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학자의 한반도 여행기 코리아에서
조급한 ‘미국화’의 열기에 사로잡혀 용을 쓰고 있는 현대 일본의 ‘일급 호텔들’과 체계적으로 개발된 경관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코리아(Cor?e)1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어떤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헐렁한 흰색 옷차림의 무사태평한 코리아 사람들을 보노라면 황화론(黃禍論)의 망령 따위는 이내 사라지고 만다. ---p.19
코리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이용익은 유난히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전통 의상 차림이었는데, 겨드랑이 아래 부분을 검은색 끈으로 묶은 흰색의 긴 두루마기를 입고 작은 말총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사나워 보일 정도로 정력적이었고, 검고 숱이 많은 턱수염에도 불구하고 튀어나온 턱뼈가 눈에 띄었다. 쿠션에 기대어 반쯤 눈을 감은 채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통역의 질문에 대답했다.---p.32
부산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항구 주위에 대여섯 개의 도시가 있는데, 그중 제일 큰 도시인 장산에 1만 5,0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기후는 제물포보다 온화한데, 바람의 영향 때문에 여름에도 밤이 되면 춥다. 산자락은 바다에 닿아 있고, 한 해의 절반은 산의 정상이 눈으로 덮여 있다. 1883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해외 무역상들에게 도시가 개방된 이후로 현지 주민의 수는 곱절로 늘어났다. 해외 무역은 이제 전적으로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p.55
오늘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이 되고 말았지만, 코리아는 자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들 중 하나이다. 백산의 빙하에서부터 남의 따뜻한 바다에 이르기까지 세 개의 지역, 즉 보리와 밀 재배 지역, 쌀과 완두콩 재배 지역, 면화·뽕나무·녹나무 재배 지역이 차례차례 분포되어 있다. 아직 탐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하에서는 이미 금, 석탄, 철, 구리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륙의 제국과 섬나라 제국 사이에서 코리아가 피비린내 나는 각축의 대상이 되었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p.69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의 창문 옆에서는 충리로부터 아서항의 조차를 이끌어낸 인물인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가 미국 공사 앨런,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머리인 파블로프는 창백한 얼굴에 턱수염을 길렀고, 일본 공사의 얇은 입술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들 뒤의 창문을 통해 거대한 황인종 도시의 초가지붕과 궁궐, 공사관 건물들이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오랜 잠에 빠져 있는 도시는 마치 거대한 장기판처럼 보였다. 그 장기판 위에서 지금, 태평양의 헤게모니 문제를 결정적으로 매듭짓게 될지도 모를 최후의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p.91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일상
황제 옆에 황태자가 서 있었고, 둘 사이에 황귀비 엄 씨가 낳은 다섯 살 난 막내아들이 있었다. 나는 맨 앞의 여인이 예를 올리며 황제를 알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처음에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굉장히 하기 힘든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른 다섯 사람이 성공적으로 예를 올리는 것을 지켜보았으므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비교적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 외국인들은 황제와 악수를 하고 난 다음, 팔꿈치를 높이 들어서 황제와의 사이에 가로놓인 테이블에 부딪히지 않도록 궁중 예법에 따라 절을 하면 되었다. ---p.151
혼인하면 소년은 곧 남성의 온갖 위세와 거드름을 체득한다. 머리에는 상투를 틀어 올려 신분을 나타내고, 난생 처음 갓을 쓸 자격을 얻는다. 그는 아명을 버리고 새로 지은 이름으로 불린다. 불행하게도 가난해서 결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평생 사회적으로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들은 남자들의 모임과 회의에서 명실상부한 역할을 할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열두 살짜리 토실토실한 어린 신랑에게 양보해야 한다. ---p.158
한국인들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래서 한국에는 거친 자연 환경 속에 그대로 두어 여자 아이를 없애는 중국의 관습을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아들을 원하는 정도가 더 심하기는 한데, 아들이 없는 사람은 입양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죽은 다음에 합당하게 제사를 받기 위해서다. 한국의 인구 증가율은 비교적 느리다. 이것은 유아 사망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연두라는 가혹한 질병으로 인한 것인데, 아버지가 자식 수를 말할 때 천연두를 무사히 이겨낸 자식들만 셈할 정도로 사람들이 무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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