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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나 안자고

뭐하나 안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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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50*210*20mm
ISBN13 9791197639579
ISBN10 119763957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하지만 언제까지나 구경만 하는 삶으로는 끝나고 싶지 않다. 날마다 배우고 성장하여 '구경하는 사람'에서 '구경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기를 갈망한다.
--- p.10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본 이는 결심한다. 삶의 한 순간도 놓쳐버리지 않겠다고. 최대치로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나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병원이 아닌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내게는, 책상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다. 책들을 다시 새롭게 읽으며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읽고 들여다보는 책읽기를 해야 했다. 내 생각과 내 삶이 담긴 글을 쓰기 위해서. 내 삶에 과연 무엇이 남을까? 내게 끝내 머물러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내가 진정 원했던 건 뭘까? 60대 늦깎이, 이제 나는 작가로 살기로 결심했다.
--- p.17

여러 대의 버스가 섰다가 지나가고 한참을 더 기다려서 팔에 힘이 다 빠져갈 즈음에야 그는 버스에서 내렸다. 신과의 접속으로 더 충만해져 돌아온 그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저만큼 앞서서 걸어갔고 뒤처져 따라오는 아내의 쓸쓸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못내 서운하고 화가 난 채 말없이 집으로 가는 캄캄한 길엔 전봇대 불빛만 환했다.
--- p.27

책 빌리러 가는 길은 늘 설렌다. 탐험가가 모르는 세계를 탐험하러 가는 심정이 이러할까? 먼젓번에 욕심껏 빌려와 배낭 가득 빵빵해진 책들은 먼 나라로 여행가는 여행자의 짐처럼 무겁다. 반납하러 가는 길 내내 어깨와 무릎과 발바닥을 짓누른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신간 서적이 있는 서가부터 살핀다. 틈 나는 대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신간이 언제 오는지를 살펴 두어야 발빠르게 신간도서를 차지할 수 있다.
--- p.59

-세례의 시간
먼저 샤워기 아래 서서 뜨거운 물세례를 받는다. 비누 거품질을 하고 나서 뽀드득뽀드득 헹굼 세례를 받는다. 이를 닦고 머리까지 감고 나면 유쾌 상쾌 통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미루어왔냐고요.

-온탕 입수
앗, 따뜻한 물이 온몸을 감아 도는 이 감촉 정말 좋다. 물의 손바닥이 말랑말랑하게 내 몸을 건드리고 물의 혓바닥이 부드럽게 내 몸을 핥고 지나간다. 꿈결처럼 나른한 십 오 분을 지나...
--- p.94

사진을 찍고 나면 사진에 버금가는 사유의 글쓰기를 늘 생각한다. 사유의 글쓰기가 사진의 아름다움을 넘어서고 싶지만 생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을 때는 텅 빈 노트처럼 내 삶이 빈집 같다. 사진에 담긴 것들이 실제보다 더 아름답듯 글로 표현되는 나는 실제보다 멋지게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꼼꼼히 돌아보고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려는 것은 삶의 빈 공간을 채우고 사유의 빈집을 완성하려는 것이기에 절실하다. 내 안에 내 존재의 집을 짓는 일. 나를 들여다보는 일.
--- p.117

할머니는 내가 고2 때 돌아가셨다. 여름방학 기간이어서 임종을 볼 수 있었다. 숨을 거두시기 며칠 전,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힘겹게 빼서 내게 주셨다. 살이 빠져서 잃어버리게 될까 봐 실이 칭칭 감겨 있었다.
--- p.157

어린 시절 할머니 집 벽은 신문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 동안 할머니 집에서 보내야 했던 작은 언니와 나는 심심한 날엔 한 단어를 정하고 누가 먼저 그 단어를 찾나 내기를 하곤 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읽기도 어려운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한 속에서 아는 글자를 찾아내는 일은 모래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는 일처럼 지난한 일이었다. 만약 누군가 이 글씨를 가지고 이야기도 해주고 뜻도 풀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은 공부가 되었을까?
--- p.179

색깔 있는 모든 것들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산에서 만나는 나무의 초록색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는 풀, 꽃, 나무, 새, 곤충, 물고기 등 자연의 모든 생명들처럼 나도 이제 나만의 색깔을 내어야 할 때가 되었다. 더는 무채색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색으로 빛나길 바란다. 쓸 거리를 생각하고 찍을 거리를 찾으며 걷는 산책길은 행복하다.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뭉클뭉클 살아난다. 순환하는 계절의 아름다움 속에서 눈과 마음이 보는 것들을 글과 사진으로 옮기는 기쁨이야말로 계절이 주는 기쁨 중 가장 큰 기쁨이다. 바라보는 순간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을 어떻게 그냥 흘려보내고 말겠는가?
--- p.206

주머니 달린 옷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지품들을 담을 수 있는 기능만은 아닌 다른 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어릴 적부터 겪어 왔던 수많은 결핍들 중에서도 특히나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한 결핍감 때문이 아닐까? 하고 우리는 생각한다.
--- p.213

인간은 죽어서야, 주머니에서 놓여 나는 것이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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