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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귀를 갖고 있다

봄의 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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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80g | 128*182*20mm
ISBN13 9788960217010
ISBN10 8960217018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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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른 나무마다

봄의 귀를 갖고 있다

미세한 땅의 기척과

바람의 숨소리

잠재우며

거친 황무지를 파헤쳐

이른 파종을 준비하는

귀때기 시퍼런 날
---「춘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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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의 봉인된, 깁스된 봄(春)의 낱낱들은 시인이 지나는 터널이자 우리 모두의 터널이다. 터널을 숨죽이며 걸어가는 것은 터널이 끝나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시집 속에는 아직 자신의 맨살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깁스된 봄날의 저릿한 안타까움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그 화사한 빛이 퍼지기 직전, 특이점에서 들끓고 있는 직전의 봄임을 미리 알아채며 넉넉하게 시집을 읽게 된다.

“석고붕대 칭칭 동여맨 나의 봄은 지금 불편한 기침을 쏟아 내는 중”(「봄을 깁스하다 1」)이다. “불편한 기침”이라고, 불편할 뿐인 기침이라고 시인은 담담하게 말하지만 사실 시편들 속의 고통은 극점에서 끓고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왔던 길 되짚어갈 수도 없”(「재의 꽃」)는 도저한 절망의 감각이 온 몸에 무늬 지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시인은 상상의 힘을 놓치지 않는다. “개미지옥 파묻혀 생의 경계 지워”(「부활초」)버려도, 타는 목마름의 유전자는 결국 숨을 되찾고야 마는 아프리카 사막의 ‘부활초’를 떠올리는 것이다. “마른 가지 숨이 돌고 물웅덩이 뿌리내려 싱싱한 잎”으로 부활하는, 소생의 감각을 몸에 덧대어 보는 것이다. 또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날마다 다른 이름으로」)라고, 무심한 듯 시인이 날마다 되풀이하는 이 주문의 안쪽은 매번 갈아 끼우는 삶의 의지로 채워진다. 직전의 봄은 언제나 고통을 부풀린다. 그러나 고통은 강도强度다. 이제 봄은 곧 표면을 뚫어낼 것이다. 시인 스스로 봄-되기(Bcoming-Spring)를 실행하는 매번의 긴장이 시편들마다 아프도록 팽팽하다.

시집을 열고 이 모든 여정을 천천히 견디며 시인과 함께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어느 틈에 꽃 피는 대궐에 들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 그러나 우선은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 한영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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