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설교할 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설교나 일상적인 말뿐 아니라 삶 전체가 이 책 저 책에서 긁어와서 짜깁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땀과 눈물이 스며 있는 ‘자기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이 배운 인간일수록 주체적인 삶을 살지 않고 이 책 저 책에서 베낀 짝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또라이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나는 참 재수가 없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꼴이지만, 내 작품이 당선작이 아니라 하다못해 가작으로 뽑혔더라도 문단에 등단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바람에 기고만장하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나는 꼬랑지를 완전 내리고 말았다. 기가 죽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최선책이 신춘문예라면 차선책은 신인추천이다. 나는 문단에 선이 닿을 인연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그가 행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엉터리 약장수가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요즘 엉터리 약장수 같은 유명인사가 한둘이 아니고, 그들의 엉터리 만병통치약 선전을 곧이듣는 순진한 사람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제법 알려진 가톨릭 신부였습니다. 백보 양보해서 그가 아무리 유명 인사라 해도, 신부라는 직업의 특성상 아무래도 행복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신부는 한마디로 ‘야생 사자’가 아니라 ‘동물원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순간 초등학교의 운동장 조회가 생각났다. 매주 월요일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했다. 조회 때마다 교장선생님이 훈화를 했는데, 학생들은 처음 한두 마디 정도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나중에는 다들 듣지 않았고, 옆의 동무와 장난을 치거나 발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딴전을 피웠다. 그래도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끝이 없었다. 훈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듣는 학생들은 줄었고, 마침내는 전교생 중에 듣는 애가 몇 명 될까 말까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장선생님이 너무 딱해 보였다. 왜 아무도 듣지도 않는 이야기를 계속할까? 나중에는 이런 교장선생님이 딱하다 못해 바보같아 보였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 누구를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은 없는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빚은 없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 빚이 물질적이든, 마음의 빚이든 상관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너무 부질없는 것에 너무 아등바등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터무니없는 욕심 때문에 눈과 귀가 멀지 않았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지금 정말 부질없는 것을 갖기 위해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다 쓰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지금 가려운 다리를 긁는 게 아닌 엉뚱한 다리를 긁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반성, 내지는 자기 검정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내가 시집을 내는 것은 나와 여러분과의 약속입니다. 시는 고통이지만, 그런 고통을 통하여 값진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시집을 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시집을 낸다는 것은 지금까지 쓴 시를 한 데 묶는 의미도 있지만, 그런 소박한 의미 이상의 어떤 계기로 발전할 것같아 참 기쁩니다.
나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내 가슴에 꿈꾸고 있는 ‘사랑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뜻에 찬성하는 여자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주문이 더 있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여자와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앞으로 한산섬에서 펼쳐나갈 ‘사랑의 집’에 대한 그림을 함께 그리기도 하고, 상상만으로도 함께 기뻐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위한 시를 쓰기도 하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제 삶의 담보보다 열배 백배 천배나 많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앞서 말한 수표 끊는 논리대로라면, 이런 자들은 모조리 잡아 가두어야 한다. 갚을 능력을 넘어 수표를 끊어대는 것은 금융 질서를 파괴하고 마침내 경제 질서를 무너지게 하는 범죄이다. 이처럼 제분수에 넘치는 글과 말을 하는 자들도 이와 꼭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대가 한번 결혼에 실패했기 때문에 만약 다시 결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보다도 새로운 삶을 멋지고 소중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귀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실패를 거울삼아, 실패의 날들을 귀한 스승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살면,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그대는 가시 면류관의 여왕이나 다름없습니다.”
문영진 군이 하얀 팻말을 방금 기념식수한 나무 앞에 박았다. 그러자 학생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마침 물 뜨러 갔던 학생이 들통에 떠온 물을 질질 흘리면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나는 들통을 받아들고는 방금 심은 나무 주변에 물을 주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또다시 환호하면서 박수를 보냈다.
“하륜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때 문영진 군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학교 운동장에 기념식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제가 학생들을 대표해서 큰절을 올립니다.”
교무과 교무실에서 긴급 직원회의가 소집되었다. 지칠 대로 지친 선생들이 다들 무슨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교장선생님이 크게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 선생님들이 평소에 애들을 어찌 가르쳤기에 오늘과 같은 불상사가 생긴단 말입니까!”
교장선생의 첫마디였다.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마치 이 말은 날 보고 나무라는 것 같았다. 순하고 물러터진 학생들이 나에게 나쁜 영향을 받아서 오늘 너무나 엉뚱한 일을 벌일 만큼의 사나운 학생으로 변했다고 나무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교장선생은 오늘 스트라이크를 주동한 학생 대표들은 담임선생이 학생의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주문하였다. 또 경찰서에 부탁하여 통행금지가 지나더라도 아무 문제도 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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