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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결 오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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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7쪽 | 235g | 148*210*20mm
ISBN13 9788939222144
ISBN10 893922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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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봉환
1961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1988년 『녹두꽃』에 「해창만 물바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 『해창만 물바다』, 『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가 있다. 지금은 서남해의 바닷가 학교에서 씩씩한 학생들과?함께 희로애락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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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결 오시듯

바다 저쪽 아득한 곳에 어머니가 계셔서
자꾸 이불 홑청을 펼치시는 것이다
삼동에 식구들 덮을 이불 꿰매려고
여동생들을 불러 모으고 그래도 손이 모자라던 때의 저녁 바람이
내 쪽으로 밀려나오며 선득선득 발목에 닿는 것이다
물결 잔잔해지기를 기다려
바다는 저쪽 어귀부터 차근차근 제 몸을 꿰매기 시작하는데
바느질에 갇힌 어머니 한숨이 솜이불에 남아서
겨우내 우리 몸은 포근하였던 것
그 많은 날들을 잠들 수 있었던 것
숭어 몇 마리 뒤척이는 밤 개펄을 깔고 밀물결 덮고
--- 본문 중에서

바위 닮은 여자들

물기만 살짝 젖어도 반짝이는 조약돌이었던,
그 좋은 한때가 벌써 오래 전에 졸졸 흘러가버린
여자들 대여섯이 계곡물에서 텀벙댄다
나는 아들만 일곱을 낳았어 이년아!
일곱이면 뭘 해 영감도 없는 것이?
까르르 웃음보 터지고 물방울들 바위를 구른다
아직도 그렇게 반짝이던 생이 남아 있을라나?
바위를 닮은 여자들 가랑이 사이에
검푸른 이끼가 끼어버린 여자들이, 풍덩
뛰어들면 금세 거무튀튀해지는 바위들이 계곡에서
삼겹살에 상추쌈에 대두병 소주를 맛나게 마시고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리거나 말거나
아카시아 숲 속으로 꽃마차가 달리거나 말거나
보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바위들이 낮술에 취해
물속에 가랑이를 터억 벌리고 누워 있다
영감 그거 있어봤자 성가시기나 하지 뭘 해?
그래도 등 긁어주는 건 그놈뿐이여 이년아!
--- 본문 중에서

향기로운 똥끝

기세 좋은 가이즈까 향나무를 보았다
기차가 이젠 안 다니는 철둑길 옆이다
(폐교된 학교 정원이라 해도 괜찮다)
몇 년째 내버려진 향나무 몇 그루가
정원사의 가위질 없이도 잘 살고 있다
활개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 팍, 들었다
제멋대로 잘 크고 있다는 자신감이었고
펄펄 힘이 살아 있는 그런 쾌활한 태도였다
허공을 향해 뻗쳐오르는 팔다리들은
아가의 똥끝처럼 응까, 하고 향기로웠다
애초에 사람들이 향나무라 부른 까닭이다
결국엔 향나무의 뾰족한 그 끝을 주목한다
아이의 똥꼬에서 막 떨어져 나온 똥
끝에 신선한 날것과 수많은 서성거림이
어딘가로 뻗어나가려는 허공들이 날름거리며
무구한 시간과 함께 몸부림치고 있다 끄응,
혼신의 힘으로 밀어낸 뒤 엄마를 돌아다보는
저 향나무 소년은
학교 정원이나 철둑길 가에서 쩔꺽쩔꺽
둥글게 가위질당하기 오래전, 나무의
잃어왔던 그것, 똥끝을 되찾은 거다
꿈틀꿈틀 저의 향기로운 생을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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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환의 시는 거친 갱지에 철필로 꾹꾹 눌러쓴 것 같다. 소박하고 평담한 만큼 진정성으로 넘쳐나는 철필로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삶과 꿈을 또박또박 적는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민중에 대한 자전적 시들을 놓아버리지 못하는데, 그 시들은 대상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할 터. 어쩌면 그의 시들은 시인을 꼭 닮았다. 나는 이봉환을 만나온 이후로 그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해석하려 드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미소로 가만가만 말하는 그는, 화려한 이미지와 능변의 진술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제련되지 않은 원석이다. 그 진정과 순수가 뿜어내는 소박미와 평담미의 시학은 시인의 표현대로 “삼동에 식구들 덮을 이불 꿰매려”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순정하다.
고재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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