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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선생

팽 선생

[ 양장 ]
리뷰 총점8.3 리뷰 13건 | 판매지수 12
베스트
스페인/중남미소설 top100 1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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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90g | 128*188*20mm
ISBN13 9788932916279
ISBN10 893291627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4월 6일 수요일, 해가 질 무렵 막 집을 나서려는데, 레노 부인이 그날 오후 리볼리 거리에 있는 카페 보르도에 급히 와줄 것을 요청하는 전보를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닌 데다가 아직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서두르기만 하면 제시간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희한한 사건에 연루되었을 거라는 첫 번째 조짐이 바로 나타났다. 계단을 내려가다 3층에선가 두 사람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어두운 바바리코트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이 나보다는 낮은 에 있었기 때문에 챙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계단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데다 내가 조심스럽게 소리 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세 계단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나와 정면으로 마주칠 때까지 그들은 나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 p.11

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치챌 수도 없을 정도로 가는 비였다. 그러나 밤의 고독감을 증폭시키기엔 충분했다. 역시 레노 부인은 우산을 가져왔다. 사람들 모두 언제까지라도 각자의 집에 처박혀 있기로 한 것처럼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금세 몇 가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모든 빛은 광고 조명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전 때문에 집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팔짱을 끼고 보도를 걸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레노 부인의 옆모습, 우산에 어지럽게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비록 작은 부분이긴 했지만 뭔가를 공유하며 함께 모험을 하는 듯한 기분.
--- p.33

「우리는 선생님께서 바예호 씨를 치료할 생각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둘 중 더 깡마른 사내가 조금은 슬픈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포도주 잔을 사이에 두고 그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붉은 뱀장어 같은 혀를 천천히 움직여 이를 훑더니, 가식적으로 와인을 홀짝이는 척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나를 쫓아왔던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 p.39

하느님 맙소사! 나는 남자의 구두를, 반짝이는 구두 끝을 보면서 생각했다. 제발 그가 웅크리지 않았으면…. 눈을 떴다.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 나의 방 앞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등 뒤에서, 병원의 복도 끝에서 여인이 웃고 있었다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그 소리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웃음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진정제 같았다. 조금 있으니까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해체되어 버렸다.
--- p.56

내 앞에 있던 환자의 마른 얼굴이, 병원에 상당 기간 동안 갇혀 지낸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존엄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얼굴이, 조금이나마 펴지는 것 같았다. 나머지는 읽어 내기 어려웠다. 검은 머리카락, 환자복 윗도리로 아무렇게나 가려진 목덜미, 땀을 흘린 자국이 없는데도 왠지 번들거리는 피부. 병실의 정적 속에서 들리는 것은 그의 딸꾹질 소리뿐이었다.
--- p.63

누구인지 모르지만 목욕통에서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한 사람이 있었다. 내 위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곳에 그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딸꾹질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경련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바예호 씨.」 더듬거리는 말조차도 거의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기어들고 있었다. 대답이 없었다.
--- p.108

나는 손가락으로 창틀을 따라 더듬어 봤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이었다. 창문엔 잠금장치도 없었고, 그렇다고 위나 아래로 여는 것도 아니었다.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분명 내가 내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스위치를 찾았다.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빛으로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분명한 나의 〈존재〉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보잘것없긴 했지만 확실한 관객으로서 말이다.
--- p.156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8년, 파리. 최면요법가인 팽 선생을 두 명의 스페인 남자가 쫓고 있다. 팽 선생이 얼마 전 페루에서 온 어느 시인을 치료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부터다. 시인의 이름은 세사르 바예호. 스페인 남자들은 팽 선생에게 돈까지 쥐여 주며 당장 치료를 그만두라고 협박한다. 한편 바예호는 알 수 없는 병에 멎지 않는 딸꾹질까지 겹쳐 죽어 가는 처지로, 의사들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팽 선생은 점점 더 바예호의 치료에 집착하게 되고, 자꾸만 악몽을 꾸게 된다. 그리고 점차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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