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특별한 감상을 품게 된 것은 내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나는 최근 들어 깨달았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다양한 것이 복잡하게 뒤엉켜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나는 나를 흠뻑 사랑해주고 어떤 인간이라도 좋다, 무사히 자라기만 해다오, 하고 계속 빌어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필설로는 다하기 힘든 감사의 마음으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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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줄기차게 내려서 쌓이는 눈은 도야마의 그 납빛 눈이며, 다른 어떤 눈의 고장에도 없는 독자적인 것이다. 눈이 오기 시작하면 거리는 점점 납빛으로 변한다. 몸을 구부리고 걷는 사람도, 집들의 지붕도, 하늘도 학교 건물도 낡은 빌딩도, 시영 전철도, 시영 전철의 철길도, 나아가 사람들의 일상조차 납빛으로 변한다. 그런 기억이 내 마음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도야마라는 곳이 싫었다. 거의 증오했다 말해도 좋을 정도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 p.19
회사에서 돌아와 열한 시쯤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새벽 서너 시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는 나날이었는데, 몸이 약한 나에게 그런 턱없는 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똑바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계단 대여섯 개만 올라가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쳐버렸다. 이대로 그런 생활을 계속한다면 나는 분명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 p.47
나는 아무 장점도 없는 인간이고, 머리도 나쁘고 완력도 없으며, 제멋대로에 겁쟁이에 질투가 심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내가 조금은 타인의 고통과 함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살짝 낮춰 대답할 것이다.
--- p.53
신기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작정해서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저항하고 또 저항해도, 자신이라는 인간의 핵을 이루는 부분을 공유하는 사람과만 이어진다. 그 무서움, 그 불가사의함.
--- p.59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싫어했고 운동도 잘 못했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투른 데다 제멋대로에 울보에 병약하기까지 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배신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이렇게만 교육하고 있습니다. 매화나무에서는 장미꽃이 피지 않습니다.”
--- p.93
“어떻게 하면 점점 늘어나는 마음의 병을 없앨 수 있을까요?”
다카야마 씨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다정해지면 돼요.”
--- p.102
“바로 지금 임종!”
이 냉엄한 각오를 견디지 않고서야
어디에 인간의 승부가 있겠는가
나는 이 시를 읊조릴 때마다 언제라도 죽어주겠다는 각오를 품고서 아주 오래 살아야지, 하고 뜨겁게 결의한다.
--- p.141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매혹시키는 것이야말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언제나 ‘새롭다’.
--- p.158
한여름의 번화가는 사람도 차도 아지랑이로 흔들렸고, 분명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의 소란으로 가득했을 텐데도 내 마음에 새겨진 풍경은 어둡고 황량하며 쥐죽은 듯 고요하다. ‘세상이 알아주는 작가’를 향한 출발점은 한없이 멀리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먼 길인지, 회사 밖으로 한 걸음 내딛은 순간 나는 소스라치듯 깨달았다.
--- p.163
나는 어째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나. 그런 질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짊어진 신경증이라는 병을 나의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결심이 섰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내 안에 있는 생명命이 샘솟았다. 이케가미 기이치라는 사람과의 만남도 외적 우연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 역시 생명의 힘이다.
---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