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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비탄 *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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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26쪽 | 198g | 135*200*20mm
ISBN13 9791191783063
ISBN10 1191783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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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먼 옛날, 아직 애신각라 씨의 왕조가 유월의 모란처럼 빛나게 번영하던 시절, 중국의 대도시 남경에 맹세도라고 하는 젊디젊은 귀공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 문장」중에서

왠지 귀에 익지 않은 묘한 목소리를 내는 서양인의 입술에서 ‘인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귀공자는 자신의 가슴이 저도 모르게 두근두근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물론 태어나서 한 번도 인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 p.29

인간은 진주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인어를 보게 되면 어느 누구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주에는 차가운 광택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인어는 요려 (妖麗) 한 자태 속에 뜨거운 눈물과 따스한 심장과 신비로운 지혜를 품고 있습니다.
--- p.30

인어의 눈물은 진주의 빛보다 수십 배나 더 맑습니다. 인어의 심장은 산호 구슬보다 수백 배나 더 붉습니다. 인어의 지혜는 인도의 마법사보다 더 신비로운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어쩌다가 배덕한 악성을 가진 탓에, 인간보다 비천한 어류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 p.31

키가 인간과 비슷한 정도인 그녀의 몸이 함빡 잠겨 있는 항아리는 높이가 네다섯 자쯤 될까요. 그 안에는 영롱한 바닷물이 찰랑찰랑 채워져 있어, 인어가 숨을 할딱일 때마다 무수한 거품이 그녀의 입에서 수정 구슬처럼 보글보글 자잘하게 일어나 수면 위로 올라갑니다.
--- p.36

마치 숨이 멎은 듯 온몸을 꼿꼿이 긴장한 채 하염없이 멈춰 서서 찬란한 물항아리의 빛을 응시하고 있는데, 믿을 수 없게도 그의 눈동자에서 감격의 눈물이 가만히 스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p.37

나는 지상의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이 세상의 가장 행복한 운명이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대양의 물속에, 이토록 미묘한 생물이 사는 신비로운 세계가 있다면, 나는 오히려 인간이 아닌 인어의 종족으로 타락하고 싶네. 너무도 아름다운 저 비늘 옷을 허리에 두르고 이런 바다의 미녀와 영겁의 사랑을 즐기고 싶구나.
--- p.39

눈알 전체가, 물속에서 물이 응고한 결정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연푸른빛으로 맑았고, 그 밑바닥에는, 달콤하고 서늘한 물기를 품은 채 영혼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영원’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숭엄한 빛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 p.40

인어의 곁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오직 주인인 귀공자뿐이었습니다.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둔 채, 물속에서 할딱이는 인어와, 물 밖에서 번뇌하는 인간은 온종일 말없이 마주 보며, 한 사람은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운명을 한탄하고, 또 한 사람은 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부자유를 원망하며 무미한 시간을 쓸쓸히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 p.49

밤이 되면, 그녀의 눈망울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과연 이방인의 말대로 진주 빛깔의 환한 빛을 뿌리며, 암흑의 방에서 반딧불처럼 형형히 반짝입니다. 그 창백하고 밝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면서 물속을 떠돌아다닐 때면, 그렇지 않아도 요염하고 아리따운 그녀의 몸은, 하늘의 별에 감싸인 항아처럼 맑고 기품 있게, 또한 어두운 밤의 도깨비불에 비친 유령처럼 저주스럽고 사무치게 귀공자의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 p.49

“그런데 아마 그 공원에는 더 예리하게 우리의 영혼을 위협하고, 더 새롭게 우리의 관능을 유혹하는 것이 있겠지. ―― 색다른 걸 좋아하는 내가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전대미문의 구경거리가 있을 거야. 그게 뭔지 난 모르지만, 당신은 분명 알고 있겠지.”
--- p.75

그런데 당신, 설마 그 마술사를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죠? 인간보다 요괴를 좋아하고, 현실보다 환상 속에 살아가는 당신이 평판 좋은 공원의 마술을 보러 가지 않을 리가 없겠죠. 설령 그 어떤 신랄한 저주나 주술을 건다 해도 연인인 당신과 함께 보러 간다면, 난 절대로 유혹에 사로잡힐 리는 없어요.
--- p.76

내가 그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묘령의 여자 얼굴이 종기로 곪아 터진 듯한, 아름다움과 추함이 기발하게 어우러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똑바른 것, 둥근 것, 평평한 것, 그렇게 올바른 형태를 가진 온갖 물체들을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에 비춰 보는 것 같은 그런 불규칙함과 우스꽝스러움과 메스꺼움이 한데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 p.87

나는 그들이 왜 이런 마의 왕국에 와 있는지 그 이유를 바로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성인이든 폭군이든 시인이든 학자든, 역시 모든 사람은 ‘신비로움’이라는 것에 끌리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 p.99

여러분은 마의 왕국의 포로가 되는 것이 그토록 두려우십니까? 인간의 위엄이나 형태라는 것에 그 정도로 집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겉모습이 나비며 공작이며 표범 가죽이며 촛대로 변했다 해도, 그들은 지금도 인간의 정서와 감각을 잃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가슴속에는 여러분들이 꿈에도 알 수 없는 무한의 쾌락과 환희가 넘쳐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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