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적인 사람들은 동적이고 사교적이며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정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을 좋아하며 말수가 적고 소수의 사람과 조용한 대화를 원합니다.” 아이들은 이화의 말보다는 성빈이의 행동에 더 집중하고 있었고 성수의 존재는 잊은 듯했다.
“이제 우리 반 친구들을 판별해 보겠습니다. 방금 발표한 7조의 조이는 외향형이고 준수는 내향형입니다. 조이는 많은 친구와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고 준수는 혼자 있을 때 편안한 것 같습니다. 미가는 분석 중입니다. 저와 성빈이는? 외향형이죠.” 그 와중에도 성빈이는 뭐라도 더 하고 싶은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나머지 N과 S, T와 F, P와 J의 특성은 유인물을 봐주시고요. 이후에 제가 우리 반 모두를 예리하게 관찰해서 MBTI 유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흥겨워했다. 정보 활용, 의사소통, 대인 관계 역량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1. 기울어진 운동장」중에서
한 가지 수확이 있었다면 내 성격 유형을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화의 진단에 친구들의 인정으로 나는 ISTJ임이 확증됐다. 내향형, 감각형, 사고형, 판단형이라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이야기는 마라탕 맛 20%에 MBTI 이야기가 60%는 넘었을 것이다. 마라탕과 함께 반 친구들의 성격 유형을 짐작해 보면서 깔깔댔다. 공사 구분이 명확하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나는 사고형 ‘T’였고, 감정적이고 공감을 잘하며 얼굴에 표정이 잘 드러나는 이화는 감정형 ‘F’라고 했다. 그리고 시험공부를 미리 계획대로 착실하게 추진하는 나는 판단형 ‘J’라고 했고, 이화는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개방적이며 융통성이 많아 인식형 ‘P’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미가를 도마에 올려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럴수록 알다가도 모를 친구 같았다. 미가는 해맑게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정이 많지만,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미가의 깊은 눈과 다문 입에 담긴 숨은 MBTI가 궁금했다.
---「2. 명륜고 MBTI 상담실」중에서
미가가 큰 걱정거리다. 나와 정반대 세계에 있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명륜고에서 나의 청소년기와 가장 닮아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더 짠하고 티를 내지 않는 범위에서 정을 주고 싶다. 어쩌면 미가가 나보다 더 혹독하게 청소년기를 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로부터 사랑받지 못함에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활기찬 모습과 온화함을 표현하려니 속은 얼마나 끓을까? 그런데 학내 문제로 징계하겠다는 교감의 으름장에 때아닌 여름날에 한기가 서린다. 어떻게라도 미가에게 닥치는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뒤늦은 교육적 사명감에 밤잠을 설친다. 1학년 단톡방에 올린 예비종 반대 글, 교육청 민원을 제기한 것, 시그너스 후배를 움직여 시위했던 것이 다 미가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고 나와 미가를 연달아 불러내 정해진 그림에 퍼즐 맞추듯 우리를 취조하듯 물어댄다. 그럴수록 예비종 문제와 관련한 각 사안의 범인은 달라도 이익을 보는 자는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3. 도깨비 도로」중에서
“준수야, 네가 전에 물었던 것 말해줄까?”
“응. 난 네 과거까지 다 듣고 싶어.” 사실 나는 미가의 오늘과 지금 마음이 궁금했다. 할머니 산소에 왜 마트료시카를 놓아두려 했는지, 바다에 마트료시카를 왜 던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물음이 아니라 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수능처럼 정해진 답은 없다. 저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다.
“그냥 서사적 자아를 부정하고 싶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매킨타이어 알지? 나는 이제 누구의 딸, 몇 반의 부반장, 은혜의 집의 누구, 몇 살 때의 내가 아니라 그냥 지금 여기의 나로 탄생하기 위해 창조적 파괴를 한 거야. 과거의 나를 바다에 버린 거야. 그래도 현재의 나는 남아있어.” (…중략…)
“미가야,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너의 작은 모습까지도 나는 모두 보고 싶어.”
“야, 멀리서 그게 보이냐? 가까이 다가와야 작은 게 보이지.” 미가를 봤다. 미가도 오늘은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내 눈이 떨렸다.
---「4. 마트료시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