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포괄적으로 다룬 책이 필요한 시대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그만큼 근래 들어 위스키의 세계가 그 어느 시대보다 역동성을 띠어가고 있다. 이런 역동성의 원동력은 뭘까? 먼저 한창 확산 중인 위스키 붐이 하나의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위스키의 품질, 개성, 가치에 눈뜨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특히 버번위스키를 위시한 위스키들의 가격과 가치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위스키는 다른 증류주가 무너뜨릴 수 없는 아성을 지키고 있다. 위스키업계는 늘어나는 수요에 부응해 생산량을 늘리며 생산능력을 증대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증류소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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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아는 토양학, 지리학, 응용토양학, 미생물학, 일사(日射), 기상학 등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테루아의 관건은 장소에 있다. 그것이 포도나무든 개별 증류소 부지이든 간에 뭔가의 근원지인 지상의 특정 지점을 중요시한다. 다시 더프타운을 예로 들자면, 글렌피딕, 더 발베니, 키닌비 모두 자신들만의 테루아를 갖고 있고, 그것은 몰트락, 글렌둘란도 마찬가지다. 숲에도 테루아가 존재한다. 스위스의 오크와 스페인의 오크는 서로 다른 풍미를 품고 있다. 그늘진 비탈의 나무들은 햇빛이 잘 드는 비탈의 나무들과 풍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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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모든 항목에는 샘플로 선별한 위스키의 시음 노트를 함께 실으며 이 위스키들을 플레이버 캠프로 분류해 놓았다. 이 플레이버 캠프를 참고하면 비슷한 종류의 위스키들을 비교?대조해 볼 수도 있고 증류 기술자가 숙성 방식을 통해서나 사용하는 오크 통의 종류를 바꿈으로써(혹은 이 둘 중 한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플레이버 캠프를 변환시킬 수 있다는 점도 느껴볼 수 있다. 같은 플레이버 캠프에 드는 위스키들 중에서 이미 친숙한 위스키와 처음 알게 된 위스키를 골라 비교 시음해 보길 권한다.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찬찬히 음미해 봐라. 멋부린 표현을 써서 일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과일 향이나 훈연 향이 난다거나 가볍다는 식의 단순한 말로 표현하면 된다. 그런 다음 또 다른 위스키를 찾아 계속 표현을 해보고 또 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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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위스키는 그 땅의 향을 증류해 담아낸다. 가시금작화의 코코넛 향, 금작화와 뜨거운 모래사장에 흩어진 젖은 해초의 완두콩 껍질 냄새 야, 생체리 꽃의 섬세한 향. 히스(헤더)의 알싸한 향, 늪도금양, 베어낸 풀에서 풍기는 오일리함. 훈연장, 해변의 모닥불, 굴 껍데기, 소금물 등등 피트의 오만가지 향. 차와 커피, 셰리, 건포도, 커민, 시나몬, 육두구 등의 이국적 향. 이 모든 향이 생겨나는 기반에는 화학적 역할이 있지만 문화적 역할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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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 표본에 집착해왔다는 이유를 들어 일본의 위스키를 복제품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턱없이 잘못된 통념이다. 일본에서 애초부터 세웠던 목표는 일본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일본 위스키가 그 땅과는 단절된 채 기술만 내세우는 위스키라는 통념 또한 있는데 이 역시 따져보면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 위스키 제조업자들이 초반에 과학에 의지했던 것은 맞다. 하긴, 그 방법이 아니면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200년 동안 민간에서 지혜가 쌓이고 쌓이도록 기다려야 하는가? 1923년, 토리 신지로가 일본 최초의 위스키 전용 증류소 야마자키를 세웠을 때 그와 그가 고용한 증류 기술자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통찰력 있는 두 사람이 세운 회사 산토리와 닛카가 현재까지도 일본 증류업을 지배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꿈은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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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주는 18세기의 정착민들에게 옥수수 재배를 조건으로 내걸어 공짜로 땅을 나누어주며 위스키 생산에서 유리한 출발점을 끊었다 .농장 증류 시설이 소규모 증류소로 자리 잡게 되었고 19세기 초반에 이르자, 위스키가 담긴 통들이 오하이오주를 거쳐 미시시피주로 실려 갔고, 또 이곳에서 뉴올리언스까지 흘러 들어갔다. 체계 없이 대충대충이었고, 시장으로 옮겨지기까지 얼마나 걸리건 통속에서 마냥 숙성되었으나 이것이 의도적으로 오크 통에 숙성된 최초의 위스키 스타일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킨 일등 공신은 스코틀랜드인 제임스 크로우였다. 그는 1825년부터 31년 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위스키 제조에 사워매싱(sourmashing), 당도 측정, 산성도 검사 등의 과학적 정밀성을 도입시키며 일관성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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