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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 어느 간호사의 고생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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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38g | 128*188*20mm
ISBN13 9791168473935
ISBN10 116847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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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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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선배는 나에게 “그냥 너가 죄송하다고 하면 안 되냐?”라고 했습니다. 나는 왜 ‘그냥’ 죄송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찬 나는, 이제 겨우 속을 끓이지 않고 환자들에게는 죄송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도대체 간호사는 왜 쉬는 날에도 그래야 하는 건지, “누가 이렇게 나를 자꾸 잘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걸까?” 묻지 않았습니다
--- p.76

간호사로 살면서 좋은 점 한 가지는, 좋은 간호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덜너덜한 멘탈을 붙잡으려고 찾아간 친구도, 울먹이는 나를 위로한 동기도, 밤샘 근무 동안 나를 토닥여 준 응급실 후배도. 좋은 간호사들이 곁에 많아 나는 아직 씩씩하다. 그래 맞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몸 생각을 해야 한다. 오늘은 운동을 할게. 꼭 할게. 이렇게 아플 때, 아픈 사람 잘 돌보는 간호사들이 곁에 많아 참 다행이다. 내게 꼭 필요한, 행운이다.
--- p.78

한 해 마지막 날을 동기와 함께 보냈습니다. 사람 사이의 스트레스는 사람으로 잊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보듬어진다는 것을 몸소 배웠습니다. 순수했던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어떻게든 ‘오늘만 무사히’라는 생존 법칙만을 깨우친 것 같아, 나를 이렇게 만든 것들에 대해 화가 많이 났습니다.
--- p.87

길거리 어깨빵도, 시끌벅적한 스타벅스까지도 그리워질 만큼 고요한 한밤중에 눈을 뜨는 일이 잦아지다 보면, 자연스레 아아, 나는 왜 사는 걸까 싶어 탄식이 새어 나왔다. 산송장같이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불쌍했다. 일상으로부터 늘 도망치듯 사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고 만 것이었다. 밤샘 근무 후 아침에 고꾸라지기도 하고, 새벽 출근한 날에는 집에 도착하면 대낮에도 가방을 멘 채 고꾸라졌다. 고꾸라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원치 않는 수면의 가장 큰 문제는 원치 않는 기상에 있었다.
--- p.105

모르긴 몰라도 나는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어떤 양상으로 아프시냐는 질문. 진통제를 주고 나면 다시 물어야 했다.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냐고 물었다. 조금 나아졌든 나아지지 않았든 남들의 통증을 사정(査定)하는 일은 내게 상투적인 일이었다. 앞으로 더 지켜보아도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진통제가 필요할지 확인했다. 그렇게 남의 통증을 확인하는 일은 나의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 p.109

그러던 내가,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고꾸라지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버티는 삶이 이런 삶을 말하는 것일까 갸우뚱해지기 시작했다. 아, 말로만 듣던 ‘버티는 삶’이 어느 순간 내 몫이 되어 버렸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잘’ 버티기 위한 노력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어 내고, 견뎌 내는 것 또한 어쩌면 나를 돌보는 가장 능동적인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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