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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매력의 글쓰기를 넘어

[ 양장 ] ARCADE-0018이동
김언 | 파란 | 2023년 02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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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8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99쪽 | 528g | 138*210*20mm
ISBN13 9791191897500
ISBN10 1191897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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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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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의 시에서 짚었던 ‘색색의 귀환’에 이어 이제재의 시에서는 ‘파편의 아름다움’이 눈에 띈다고 할 때, 어쩐지 시단의 시계를 십수 년 전 미래파 시절로 되돌리는 듯한 저 수사(修辭)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덜기 위해 한마디 덧붙일 것이 있다. 시대에 따라 미학적인 감각과 윤리적인 감각의 양극단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시의 역사라지만, 철 지난 과거의 시가 그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그대로 되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철 지난 과거가 철 지난 과거로 떠밀릴 수밖에 없었던 지점을 고통스럽게 통과하면서 미래의 시는 온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미래의 시는 언제나 새로운 과거의 시다. 새로운 과거의 시는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시가 아니라 뼈 아픈 성찰과 눈 밝은 통찰의 시간을 거듭 통과한 후에야 다시 만날 수 있는 미래의 시일 것이다.
---「왜 다시 빛인가? 빛이어야 했는가?ㅡ빛의 걸음걸음과 지난 십 년의 시」중에서

“나는 좋은 곳을 믿는다”라는(황인찬, 「순례」) 문장이 집약적으로 보여 주듯이, ‘좋음’에 대한 순정한 믿음은 윤리적인 감각이 강조되던 2010년대 시의 중요한 축(어쩌면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룬다. “좋은 곳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좋은 곳을 상상하지 못했다”처럼(송승언, 「담장을 넘지 못하고」) 회의적인 시선도 없지는 않으나, ‘좋음’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가와 상관없이 ‘좋음’이 이 시기 시의 주요한 화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좋음’의 의미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빛’의 이미지가 2010년대 시에서는 이상하게 많이 보인다. 일일이 거론하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많은 시에서 지배종처럼 등장했던 시어가 ‘빛’이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좋음’이 2010년대 시의 든든한 토양을 이룬다면, ‘빛’은 이 시기 시의 눈부신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나는 왜 ‘좋은 곳’을 믿을 수 없었나?」중에서

돌이켜 보면 시단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시는, 나아가 시단의 판도를 흔드는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곳에서 익히 아는 방식으로 등장하는 경우보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예기치 않은 모양새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 왔던 등단 절차를 뛰어넘어서 갑작스러운 시집의 형태로 등장하는 시인들 역시 그 자체 예기치 않은 사례에 해당한다. 그들 중 일부는 예기치 않은 화법으로 예기치 않은 얘기를 들려주면서 뜻밖의 시 세계를 보여 줄 수도 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미래의 시를 앞당기면서 현재의 시단을 바닥까지 뒤흔드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지 못하리라는 장담 역시 할 수 없는 곳에서 미래의 시인들은 계속 태어난다. 새로운 시인도 계속 태어난다. 새로운 시가 ‘시란 무엇인가?’라는 시적 정의를 새삼 문제 삼으며 등장한다면, 이 시대의 새로운 시인은 ‘시인이란 무엇인가?’ 혹은 ‘시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장한 채 등장하는 시인이지 않을까. 아니면 ‘우리는 언제 시인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내장한 시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 시인이 되는 것일까?ㅡ비등단 시인들의 시집 출간에 대한 몇 가지 생각」중에서

인간의 창의적인 영역까지 잠식하면서 날로 발전해 가는 인공지능 기술을 감안할 때, 기성의 시에 준하는 혹은 기성의 시를 뛰어넘는 시 창작을 하는 인공지능이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날고 기는 창작 기술을 장착한 인공지능이 나오더라도 거기서 유일하게 빠져 있는 것이 바로 몸이다. 시인의 몸이자 독자의 몸이며, 낭독자의 몸이자 청중의 몸이다. 이러한 몸과 몸이 만나 소리와 제스처와 땀과 웃음과 눈물로 공유되는 현장성은 아직까지 인간의 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낭독이든 슬램이든 일단은 들려야 한다」중에서

지금까지의 창작자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할지라도 모두 인간이었다. 문학의 정의가 아무리 많이 바뀌어도 마지막까지 변치 않는 조건으로 남았던 것이 ‘창작자=인간’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창작자≠인간’ 혹은 ‘창작자=인간+인공지능’으로의 조건 변화는 그 자체 엄청난 파장을 예고한다. 문학장 안팎에 걸쳐 중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창작자 개념의 변화는, 기존의 창작자와 독자를 전혀 다른 문학, 어쩌면 문학이 아닐 수도 있는 문학을 각오해야 하는 지경으로 내몰 수 있다.

문학이 아닐지도 모를 새로운 창작 장르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현재로선 마땅한 답변을 내놓기 힘들다.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막연히 올 것으로만 짐작되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만 온다면 의외로 가까운 미래에 들이닥칠 수도 있는 전인미답의 문학 환경은, 그동안 문학이라는 ‘오래된 집’에 거주해 온 이들의 생각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기술창작시대’의 문학과 인공지능」중에서

당연한 얘기지만, 시는 앞으로 변해 갈 것을 전제로 변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한다. 변해 가는 것을 전제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틀어쥐고 있는 시가 앞으로 또 무엇을 쥐고서 움직여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자기 기질과 정서에 충실한 시를 써 대는 시인들이 있을 뿐이다. 어떤 기질은 운 좋게 미래의 시로 이어질 것이고 어떤 정서는 안타깝게도 과거의 시로 묻힐 것이다. 장차 어떤 운명을 맞이하든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한 가지다. 자기 기질과 정서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것.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어떤 ‘쓰기’를 수행하는 것. 그렇다면 하상욱의 짧은 글쓰기는 자신의 기질과 정서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일면 시의 자격을 갖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극단으로까지 밀고 나가서 또 하나의 장르로서의 시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 극단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은 반드시 무언가 희생을 치르면서 온다. 그것이 무얼까? 대중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일까?
---「서울 시 감상기」중에서

직전 세대 미래파의 시가 의식 박약의 상상력을 선보이면서도 단 한 가지 포기할 수 없었던 지점이 시적 자의식이었다면, 김승일과 박성준을 포함한 2010년대 초반의 젊은 시인들은 시적 자의식마저 휘발된 공간에서 시를 쓴다. 아니 시를 논다. 미래파에겐 제도권 시단에 안착하기 이전에 소외의 역사가 존재했고, 따라서 시적으로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의식적인 투쟁의 과정이 어쩔 수 없이 존재했다면, 2010년대의 젊은 시인들은 등단하자마자 제도권 시단으로부터 승인된 공간을 물려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시적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불필요해졌다. 덕분에 미래파의 시가 의식 박약의 상상력 가운데서도 시를 ‘살아 내기’ 위한 고투의 과정에서 탄생했다면, 미래파 이후의 시는 그러한 고투의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이미 주어진 시적 공간을 잘 ‘놀아 내는’ 데 치중한다. 또한 미래파의 시가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에서 전선을 형성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후의 시는 이미 확보된 자기 세대의 시적 영역을 놀이터처럼 사용하는 데 열중한다. 결과적으로 한국 시의 전선을 넓힌 데서 미래파 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면, 이후의 시는 그러한 전쟁터를 놀이터로 탈바꿈시켰다는 데서 직전 세대와 변별되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전쟁터에서 놀이터로 이행하는 시의 아이들ㅡ김승일 시집 [에듀케이션], 박성준 시집 [몰아 쓴 일기]」중에서

[오늘 아침 단어]는 시적 대상을 둘러싸고 명멸해 가는 수많은 단어들의 기록이자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성큼성큼 활달한 보폭을 보여 주지 않는 과정을 답답해할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대상과 언어 사이의 거리를 차근차근 더듬고 두드리고 회의하면서 시로 다져 가는 그 방식에 신뢰를 보내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후자 편이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과 언어를 포함하여 세계는 그렇게 단숨에 읽히는 것이 아니므로. 섣부른 선언이나 잠언으로 나아가기 전에 세계를 손끝과 혀끝으로 섬세하게 더듬는 방식으로 세계의 “신비 혹은 공포”를(시집 뒤표지 글) 한 겹씩 한 겹씩 들추고 쓰다듬는 과정의 시. 그것이 유희경 시의 현재 지점이며 다음 시를 담보하는 밑천이며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시와 ‘아직’의 시간ㅡ유희경 시집 [오늘 아침 단어]」중에서

자칫 폭력의 현장이 될 수도 있는 문장의 규모를 최소화하는 방식의 말하기는 이 세계의 폭력을 고발하는 지점에서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인다.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을 분명하게 대립시켜 놓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폭력의 현장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로, 아니 한 발 더 다가선 채로 시선을 풀어놓는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세계를 이루는 폭력은 ‘나’를 이루는 폭력이기도 하다. 폭력의 현장을 짚어 내는 ‘나’는 관찰자나 증언자로만 그치지 않는다. 한편으로 그러한 폭력의 내부를 이루는 일원일 수도 있다는 시선이 임솔아 시의 곳곳에 숨어 있다. 가령 「아홉 살」, 「티브이」, 「살의를 느꼈나요?」 등의 시에서 확인되는 세계의 폭력은 그대로 ‘나’의 폭력이 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폭력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언제든 피해자일 수 있고 가해자일 수 있으며 증언자인 동시에 방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의 말은 어떤 식으로든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하는 곳에 임솔아의 시가 있다.
---「폭력과 매력의 글쓰기를 넘어ㅡ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중에서

읽는 이에 따라 설령 오독이 되더라도 단번에 직관적으로 읽히는 문장은 그전에 먼저 쓰는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튀어나온 문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시인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겠지만, 어떤 시인에게는 부자연스러운 계산이 자연스러운 직관이 될 때까지 문장 실험에 투신하는 시간을 한정 없이 늘려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시집 한 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실험의 시간이 당연히 더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정황을 구현하는 사례가 이번 시집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시편들에서 발견되기를 바란다면, 그게 ‘과연’ 욕심일까? 욕심이더라도 그 ‘과연’을 껴안고서, ‘과연’에게로 끝까지 가는 극단의 여정을 응원하는 것은 여전할 것 같다.
---「부자연이 자연이 될 때까지ㅡ한인준 시집 [아름다운 그런데]」중에서

이 시집의 소실점은 한 점으로 소실(消失)되는 지점이면서, 이제까지의 내면 공간을 모조리 태워 버리는(燒失) 지점을 함께 내포한다. 시집의 끄트머리에서 미친 듯이 반복되는 “숲이 타오르고 있어./숲이 타오르고 있어./숲이 타오르고 있어./숲이 타오르고 있어”는「다른 여름의 날들」), 그리하여 등장인물 한 사람의 헛소리가 아니라 그의 입을 빌린 시인의 결연한 의지로 읽힌다. 모두 태우고 난 다음에 남는 것, 한 줌의 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을 각오하는 마음이 또 시인의 마음일 테니까. 불탄 숲은 그 자체 죽음이면서 재생을 상징한다고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환멸의 페이크와 소실점의 마음ㅡ장현 시집 [22: Chae Mi Hee], 양안다 시집 [숲의 소실점을 향해]」중에서

분류는 분류일 뿐 그 자체 ‘나’의 특성이나 고유성을 대변해 주지는 못한다. 특정한 분류 체계를 넘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류 체계를 동원하더라도 ‘나’라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특정하는 결과물은 얻지 못할 것이다. ‘나’의 정체성이 모든 분류 체계의 합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무엇이라면, 그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혹은 그 무엇에 근접하는 언어라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나’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언어가 어떤 것이라고 얘기하기 전에, 적어도 그것이 기존의 분류 체계에서 나오는 언어와는 상당 부분 결별하는 언어여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의 언어와 결별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언어. 어쩌면 그것이 ‘나’의 정체성과 연동하는 언어이면서 한편으로 저마다의 기질과 성격에 충실한 시의 언어일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슬픔에서 말할 수밖에 없는 슬픔으로ㅡ정현우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중에서

사실상 그림자 말고는 더 보여 줄 것이 없는, 그것이 허공이든 허방이든 구멍이든 상관없이 도무지 알 길이 없는 타자로 집약되는 그림자의 세계에서, 지금보다 더 뻗어 나간 최호일‘만’의 심연의 언어는 과연 어떤 형상일까? 물론 그것은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해 모른다. 다만 심연의 언어를 머금고 있는 그 “입속은 하지 않은 말로 가득”한 상태라는 것만 확인해 두자 「내 입속은」). “하지 않은 말”은 아직 하지 못한 말이면서 앞으로 할 수도 있는 말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하지 않은 상태로 끊임없이 하고 있는 어떤 말이다. 뒤집어 말해 그것은 이미 말했던 것을 끊임없이 하지 않은 말로 망각하면서 주워 담는 말이다. 언젠가 했는지도 모르게 흩어진 말을 가장 멀리서 수습하는 식으로 나오는 말. 하지 않은 말로 가득한 그 입속에는 그리하여 이미 했던 말과 이미 흩어진 말과 그래서 영영 사라진 말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
---「하지 않은 상태로 하는 말의 심연ㅡ최호일 시집 [바나나의 웃음]」중에서

모든 현실이 실물감이 없는 꿈이라면, 모든 꿈은 다시 실물감을 가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지향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현실화된 꿈의 이미지는 송기영의 시에 이르러 묘하게 비틀린 방식으로 우리의 눈을 자극한다. 그것은 이미지가 되기를 거부하는 이미지, 앞서 밝힌 ‘필생의 이미지’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이미지. 말하자면 “기린 없는 기린 그린 그림”으로 “기린 그린 그림”을 대체하는 이미지. 그러고 보면 송기영의 시는 문학의 오랜 전통이자 관습에 해당하는 몇몇 지점을 정면에서 건드리고 측면에서 자극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기린 없는 그림’은 어떻게 ‘기린 그린 그림’이 되었나?ㅡ송기영 시집 [.zip]」중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각을 동반한 표현은 단순히 헛것에만 그치는 수사가 되지 않는다. 방황과도 같은 여행길을 수없이 지나오면서 건져 올린 다음과 같은 다짐 역시 단순히 구호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 손을 가방에 넣고 나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다시는 손을 놓아 주지 않을 거야” 「여행」). 이때의 ‘손’이 뿔의 다른 말이라면, 그 손은 다짐을 위한 장치를 넘어 “뿔을 잃은 사람들은/서로에게 기대어/한 번도/본 적 없는/뿔이 된다”는 걸 손수 증명하는 길을 열어 보일 수도 있겠다 「검은 뿔산」). 어쩌면 그것이 신성희 시인의 첫 시집에 잠재된 손이면서 뿔의 능력일 것이다.
---「융기하는 뿔과 함몰하는 구멍의 언어ㅡ신성희 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중에서

그의 시는 첨예한 사회의식과 시적 인식을 함께 장착하고 있는 전형적인 지식인으로서의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면서 1980년대적인 연대의식과 비판의식이 2000년대에도 여전히 시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한다.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지식인의 얼굴이 도드라지는 저 시집을 부드럽게 껴안아 주는 역할은 시집의 두 번째 특징이기도 한 좌절과 슬픔의 정서가 맡고 있다. 좌절과 슬픔의 감정을 격한 목소리가 아니라 차분한 어조에 담아내고 있는 그의 시는 한편으로 소외된 개인의 정서가 부각되었던 1990년대의 시풍과도 맥이 닿아 있다. 언뜻 칙칙하고 무거울 수도 있는 앞의 두 특징(좌절한 지식인의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은 그러나 세 번째 특징에 의해서 충실히 보완된다. 시집 곳곳에 위트를 장착한 문장이 등장하면서 한없이 가라앉을 수도 있는 시집의 무게를 일정 부분 덜어 주고 있는 것이다.
---「당나귀로서의 문학, 소리로서의 시ㅡ심보선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중에서

문제는 법의 언어에 있지 않다. 법에도 있지 않을지 모른다. 문제는 언어 자체에 있을 것이다. 어떤 언어든 그것이 언어로 된 이상, 법전도 경전도 사전도 모두 불완전한 동시에 완고한 체계를 갖춘 채 우리 앞에 던져진다. 법전에 아무리 정통한 사람일지라도 법전이 인간의 언어로 된 이상, 그것은 불완전한 세계이면서 완고한 체계를 갖춘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잘 알겠는데도 새삼 모르겠는 세계를 함께 거느리면서 언어는 언어 앞의 당사자에게 온다. 언어는 기지(旣知)이면서, 기지인 만큼이나 다시 미지(未知)인 채로 우리 앞에 도착한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 같은 봄이면서 같은 봄이 아니듯, 매번 경험하는 언어의 순간은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하나같이 알 수 없는 장막을 두른 것처럼 보인다. 다 보여 주지 않았는데 다 보여 준 것처럼 있고, 더 보여 줄 것이 있는데 더 보여 줄 것이 없는 것처럼 의뭉스럽게 서 있는 언어를, 언어의 체계를, 아니 언어의 시시각각 움직임을 시인이 아니면 또 누가 다시 눈여겨보겠는가.
---「끝의 언어에서 속의 언어로ㅡ최규승 시집 [속]」중에서

말놀이든 말사태든 언어를 사물화하는 온갖 노력은 사물을 언어화하는 정성과 다르지 않다. 언어로써 언어의 텅 빈 공간을 채워 나가는 열정은 사물로써 사물의 꽉 찬 질서를 비워 가야 하는 심정과 다른 곳에서 연원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부재의 공간을 지시하는 언어가 쌓아 올린 “거대한 잿더미”이자 “풍부한 건물”은, 살아가면서 사라져 가는 모든 사물의 운명이 되풀이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 현장에서 발견되는 단어 하나가 어느 순간 보석과도 같이 내 눈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그 보석을, 이미 보석이 되어 버린 그 말을, 어떻게 불려 가느냐는 온전히 애정에 비례해서 달라질 것이다.
---「너 혼자가 아니야, 단어야ㅡ오은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중에서

돌아갈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세계의 불완전함을 불완전한 목소리로 극대화해서 들려주는 박판식의 모자이크화는 갈래갈래 다른 색깔로 분할되지만, 그럼에도 그 이면에 거느린 정서만큼은 일정한 톤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 ‘동경’에서 ‘체념’으로 그 색조가 살짝 바뀌었을 뿐 첫 시집이나 이번 시집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불행’의 시선은 큰 틀에서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는 불행의 시선은 그만큼 근원적이고 변하기 힘들고 따라서 불안하게, 불안하게 사유의 몸체만 이리저리 옮겨 갈 뿐이다. 이번 시집에서 발견되는 사유의 몸체는 대체로 깨진 거울의 조각들로 나타났다. 이전 시집이 물속의 막에 둘러싸인 사유의 몸체를 드러냈다면 앞으로 전개할 그의 사유의 몸체는 또 어떤 모양일까.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세계의 균열을 인식하고 체험한 자로서의 목소리가 한동안은 깨진 거울 근처에서 떠나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비참하게, 아름다운, 모자이크화ㅡ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중에서

삶의 어느 대목에서든 속절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죽음의 순간을 제아무리 영원이라는 말로 되받더라도 죽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삶이라고 해서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남는 것은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을 거스름 없이, 다만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계속 떠내려가”거나---「똥물 따라 돼지 떠간다」) “끝에서 끝을 갔군요/보았습니까/보았지/뭐가 보이더랍니까/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보였지/그것이 님의 인생/일어나, 밥 먹자”에서처럼---「형들의 나라」)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종말의 순간을 애써 지연하며 밥이나 열심히 챙겨 먹는 일밖에. 생의 반환점에서 시의 전환점을 모색하는 시기에 나온 시집에서 얻어 낸 전언치고는 너무 공소하다 싶지만, 저 공소하다 못해 허망한 결론을 뒤집을 만한 반론 역시 현재 시점에서는 갖추고 있지 못함을 부득불 고백하게 하는 힘이 김현의 시집에는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있는 그것. 읽는 이를 끝까지 붙잡고서 수긍하게 만드는 그 힘 말이다.
---「생의 반환점과 시의 전환점에서 다시 불러내는 말ㅡ김현 시집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중에서

죽을 때까지 기억은 생성을 멈추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기억은 행진을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마치 끝나지 않는 퍼레이드처럼.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퍼레이드처럼. 근작 시 「레닌은 겨울에 죽었다」에 등장하는 “레닌의 넓은 땅”과 “레닌의 먼 하늘”이 도무지 끝을 모르겠는 기억의 광활한 영토성과 연결된다면, 본문 중간중간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퍼레이드는 길었다”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기억의 지속성을 강박적으로 일깨운다. 행진하듯이 행진하듯이 끝을 모르고 지속되는 기억의 속성은 난장판 속에서도 난장판을 헤집으며 행진에 행진을 거듭하는 신해욱 시의 운동성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행진하라, 기억이여ㅡ신해욱의 근작 시」중에서

부분의 영역과 맞물리는 한계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는 것은 한계의 조건을 강화한다는 말과 같다. 한계의 조건을 까다롭게 추가할수록 조건들을 만족하는 부분은 축소된다. 이때 축소되는 부분을 극한으로 보내면 점으로 수렴된다. 이 ‘점’의 자리를, 좀 더 엄밀하게는 이 ‘점’의 가능성을, 이원의 시(론)에서는 ‘최소’라는 용어로 받아서 사유한다. 즉 한계를 이루는 온갖 조건의 합집합이자 전체집합을 만족하는 자리에 ‘최소’라는 불가능한 가능성의 점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계를 이루는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점과 같은 존재. 그것이 최소라면, 최소는 역으로 전체를 감당하면서 최대를 지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의미의 최소는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다. 실현 불가능하기에 무한정 그것·그곳이 되는 지점을 향해 가는 긴 여정의 시가 또한 이원의 시일 것이다.
---「최소의 이미지와 심연의 리듬ㅡ이원의 근작 시」중에서

“눈이 흐를 때 녹아서 물”이라는 어색한 구문으로 완성된 눈석임물에 대한 설명은, 문장 단위에서 자주 굴절을 보여 온 안태운식의 발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리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게 눈여겨볼 것이 있다. ‘눈석임물’에 스며 있는 ‘눈’과 ‘물’이라는 두 사물의 연속성과 단절성이다. 눈은 일단 고체이다. 고체이되 무거움과 가벼움, 차가움과 따뜻함(들판에 하얀 이불처럼 덮인 눈을 떠올리자), 편안함과 불안함(들판의 그 하얀 이불은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를 눈이기도 하다)이 공존하는 고체. 그렇다면 물은? 물 역시 눈만큼이나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불안감을 주며, 평화로움과 함께 난폭함을 숨기고 있는 사물이다. 눈과 물에 스며 있는 동시에 상충하고 있는 각각의 속성들이 또 한데 섞여서 흐르는 것이 ‘눈석임물’이라면, 눈에 대해서도 물에 대해서도 나아가 눈석임물에 대해서도 이 시의 화자는 “여러 양가감정”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어떤 감정과 장면」).
---「끝없는 흐름과 멈춤의 양가감정ㅡ안태운의 근작 시」중에서

갑자기 “끌려 나온 검불들”이 “뭉쳐진 채 잔뜩 뾰로통”한 표정을 짓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든 상관없이 그들이 거하는 곳은 언제나 구석이다. 「청소하는 사람의 세 질문」) 구석처럼 외지고 어두운 곳이 어울리는 그 표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덮어 두는 것이 성실 유능한 생활인의 미덕이라면, 마음에서도 한쪽 모서리에 해당하는 어둡디어두운 구석의 그 표정을 누군가는 계속 들여다보며 말을 건넬 것이다. 저 또한 나의 표정이며, 숨길 수 없는 우리의 얼굴이며, 그것을 놓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 중에 또 시인이 있다는 사실을, 이현승의 시를 읽으면서 다시 확인한다. “갑작스레 답을 궁리할 때의 순수하게 골몰한 자의 저 얼굴”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의 시는 끝내 외면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모르는 내 얼굴이 짓는 표정ㅡ이현승의 근작 시」중에서

이미 꽉 차 버린 “슬픔저금통”을 품고 사는 와중에도 간간이 웃음을 주는 일이 끼어들면서 숨통을 틔워 주는데, 정재학의 시에서는 그것이 대체로 ‘아들’을 비롯한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서 구현된다. “저 꽃들 좀 봐! 했더니 벚꽃길을 함께 걷던 여덟 살 아들이 꽃들은 나무들이 힘들게 응가를 한 거라고 우긴다. 개나리를 보더니 금똥! 벚꽃은 공주님똥! 멀리 있는 저 나무는 설사했네!라며 눈을 못 뜰 정도로 자지러지게 웃는다.” 「지 맘대로 생각하긴」) 아이들은 다 자라기 전까지 매일 새롭게 말을 배운다. 매일 새롭게 사물을 익히고 매일 새롭게 사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 때만 전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특권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또한 시인일 것이다.
---「삶의 온갖 엇갈림을 풀어내는 시ㅡ정재학의 근작 시」중에서

“어지러워”서 “어지러워하는” 세상에서 「눈딱부리 새의 관점」) 어지러운 방식으로 정교하게 얘기를 풀어 나가는 유계영 시의 미덕은 표면적으로 어지러움의 정교한 구현에 있는 듯하지만, 이면에서 흐르는 순정한 의지를 감지한다면 그의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도 다르게 읽힌다. 그것은 섣부른 ‘너머’도 아니고 막연한 ‘꿈’도 아니며 지리멸렬한 ‘북새통’도 아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서야 낼 수 있는 소리, 그러니까 진창과도 같은 북새통을 통과할 대로 통과한 뒤에야 겨우 말할 수 있는 너머의 한마디. 꿈의 한 토막. 통과 자체가 요원해 보이는 현실과 도달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너머를 한꺼번에 들려주는 얘기는 지난한 여정에 놓이지만, 그 와중에도 듣고 싶어 하는 귀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시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듯이”, 유계영의 언어 역시 듣고 싶은 귀와 열리고 싶은 귀를 향해 계속 어떤 소리를 낼 것이다. 우리를 조금 흔드는 소리이자 이 세계가 조금 흔들리는 소리 말이다.
---「이 세계가 조금 흔들리는 소리ㅡ유계영의 근작 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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