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작은 시골 마을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한 명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 앞에 고귀한 왕자님이 나타났습니다. 왕자는 머리에 쓴 왕관을 바치며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분이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가 가진 왕관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미안해요. 저는 아직 대답해 드릴 수 없어요.”
다음에는 늠름한 기사님이 나타났습니다. 기사는 허리에 찬 검을 바치며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분이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가 가진 검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
“미안해요. 저는 아직 대답해 드릴 수 없어요.”
다음엔 부유한 상인이 나타났습니다. 상인은 수레에 싣고 온 거대한 황금 덩어리를 보이며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분이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가 가진 황금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
“미안해요. 저는 아직 대답해 드릴 수 없어요.”
세 명의 구혼자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아가씨가 자신을 농락한다고 생각해서 그녀를 비난하고 몸을 돌려 떠났습니다.
훗날 그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아가씨는 이미 차가운 땅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묻힌 정원에서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세 명의 구혼자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꽃봉오리는 왕자가 바친 왕관의 모양이었고, 잎은 기사가 바친 검의 모양이었으며, 뿌리는 부유한 상인이 바친 황금 덩어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답니다…….〉
- ……그래서, 그 아름다운 여자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한 것 같은가, 세공사?
- 묻힌 땅에서 피어난 꽃은 그 여자의 마음이겠죠. 그 말은, 끝까지 양다리 아니 세 다리, 음, 어쨌든 모두를 선택했다는 건데요. 그건 결국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단 뜻이겠죠.
- 사실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 네?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나요?
- 그 여자는 청혼을 거절한 게 아니었어. ‘아직’ 대답할 수 없다고 했을 뿐이지. ‘아직’이란 말은 거절이 아니라 기다려 달라는 말이고. 안 그런가?
- 죽었다면서요? 그럼 끝난 거 아닙니까.
- 인간의 일은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그녀는 죽기 전에 구혼자들에게 전언을 남겼다고 해.
〈그대여, 부디 기다려 주세요. 당신을 다시 만나면, 그때는 반드시 제대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 아, 세상에! 그렇게 뻔뻔할 데가!
- 그런데 정말 구혼자 중 한 명이, 그 말을 믿고 기다리기 시작했지. 여자가 차가운 땅속에 잠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이 활짝 핀 정원, 그녀가 묻혀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어.
- 그, 그게 누군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 그게 누군지는 몰라. 어쨌든 그 구혼자는 정원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그녀가 잠든 나무에 기대앉은 채 돌이 되어 버렸어.
- 아, 신이여…….
- 그 구혼자는 돌이 되어 가며 간절히 빌었지. 나는 더 이상 당신을 기다릴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당신이 나에게 찾아와 달라고. 아주 먼 훗날에라도, 당신과 함께 태어나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할 것이고, 여전히 같은 선물을 바치며 다시 고백할 터이니, 그때는 제대로 대답해 달라고.
- 오, 하느님 맙소사. 그 정도면 사랑이 아니라 미련한 집착 아닌가요. 그래서요?
- 시간이 지나면서 돌이 된 몸은 비바람에 부서져 나갔지만,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은 심장과 그곳에 깃든 영혼은 나무에 깊이 붙박인 채, 해마다 피고 지는 꽃들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되었지.
- …….
- 먼 훗날, 그 정원의 아름다운 주인은 돌이 되어 부서져 나간 구혼자의 흔적을 끌어안고 사죄하며 맹세하지. 나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터이니, 당신도 약속을 지켜 달라고.
- 그, 그래서 끝이 어떻게 됐나요, 폐하? 구혼자는 살아났나요? 아니면 다시 태어났나요? 그래서 그 후에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다시 만났나요? 천국에서? 지상에서? 여자의 선택은요?
- ……그 뒷이야기가 궁금한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