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일푼에서 3,000억을 버는 것을 목표로 했던 사람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중 3,000억이 너무 작게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목표를 훌쩍 뛰어넘는 상황을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으로 어려워진 시기이기 는 하나 나는 늘 변함이 없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 속에서 존재감을 갖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 도전하고 있다. 점점 도전을 강화하고 있기에 어느 순간에는 전 세계 여행 산업의 중심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300조라는 목표도 스스럼없이 가질 수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 미친 소리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내가 20대 때 무일푼으로 3,000억을 벌겠다고 결심했을 때 친한 친구들조차 말대꾸할 가치도 없을 만큼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로 치부했다. 당시에는 정말이지 현실성 없는 일이었기에 그런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첫 투자를 받고 1조의 매출을 넘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하겠다고 할 때도 매출 200억대의 기업이 무슨 수로 1조의 매출을 달성하냐, 1조의 기업가치만 되어도 충분하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투자사의 입장이고 우리는 지속성장하고 자생할 수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다.
---p.6~7
의정부 아파트에서 책상 2개를 놓고 사업을 시작한 뒤 2년 만에 서울 강남 한복판인 테헤란로에 위치한 작은 오피스텔로 이전했다. 나는 1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하던 그 시기에 큰 빌딩 숲이 있는 테헤란로를 자주 걸었다. 선릉에서 역삼역을 지나 강남역까지 줄곧 걸어 다녔다.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에는 주요 거래처들(주요 광고 제휴점인 숙박업소)이 있었는데 차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거리를 걸어 다니며 높은 빌딩을 구경하는 것이 참 좋았다. 또한 상권 내 골목 골목을 관찰하고 어느 가게에 손님들이 몰리는지 등을 파악하여 상권분석을 하고 영업에 적용해서 성공 확률을 높이기도 했다. 그렇게 테헤란로를 걸어서 영업을 다닐 때 우리도 언젠가는 저 큰 건물의 한 층을 다 쓸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킬 거라는 혼자만의 소심한 다짐을 하였다. 우리는 아직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못한 아주 작은 병아리였기 때문이다. 테헤란로 대로변 빌딩의 한층 전체를 쓰고 싶다는 꿈이 테헤란로 대로변 빌딩 전체의 절반을 쓰는 현실로 된 건 그 혼자만의 소심한 다짐으로부터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다.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2016년에 뉴욕에 갔을 때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우리의 심볼도 저 벽을 감싸는 날이 올 거라고 중얼거렸다.
---p.22
나의 어릴 때 좌우명은 ‘후회하기 전에 최선을’이다. 20대에는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어느덧 몰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에 몰입할 것인가?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에 몰입할 때 우리의 존재 가치가 가장 빛나는가? 어느 날 갑자기 입춘이 왔다고 해서 오늘부터 봄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누구의 지시나 강요가 없이도 ‘봄이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다. 우리에게 몰입의 시작이 지금부터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강요가 아닌 참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트고 지속 방향성을 체크하며 같이해 나가다 보면 이번 시작에도 모두가 ‘봄이구나!’ 느끼는 날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p.28
나의 두 번째 실패인 샐러드 사업을 접고 세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근 1년의 준비기간을 가졌고 투자해주는 사람도 모집했고 같이 사업을 시작한 사람도 생겼다(현 야놀자 부사장 겸 중소형 호텔 프랜차이즈 야놀자 F&G 대표 임상규). 그렇게 2004년 여름부터 준비한 사업을 2005년 3월에 개인 간이과세자로 ‘호텔모텔펜션’이란 상호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모텔 생활을 하면서 모텔 청소부터 모텔 매니저와 총 매니저까지 4년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일했다. 나는 자부했다. 또한 투자자들도 이 바닥에서 10년을 넘게 일해온 분들이었다. 이 정도면 사업계획도 훌륭하고 업력도 있고 시스템도 알고 해서 자신 있었다. 더욱이 모텔 종사자 카페 회원 수는 1만 명을 넘겼기에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사업처럼 보였다. 나의 불빛을 갖고자 하는 마음, 나의 모텔을 갖고자 하는 마음, 모텔 청소하던 때 처량하게 보였던 나 자신, 샐러드 사업이 망한 뒤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서 무엇할까 싶던, 그래서 죽어야 하나까지 했던 생각. 그 모든 것을 한 방에 끝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p.51~52
우리가 주장하는 2,000억 기업가치에 투자사들은 600억, 1,200억, 1,500억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내부적인 의견은 2,000억 기업가치로 투자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보찬 님과 본길 님의 의견도 그러하였지만 그 외 투자시장에 있다가 새로 영입된 구성원들의 반응도 비슷하였다. 지인들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니 너무 과한 기업가치 때문에 각 투자사 투심위에 올리더라도 내부 회의에서 욕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고민했다. 우리의 진짜 기업가치는 무엇일까? 10년이 된 회 사, 이익이 나는 회사, 하지만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듯하지만 이제 시작인 시장환경. 나는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장의 눈은 늘 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더 고민을 강하게 해보고 시도해보고 싶었다. 우리 회사의 성장에 대한 확신을 가진 시점이 바로 여러 투자사의 관심, 기업가치는 둘째치고 이 시장에 있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가능성이라고 인지하였다. 우리는 정말 혁신이라는 본질을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한국 시장의 숙박을 바꿀 가장 큰 가능성을 지닌 조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2015년 7월에 파트너스인베스트로부터 포스트 2,000억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100억의 투자를 받게 되었다.
---p.239~240
이범석 상무님은 나의 손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고 한다. 사무직 형태 혹은 닷컴이나 모바일로 서비스하는 회사, 그것도 10년이란 시간을 리더로 있던 사람의 손이 너무도 거칠었고 두툼하였던 것이 다. 꼭 농사꾼의 손 같다는 표현을 하셨다. 지금도 나의 손은 그때와 같다. 검고 거칠고 마디마디가 굵고 두껍다. 특히나 어릴 적 농사를 돕고 집안일을 하며 살았고 여러 아르바이트와 모텔청소부 생활을 하면서 침대 시트를 갈았고 잡다한 일들을 하면서 지내 온 시간이 손에 다 모여 있는 듯하다. 나의 손을 보고는 “이 손이 그래도 이수진 사장의 이력이니 저는 이 손을 믿고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후로도 때때로 손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나의 사이드에서 무엇인가를 이해해주려 하고 시장이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그 분야에서 성공한다면 밑바닥부터 시작한 저런 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며 직업에 대해 존중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투자 를 받는다면 투자사가 아닌 이범석 상무님으로부터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
---p.242~243
나는 이범석 상무님께 전화했다. “그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어요. 연락처를 좀 주세요.” 그런데 이범석 상무님은 다른 사람들도 있고 아무래도 김종윤 님은 힘들 것 같으니까 몇 명 더 섭외해보고 소개시켜 주는 건 어떨까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아마도 내가 더 상처를 받거나 만나도 김종윤 대표가 그리 강한 발언을 했는데 야놀자에 조인할 마음이 있겠냐는 생각이 강하셨을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전화번호를 받고 전화를 했다. “좀 만나자.”
---p.246
이야기가 끝난 건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저녁도 안 먹고 오로지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너무 재미있고 시 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날 우리는 산업에 대한 신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내 차로 집에 데려다주는 새벽 1시에 “이 비즈니스가 확실한지 다시 고민해보시고 맞다고 생각하면 조인 하시죠.” 하면서 나는 지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우리가 어 떤 일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며 짧은 비전을 이야기했다. 김종윤 대표는 회사를 잠시 쉬면서 야놀자에서 3개월을 무보수 로 일하면서 그날의 전략 그림 검증 시간을 가졌다. 과연 이 조직이 변화될 수 있는지, 이 기업이 말한 시장 사이즈는 맞는지, 그리고 이 신규 비즈니스 모델은 실현 가능한지를 보았고 결국 같이하기로 하 였다.
---p.247
그는 길을 찾는 데 천재다. 내가 그를 볼 때 느끼는 가장 큰 덕목 은 어떤 식으로든 길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것이 100% 다 완벽 할 수는 없다 할지언정 적어도 90% 이상의 길을 찾아낸다. 나는 세 상 살면서 이런 사람도 처음 보았다. 그냥 공부 좀 했구나, 성격이 유쾌하지만 지고는 못 사는구나, 어릴 때 천재 소리 좀 들었겠구나 싶은데 실제 일해보면 우리가 여기까지 온 모든 뒷단의 작업을 다 한 1등 중의 1등 공신이다. 김종윤 대표는 길을 정말 잘 만든다. 그리고 지는 것을 진짜 싫어 한다. 그런데 그와 쌍벽을 이루는 사람이 배보찬 대표이다. 치밀하 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조금의 틈만 보이면 결코 찾아내고야 만 다. 특히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은 두 대표가 똑같다.
---p.248~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