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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응 열사 평전

: 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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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140*210*20mm
ISBN13 9791197878343
ISBN10 1197878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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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응 선생은 객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병천으로 돌아와 진천과 입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근대식 교육을 펼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바로 청신의숙(淸新義塾)I이란 사설 교육기관을 직접 세워 꿈을 실현하려 한 것이다. 김구응 선생은 이를 위해 자신의 사재를 기꺼이 털었으며, 뜻을 함께하는 지역민들의 후원을 받기도 하였다. 때는 1908년, 그의 나이 21세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학은 물론 진천과 입장에서 영국 선교사들로부터 배우고 익혀온 근대식 교육을 지역 내 어린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유지들과 지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근대식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고 그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아냈다. 이와 같은 그의 행동은 이후 아우내만세운동이라는 거사를 치르는 데 도움이 되는 지역민들의 지지와 호응으로 이어졌고, 큰 힘을 발휘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 후 김구응은 1915년 수신면 장신리에 위치한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던 장명학교(長命學校)I의 일인(日人) 교장 밑에서 교사로서 잠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학교는 감리교회가 문을 닫으면서 곧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18년부터 성공회의 구세실 주교가 운영하는 진명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계속하던 중 아우내만세운동을 준비하면서 그 주역을 맡게 되었다.
---「병천 시절, 아우내만세운동의 터를 닦다」중에서

당시 병천에서 진명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김구응 선생에게 3·1만세운동은 학수고대하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일본의 압제가 심해질수록 어떤 식으로든 독립하고자 일본에 항거하는 민족적 운동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때를 대비하여 나름대로 준비하던 차였다. 김 선생은 아우내장을 드나드는 장꾼들에게 전해 들은 전국 각지의 소식을 종합해보았을 때 만세운동이 일회성으로 그치 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남북으로 뻗어나가 전국적인 운동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리라고 확신했다. 또 교사로 있는 진명학교는 영국을 모체로 하는 조선성공회에서 운영하던 곳이었기에, 영국인 신부와 그곳 전도사를 만날 기회가 잦았다. 김 선생은 이들을 통해 서울에서의 긴박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 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우내에서 김구응 선생만큼 3·1만세운 동의 전후 내막을 자세히 아는 이도 없었다. 또한 3월 13일 고향인 병천으로 내려온 이화학당의 유관순은 자신의 오빠를 지도했던 김구응 선생을 찾아가 서울에서 직접 자신이 참여했던 만세운동의 소식과 그곳의 긴박했던 상황, 그리고 자신이 구금되면서 겪었던 일제의 동향 등을 전했다. 유관순은 아우내에서 만세운동을 한다면 이를 준비하고 앞장서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은 김구응 선생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우내(병천)에는 김구응 선생이 있었다」중에서

한편 김구응 선생이 성공회의 진명학교를 거점으로 삼아 아우내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했다는 것은 또 다른 정황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이 재판한 아우내만세운동에 대한 기록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아우내만세운동을 두 건의 사건으로 나누어 별도의 재판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일본 재판부가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그 운동에 참여하다 잡힌 사람들을 한데 묶어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했던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우리는 이로 인해 바로 아우내만세 운동의 주도 세력이 하나가 아니라 최소한 둘 이상이라는 것과 두 세력이 별도로 만세운동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재판부가 도저히 이 사건을 하나로 처리할 수 없었던 배경을 설명해준다. 그 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세력이 아주 긴밀하게 협조하였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병천은 무척 작은 지역인데도 대규모인 데다가 조직적인 만세운동이 한날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두 세력이 사전에 긴밀하게 교류하고 미리 협조를 받아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분명 두 세력을 연결하고 조 정하는 지역공동체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때는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했던 시절도 아니고 기껏해야 사람의 입과 발에 의존하여 연락을 주고받았을 시절에 만세운동 같은 조직적인 거사를 준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 모든 일을 총괄하고 조정하던 공동체가 있었으리라고 추정하는 배경이다.
---「김구응, 만세운동의 주역」중에서

4·1아우내만세운동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구응 선생은 현장에서 바로 사살되었기 때문에 재판 등 그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심지어는 그의 가족들마저도 일본의 후환이 두려워 쉬쉬하며 그 고장을 떠나 흩어져 살아온 까닭에 제대로 된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사진 한 장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성공하지 못한 거사는 결국 묻히기 마련이고 기록이 없으면 역사는 없는 것이다. (…) 4·1아우내만세운동처럼 대규모 만세운동이 아주 쉽게 수습되었다는 것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원인이다. 아우내만세 운동은 다른 지역에서 그저 몇백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던 데 비하면 수십 배나 규모가 컸는데도 빨리 수습되고 일상으로 돌아간 이유는 바로 지역의 유지들과 성공회 영국 사제들 때문이었다. (…) 그러니 결국 입으로 전해지는 미담만 남아 있을 뿐, 재판 등 문서 기록이 없는 까닭이 지역 유지와 일본 사람들 간에 얽힌 복잡한 관계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일본은 영국과의 친밀했던 밀월 분위기로 인한 정치적 이유로 영국인 구세실 신부가 사제와 교장으로 있던 병천 성공회와 진명학교에 대해 아무래도 호의적인 입장을 취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중에서

민족운동인 3·1운동에 대해서 성공회의 공식 입장과 외국인 선교사들의 입장을 살펴보면서 이에 비추어 병천 성공회의 입장과 비교해보겠다. 이것을 살펴보는 이유는 김구응 선생이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진명학교의 교사였고 그의 상사인 교장이 영국인 사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체인 성공회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만세운동에서 순국한 그에 대한 자체적인 평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당시 성공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알기 위해 1919년부터 쓰인 [宗古聖敎會月報](聖公會報)를 보면 이에 대한 기사나 글이 부재하다는 점으로 인해 성공회의 공식 입장을 알 수 없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회는 3·1운동에 대해 냉담하거나 내지는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과 영국은 1902년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 의무를 수반하는 영일동맹(英日同盟)을 체결한 각별한 사이였다. 이에 성공회는 철저하게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애매한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 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성공회에만 국한되는 경우는 아니었다. 당시 모든 교파의 기독교와 선교사들이 3·1운동에 대해 취했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지배세력에 대해 정치적 중립이라는 논리 자체가 실상은 반일(反日)의 강한 의지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이다. 통치자에 대한 정치적 중립 선언은 일종의 저항 선언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사들의 정치적 중립 원칙이 논리적으로 친한 반일(親韓反日)의 태도의 천명’이란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성공회의 3·1운동에 대한 입장과 분위기 」중에서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9년에는 병천에 있는 천안시 동남문화원에서 약 5백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김구응 열사와 4·1아우내만세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갖기도 하였다. 이날 강연에서 성공회 전해주 신부는 김구응 열사가 4·1아우내만세운동을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하였는지,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만세운동에 기여한 김구응 선생의 공적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한, 만세운동은 그때 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작은 노력을 모아 그날의 함성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구응 열사 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기 위한 발기인대회를 열어 그 뜻을 모으고 방향을 정해 드디어 지난 2022년 4월 1일 ‘김구응 열사 기념사업회’가 발족하기에 이르렀으며 아우내문화재단 이사장인 김종수 목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김 목사는 어렵게 출범한 ‘김구응 열사 기념사업회’가 근대교육의 선각자이며 아우내4·1만세혁명의 지도자인 김구응 열사의 업적을 기리고 숭고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아래와 같은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구응 열사 기념사업회의 활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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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미래를 희생으로 밝힌 ‘선생’이자 ‘독립운동가’
- 김지철 (충청남도교육감)
열사의 행적을 통해 아우내만세운동의 참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_
- 한시준 (천안독립기념관장)
숨겨진 불씨를 찾아내는 데 교회가 함께하길 소망한다
- 유낙 (주교,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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