면 제대로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 pp.24~25
‘피해자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피해자다움’은 단언컨대 허상이다. 피해를 입은 후 가해자인 상사가 집들이한다고 직원들 초대하면 같이 갈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동료들이 웃기는 농담을 하면 웃고 깔깔대기도 한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가해자에게 멀쩡한 척 배꼽 인사를 하며 근무할 수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은 아니어도 성폭력 피해 입었다고 일할 권리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성희롱 피해 입었지만 전공필수 과목인 가해자 강의 듣지 않으면 졸업 못 하니 수업 들을 수밖에 없다. …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친한 친구들 만나면 잠시나마 즐겁다. 그래서 SNS에 친구들과 놀아서 행복하다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피해는 피해인 것이고, 그 이후 삶은 피해자의 성향, 기질, 환경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이어진다.
--- p.53
성폭력 피해자는 울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검사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일까 아니면 어디 교과서에 그런 내용이 실려 있나 저명한 교수가 쓴 논문에 나오는 학설인가 … 범죄 피해에 대응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기질, 성장 과정, 주변의 지지기반 등 개인적 환경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코믹 영화를 보면서도 남들 다 웃는 장면에서 눈물샘이 빵 터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울지 않았다고 해서 슬픈 멜로가 코믹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진술하면서 울지 않았다고 해서 성폭력이라는 팩트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 pp.55~56
피해자의 예민함은 심리적 골격과 연관이 있다. 유년기 성폭력으로 심리적 골격이 약해진 피해자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씩씩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더 쉽게 지치고 예민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피해자들이 주저앉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보통사람들이 50퍼센트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 약해진 심리적 골격을 가진 피해자들은 그 몇 배의 에너지를 더 투입해야 한다.
--- p.66
성폭력 피해자 대리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간혹 가해자 상담을 하거나 변론을 할 때 의뢰인에게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하여 그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다.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부당하게 피해자에게 반감을 갖지 않도록 조언한다. 그리고 사건을 진행하면서 주변 사람들, 동료들에게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여 피해자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성폭력 피해자 대리를 많이 해 본 변호사가 성폭력 가해자 변호를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 p.123
“판사님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사건 소송에서 제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판결이 안 나왔는데도 제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 이야기, 그러니까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게 얼마나 제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판사님이 다 들어주셨고, 또한 법정에 가해자를 대신해서 나와 있는 가해자의 부인 역시 이 이야기를 다 들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 p.214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냐 ”고 추궁합니다. … 죽기 살기로 저항하면 성폭력은 발생할 수 없다고 쉽게 말합니다. 죽기 살기로 저항하면 강간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가해자의 추가 폭력으로 정말 피해자가 죽기도 합니다. 더러 그러다 가해자가 사망하기도 합니다. …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몸과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에 처하도록 할 이유는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차라리 피해자가 성폭력의 순간에 저항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저항한 대가가 너무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가혹한 피해는 피해자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p.217
수많은 피해자들이 어렵사리 용기 내어 가해자를 고소한 이후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자책하곤 합니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말하고 제대로 처벌해 달라는 것은 당신의 권리입니다. 그의 잘못된 행위를 당신이 계속 감내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가해자가 그 일로 처벌을 받고, 직장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가해자의 잘못에 따른 결과일 뿐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잘못된 행위도 그의 것이고, 그것에 대한 결과도 오롯하게 그의 것입니다. 당신이 목소리 낸 이후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마땅한 일들을 했을 뿐입니다. 자책은 가해자의 몫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할 일은 용기 있는 결정을 한 당신 안의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 pp.229~230
당신의 인생에 성폭력은 하나의 사건일 뿐이고 당신의 일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교통사고 피해를 입었다고 다시 운전대를 못 잡는 것은 아닙니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다시 웃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폭력 피해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즐겁게 여행 다니고, 클럽에 가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애도 해야 합니다. 당신은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듯이 그 사고 기억이 피해자 삶을 삼켜버리지 않듯이 당신도 피해자라는 것에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억이 당신의 현재를 계속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낸 멋진 사람입니다.
--- pp.23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