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니는 영생을 사느니 파란 딸기를 먹고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삼엄한 경비를 피해 인적이 드문 늪에서 자라는 독초인 파란 딸기를 먹고 자살한 시체들이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나는 언니가 들려주는 그 이야기를 좋아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파란 딸기를 찾을 거야. 그러면 우리만 먹지 말고 잘 심어서 키우자. 마을을 덮을 만큼 자라면, 마지막에 제일 큰 파란 딸기를 둘이 나눠 먹는 거야.
2.
딸기를 쥐고 고민하는 나의 주변으로 냉장고 문 좀 닫으라는 경고음이 사이렌처럼 울려 퍼진다. 그래봤자 딸기 한 개 아냐? 나는 냉장고 문을 밀어 닫으며 고민을 끝낸다. 아직 냉기가 생생한 딸기 한 알이 내 손에 쥐여 있다. 입에 딸기를 털어 넣는다. 맛이 조금... 다른가? 곰곰이 음미해 보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발등이 보이질 않았다. 이게 뭐지? 어느새 집안 바닥에 자욱하게 연기가 고여 있었다. 가스 냄새가 나는 것 같진 않은데. 황급히 돌아본 부엌에 누군가 서 있었다. (…) 소통은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방금 외계인이 설치한 덫을 삼켰다는 것을. 파란 딸기가 나를 비웃듯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3.
대체 누가 가져다 놨을까? 우선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물어보겠지. 이거 누구 거냐고. 만약 아무도 그런 것을 가져다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은밀하고 달콤한 공상에 빠지기는커녕 현실적인 안전에 대한 공포에 떨 거야. 평범한 빨간 딸기면 우리 중 누가 술 먹고 사 와서 깜빡했겠거니 하겠지만, 파란 딸기를 사 온 걸 잊기는 어렵잖아. (…) 파란 딸기가 등장한 이후, 아무런 것이 변하지 않아도, 우리는 변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빈곤함과 취약함을 숨 쉬는 순간마다 실감할 테니.
4.
심각하게 앉아있던 삼부자 가운데 가장 먼저 일어난 건 아빠야. 인터넷을 맹신하는 밀레니엄 세대 아빠는 곧바로 웹서핑에 돌입해. 창을 껐다 켜고 온갖 텍스트와 이미지가 나타났다 사라져 눈이 어지러운데, 그런 아빠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너드 동생은 뒤에서 말을 얹기 시작하지. 아빠, 세계농업전략 보고서는요?
5.
: 이베이에 갖다 팔 사람은 없어?
---「냉장고 문을 여니 파란 딸기가 한 접시 있었다.」중에서
1.
언니 저 사실 외계인이에요.
뭐? 이상한 장난치지 마. 빨리 밥이나 마저 먹어. 이거 식으면 맛없어.
(…)
사랑이 뱉는 말 하나하나가 충격적이었다. 저는 다른 소은하군에서 왔어요. 그렇구나. 아니, 그렇구나는 무슨 그렇구나지?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사랑은 언제부터 외계인이었던 거지? (…)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냉동 볶음밥과 인스턴트 미소 장국을 데워 먹다 말고 나에게 고백을 하는가? 어느덧 다시 시작했던 숟가락질을 멈춘 나를 보고 사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직한 왹생을 살고 싶어요.
너 혹시 사람 마음도 읽을 줄 아니.
아뇨, 그건 아직이에요. 저 외계에서 아직 아기라서요. 이백 살 정도...
(아직이라는 건 언젠가 가능해진다는 거구나. 등골에 땀이 비쭉 흘렀다.)
문득 얼마 전 거실에 두고 읽던 책이 떠올랐다.
〈정직한 인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이 너 언니 책 읽었구나.
네.
그냥, 언니는 제 동거인이고 지구에서 가장 친한 친구니까. 거짓말 그만하고 싶었어요. 이백 년 평생 동안 제 행성에서 한 거짓말보다 지구 와서 한 거짓말이 더 많아요. 이거 피곤해요 은근히.
조용히 말하는 사랑을 나도 조용히 바라봤다. 지구의 적막이 식탁 위로 따뜻하게 가라앉았다.
2.
상호 건강한 동거를 위한 약속들을 지켜주길 바라오. 마지막 문장을 쓰고 편지를 닫은 곰팡이 A 씨는 혼자 고민에 빠졌다. 이 아이는 믿으려나. 한때는 세계가 곰팡이의 전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런 쓸데 없지만 과시하고 싶은 말들은 마음속으로 꾹 삼킨 A 씨였다. 오늘도 곰팡이 A 씨는 음습한 방에서 때를 노리며 기다릴 뿐이다. 물기와 습기가 있는 곳에서 말썽 피우지 않고 잠복한 상태로 몸집이 커질 적절한 때를. 그 순간, 같은 공간 속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시선이 가로질렀다.
3.
어언 오 년째, 이 낡은 투룸에서 함께 거주 중인 나의 룸메이트는 처녀귀신이다. (진짜로 처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처음 이사를 왔던 날, 나보다 먼저 집안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그녀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면, 있지도 않은 애가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혼비백산 집을 빠져나와 카페에 앉아 인터넷 창을 켜 보았다.
질문: 굿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대충 얼마나 들까요?
답변: 능력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인 굿 비용은 1,200만 원에서 1,800만 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음. 굿은 아닌 것 같고. 만약 이사한다면? 계약 파기로 인해 물어야 할 위약금만 500. 거기에 복비와 이전에 집을 찾기 위해 사용해버린 연차와, 큰 맘 먹고 거금 들여 거실 사이즈에 맞춰 주문한 소파까지 더하면... 귀신은 나를 죽일 수 없지만, 돈은 할 수 있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돈이었던 나는, 그렇게 그녀와의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4.
某 씨는 오늘 여행에서 돌아왔다. 연인과의 이별, 잦은 결근으로 인한 해고, 그렇게 일상이 텅 비어버리자 저지른 기행이었다. 슬프게도 그는 갑작스러운 조류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지니지는 못했기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선 변화 앞에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냥 이 부정적인 파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어항이 놓인 장식장에 한참이나 턱을 괴고 있던 그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피곤했겠지.
나는 그런 某 씨를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이 눅눅한 집에서 두 존재가 이보단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건강한 동거를 위한 약속」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