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가 되면, 어느 학교에서나 꼭 한 번씩은 벌어지는 학생들 사이의 치열한 기세 다툼을 그리고 있다. 기숙사 방 침대 맡기부터 반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 기선 제압을 위한 주먹다짐까지……. 돈 많은 부잣집 도령 마수이칭과 힘세고 영악한 챠오안 중에서 학급의 기선을 제압하는 승자는 누구일까? 과연 승자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이 침대에 깔려 있는 이부자리, 네 거냐?”
“그래.”
챠오안이 마수이칭을 곁눈으로 힐끗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마수이칭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침대는 이미 쟤가 맡았어.”
챠오안은 얼굴을 돌려 나를 쏘아보았다. 그의 눈빛 속에는 낯선 기운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늦가을의 찬바람을 맞기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첫사랑
유마디 중학교 운동장에서 곡마단 공연이 열리고 곡마단 단원들은 학교에서 며칠을 묵으며 공연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곡마단 단원인 열여섯 살의 소녀, 가을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데…….
나는 무대 가까이에 앉아 가을이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그녀의 볼록한 가슴이 머물자, 심장이 벌떡벌떡 뛰면서 숨이 가빴다.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 같아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내 눈앞에는 그녀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셰바이싼도 땀을 줄줄 흘리며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을이는 무대 위에서 개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뿐 이렇다 할 묘기를 보여 주지 않았는데도 무대 아래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잘못된 선택
린빙의 가장 친한 친구 마수이칭은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마수이칭은 자신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란 모든 원인을 할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속 깊은 린빙 덕에 조금씩 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어 가는데…….
그날 오후에 할아버지는 팔에 깁스를 했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의사는 다른 곳에 이상이 없는지 더 검사해 봐야 한다고 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여전히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마땅히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데다 씻을 만한 곳도 없자 마수이칭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침내 그가 내 손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가자, 집으로 가!”
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너희는 돌아가거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전 여기 있을 거예요.”
마수이칭은 갑자기 발작하듯 할아버지에게 소리쳤다.
“그래, 다쳐도 싸! 싸다고!”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깁스 때문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할아버지의 손이 계속 떨렸다. 할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붉은 깃발
사오지핑 선생님을 중심으로 린빙과 몇 명의 반 친구들은 전국 대연합에 참가한다. 중국 문화 대혁명의 일환이었지만, 아이들 눈에 비친 전국 대연합은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신 나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날을 보내던 린빙은 혼잡한 상황에 대열을 잃어버리고 타오훼이와 둘만 낯선 상하이에 남겨지는데…….
소개장이 없다는 이유로 다들 우리를 받아 주지 않았다. 숙소를 구하는 데 번번이 실패를 하자 온몸에 기운이 쑥 빠졌다. 정오 무렵에는 걸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아서 어느 초대소 정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곳은 여태까지 들른 초대소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전국 대연합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열을 지어 무시로 드나들었다. (중략)
그때 정문 앞에 누군가가 떨어뜨린 깃발이 눈에 띄었다. 순간,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나는 그 깃발을 얼른 집어 들고는 타오훼이에게 손을 흔들며 빨리 오라는 눈짓을 했다. 얼마 안 있어, 대열 하나가 입구 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타오훼이에게 속삭였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마. 그냥 나만 따라와.”
일기장 분실 사건
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기장을 빼앗기고, ‘반동분자’가 된 양원푸. 린빙은 양원푸가 반동분자인 증거를 찾아내라며 일기장을 맡게 된다. 하지만 린빙은 일기장을 잃어버리게 되고, 양원푸를 일부러 도와주었다는 누명을 쓰며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과연 일기장을 훔쳐간 범인은 누굴까? 진정한 반동분자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 일기장,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돼!”
그 말은 챠오안이 일기장 분실 사건을 크게 걸고넘어지겠다는 암시였다. 실제로 이 사건은 아주 빠르게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갔다.
“반동 일기장이 분실됐다!”
챠오안은 이 사건을 통해 그 일기장에 반동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음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동시에 ‘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다소 비장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냈다. 그의 용의주도한 계획과 단어 사용 덕분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누군가 나에게 일러 주었다.
“애들은 그 일기장이 분실된 게 아니라, 네가 양원푸의 증거를 없애려고 일부러 숨겼다는 눈치야!” (중략)
마수이칭과 친구들이 나를 위로했다.
“두려워하지 마. 만약 챠오안이 너한테 무슨 짓이든 하면 우리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말이 더 자극적으로 들렸다. 마치 내가 함정에 빠져 곤경을 치르는 영웅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네 탓이 아니야
린빙은 학교의 문예 선전단에서 대표 비파를 연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남을 지휘하는 자리에 오르게 된 린빙!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금세 좌절한다. 게다가 린빙보다 한 학년 아래지만, 연주 실력도 뛰어나고 부잣집 아들에, 지도력까지 갖추고 있는 자오이량에게 대표 비파 자리마저 빼앗기고 만다.
나는 꽤 멀리까지 걸어간 뒤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계단에 서 있었다. 항상 보던 그 자세 그대로. 약간 위로 쳐든 고개, 팔짱을 낀 채 조금 앞으로 내민 왼발, 그리고 뒤로 젖혀진 듯한 자세, 보일 듯 말 듯 흘리고 있는 미소. 자오이량은 항상 그런 자세로 서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며 그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문예 선전단에서 내 위치는 한순간의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녕, 빨간 기와
빨간 기와를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린빙은 하루 종일 학교에 머물며, 빨간 기와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들을 부여잡고 있었다. 3년 동안 짝사랑하던 타오훼이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표현하지도 못한 채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간다.
드디어 까만 기와(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선발 방식이 발표되고 입학자 명단이 빨간 기와 벽에 붙었다. 과연 린빙은 까만 기와에 들어갈 수 있을까?
다시 한 달이 지나 드디어 소식이 왔다. 입학자 명단이 유마디 중학교 행정실 창밖에 나붙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게 내 이름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길로 바람처럼 유마디 중학교로 달려갔다. 담벼락 밑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틈새로 파고들어 벽보를 샅샅이 훑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