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우린 잘 싸우려고 춤추는 거야. ‘그냥’이라는 말은 아주 비겁한 거고. 내가 리오의 어떤 면을 싫어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냥’ ‘모든 걸’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달라. 그건 존재하는 작은 것들을 전부 지 워 버리는 말이라고.
문이 음악을 트는데, 리오가 바로 끈다.
리오 내가 비겁하다고?
문 리오. 음악 끄면 안 돼. 싸울 땐 춤추기로 했잖아.
리오 툭하면 멋대로 끄는 건 누구지?
문 리오! 지금 내가….
리오 작품이 마음에 안 든다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것 같다고. 그 말 못 하겠어서 빙빙 돌고 있는 게 누구야?
문 …….
---p.16~17
동기1 어떤 계기로 이런 작품을 떠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 그리고 졸업 작품을 아직도 떠올리지 못하는 불쌍한 동기에게 팁을 좀 주신다면요. (웃는다)
새벽 현대의 전쟁은 대부분 공중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제게 전쟁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 수직적인 형태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음… 아마 모두 얼마 전 시작된 타트 전쟁을 주목하고 있 을 것 같은데요. 첫날, 폭격 지역에 살고 계신 분이 인터뷰한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그게 뭔지 몰랐고, 떨어지는 순간에도 몰랐다. 아직도 그게 뭔지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여기에 무언가 떨어졌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게 파괴됐다는 것뿐이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요즘 전쟁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누군가의 모든 걸 파괴하는데 정작 그 사람은 ‘뭔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조차 없는 거요. 이 위에서 떨어지는 미사일을 가장 잘 표현해낼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위한 팁이라면… (난처한 웃음) 열심히…하기…?
---p.33~34
네이지 차미는 일이랑 정말 잘 맞나 봐요. 직장인들 보면 억지로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던데.
차미 글쎄. (사이) 맞고 안 맞고가 있나? 이 일 저 일 많이 해 봤거든. 근데 결국 거기서 거기더라고. 잘하는 게 중요하지. 뭐든.
네이지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때 되게 놀랐거든요. 일이나 돈을 인생에서 크게 중요한 걸로 생각 안 하는 분위기라서요. 쉬고 노는 걸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차미 안에 들어오면 달라. 밖에선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돈을 중요하게 생각 안 한다고? 이 나라 사람들은 뭐든 중요하게 생각해. 그걸 빼앗긴 적 없는 것뿐이지. 뭐든 이기는 거에 익숙하니까.
---p.46~47
문 넌 태어나자마자 전쟁이었겠구나.
홀키 그렇지. 나 십 대 때까지 ‘이사’가 뭔지 몰랐잖아. 일 년 이상 한곳에 산 적이 없으니까. 제일 심할 때였거든.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쯤 전쟁이 시작된 거니까… 엄마랑 아빤 그때까지 고향에 대한 집착이 엄청 심했대. 그래서 한 번도 동네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맥주 마시는) 나 태어나고부턴 그런 것도 다 사라진 거지.
---p.54
이삭 연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커다란 불길이 이글이글 나무를 태우고 있어. 덩치가 나무만 한 큰 불길이. 그리고 그 앞에는 청설모 한 마리가 있는 거야. 불을 앞에 두고 실루엣만 보이는 작은 청설모가, 가만히 숲을 바라보고 있는 거지.
새벽 (여전히 눈 감은 채) 와.
이삭 중요한 건 이거야. 청설모가 있는 땅에, 눈을 가늘게 뜨면 보일 정도의 흐릿한 발자국들이 여러 개 있거든. 선명한데 흐릿한, 그러니까 땅엔 선명히 남았지만 어둠이 흐릿하게 만든 그런 발자국. 그 발자국들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저 멀리 숲 근처에, 군인들이. 세 명의 군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지. 아마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의 군인들이.
---p.73~74
차미 타트? 너 지금 그래서 타트에 간다는 거야?
네이지 왜요?
차미 그건 안 되지.
네이지 뭐라구요?
차미 그건 안 돼. 네이지. 타트는 지금… 지금은 안 돼.
네이지 전쟁 중이라서요? 공격받고 있어서요?
차미 …….
네이지 미사일이 날아오고, 사람들이 다 죽고, 나무랑 동물이랑 우리가 오래 가꾼 모든 게 무너져서요?
차미 너희 엄마도 그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
네이지 우리 엄마는 지금 딱 하나를 원해요. 복수.
---p.119
홀키 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 넌 그냥 문이야. 난 그걸 알아. 네가 끈적한 춤을 끝장나게 추는 애라는 걸. 죽어 가던 식물도 살려내고 담배 연기로 강아지 모양도 만들고. 대단한 음치에다… 괴상한 퓨전 음식을 참 잘 만들고. …가끔은 담배를 서른 개쯤 피워야만 견딜 수 있는 밤이 있다는 거. (사이) 세상에 딱 두 명.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딱 두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다. 7장 16절. 홀키 말씀.
홀키가 기도하듯. 웃는다.
홀키, 나간다.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