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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아주 낮은 환상

죽음, 아주 낮은 환상

: 자살

테마문학-01이동
전경린 등저 | 윤컴 | 1998년 06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3 리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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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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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8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6419221
ISBN10 89864192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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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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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옷이 제게 잘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항상 거추장스러울 뿐이였지요. 성가시고 불편했습니다.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날 오후의 피로 같은 게 끈질기게 제 몸에 따라다녔지요. 그건 그림자 같기도 하고 무슨 냄새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 정체 모를 것들이 유발하는 자각 증상이란 마치 신트림 같은 기분 나쁘기 이를 데 없는 거였지요. 십 분에 한 차례씩, 어떤 날은 오 분에 한 차례씩 그런 증상이 반복되었어요. 윤명훈이라는 한 인간의 유기체가 온 힘을 다해 세상을 거부하는 증상 말입니다. 결코 만성화 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너울은 조금씩 조금씩 커져서 내 전체를 뒤덮을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연극에 그토록 몰두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은 그 너울의 실체로부터 맹렬하게 도망쳐보자는 의도에서였을 겁니다. 죽지 못하고 다시 깨어나서야 비로소 그걸 알았던 거지요. 나는 어쩌면 인간이 아닌 도마뱀이나 물총새로 생겨나야 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세상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일이 그토록 피로하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세계를 정복해 나가도록 키워집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란 모두 거기에서 발생하는 거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전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추구해선 안 될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지요. 죽어서, 비로서 애당초 제가 태어날 모양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소름이 끼치도록 싫었던 그림자와 냄새와 신트림 따위가 깨끗이 가시기만 한다면, 비록 바퀴벌레나 이구아나 도마뱀으로 태어난다 할지라도 훨씬 행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제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애기가 한갓 별스런 농담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전 그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 불명의 은근하고도 집요한 고통으로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지요.
구효서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 번>에서
--- p.193-194
당신이 이 녹음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천백이십사동 사백삼호에 잠들어 있을 거요. 영원히. 떠나기 전에 내 마지막 음성으로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소. 당신은 내게 고맙다고 한 적이 두 번이나 있었소. 두 번이나... 무엇보다 그 말이 나로선 사무치도록 고맙소. 나 비리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소. 당신, 아이, 그리고 세상이여 안녕.

추신 : 내 낡은 책상 서랍에 워너브라더스 원판의 카사블랑카'가 있을 거요. 그걸 당신 앞으로 남기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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