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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27*188*15mm
ISBN13 9791197093845
ISBN10 119709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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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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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커피를 마신 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우울한 감정과 기억들, 그 끝에 만난 나까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두 깨끗하게 지워진다. 그들의 우울은 내 주머니 속 파란 알약으로 바뀐다. 꽤 오랜만에 구한 파란색 알약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더는 참지 못하고 하나 꺼내어 삼켰다. 입안에서 알약의 쓴맛이 단맛으로 바뀌는 순간, 몸이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그 남자의 우울함이 스쳐 갔다. 그리고는 이내 행복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아…. 그래 역시 파란색은 달라. 이렇게 바로 효과가 온다니까.’

이번 파란색 알약은 평소의 그 느낌보다 더 강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행복한 기분에 취해 하염없이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두 번째 알약을 꺼내려는데, ‘아니…. 이럴 리가 없어.’ 주머니 속 파란색 알약이 한 개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분명 파란색 알약 3개가 있어야 하는데 한 개뿐이라니 멘붕이 왔다. 혹시 조금 전에 알약을 꺼낼 때 흘렸는지 몰라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먹었던 알약의 느낌이 아직 남아있어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사라진 알약을 찾아야만 했다. 바닥을 응시하며 걷다가 결국 우울을 샀던 그 다리에 다시 도착했다.
---「당신의 우울은 안녕하십니까?」중에서

‘응? 다른 사람 꿈에 들어왔나?’
그 순간 익숙한 향기가 뒤쪽에서 불어왔다. 라벤더 향 섬유유연제 냄새. 그리고 내 어깨 위로 올라오는 따뜻한 손. 놀라서 돌아보니 햇빛을 등진 역광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준이다!’
현준이는 설렐 틈도 주지 않고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연아…….”

“일어나! 야! 깡지! 빨리 일어나! 수업 종 쳤어!”
날 깨운 건 혜지였다.
---「몽중몽설(夢中夢說)」중에서

어떤 미래가 다가올까?
세상 누구라도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적인 미래를.
마치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와 같은 그런 미래를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잔혹하여 때로는 우리에게 절망을 가져다준다.
그리곤 말한다.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더 이상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한 당신에게 분명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 어떤 절망이 와도 그것이 당신이 무너질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당신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남아있다고 말이다.
---「손이 닿는 순간」중에서

작고도 센 기계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몸이 웅크려졌다. 만약 누군가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던 시간이 무안해질 만큼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손을 뻗으며 잠깐 눈을 깜빡인 그 순간에 세상은 내가 알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기계들과 ‘삐… 삐… 삐…’ 주기적으로 울리는 소리, 약 냄새로 가득한 이곳은 분명 병실이었다.

4년 전, 전기가 사라졌을 때 병원은 빠르게 사라졌다. 병원의 부재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작은 사고에도 사람들은 쉽게 다치고 죽어갔다. 내 방에서 일어난 일은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이 낯선 공간에 대답 없이 메아리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눈에 들어왔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짚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를 나가면 무엇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알림 메시지」중에서

나는 한적한 도로를 지나 동네에서 별이 가장 많이 보이는 곳으로 택시를 몰았다. 그곳은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공원의 전망대로 야경명소였다. 평소에는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발길이 뚝 끊겼다. 그러나 나는 비가 그치고 구름이 갠 뒤 별이 더 빛난다는 것을 알았다. 10분 정도의 운행이 끝난 후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손님이 내렸고, 나 또한 피곤함을 떨치려 함께 차에서 내렸다. 습관처럼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공원임을 깨닫고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5년 전과 다를 것 없이 똑같은 날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여자 손님은 쏟아지는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근처에서 별을 구경하던 내게 말했다.

“후회는 지금을 사랑하지 않는 바보들이나 하는 거예요. 그런 바보들은 몇 번을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을 뿐이에요.”
‘어? 지금 하는 말은 처음 듣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주변을 돌아보니 손님은 사라져 있었다.
“후회….”
나는 택시 문에 기대어 후회하는 말을 곱씹었다.
---「할증(割增)」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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