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은 삶과 죽음, 그 이면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것들은 언제나 양면성을 띠고 있었다. 누군가가, 혹은 어떤 것이 잘 되고 성취된다는 건 누군가의, 혹은 어떤 것의 희생과 실패를 의미했다. 누군가의 부는 다른 누군가의 궁핍을 낳았고, 특별한 친밀감을 가진 이들이 있으면 반드시 소외된 누군가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무리 속에서는 더욱 빈번하게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노라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돌처럼, 타인들에게만 그 존재성이 비춰졌을 뿐, 정작 그녀 자신은 스스로를 인식하길 끊임없이 경계하며 일생을 살았다. 그 사실을 M은 이제야 깨닫는다. 어머니 삶의 궤적을 둘러보고서야. 그녀를 딱딱한 오동나무 관 속에다 유폐시킨 지 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어쩌면 지금쯤 어머니는 다른 세상에서 점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하루하루를 돌처럼 살아가면서. M은 만일 그곳에서 얀과 자신이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세 사람의 관계가 안정적인 정삼각형 구도를 이룰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리라. 그곳에서의 어머니는 그걸 전혀 원치 않을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살아온 날들과 정반대의 삶을 꿈꾸고 있을는지도. 외다리가 된 얀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여 변해갔듯이.
---「응시」중에서
그 말이 옳을는지도 몰랐다. 만일 어머니가 장애인이 아니었더라면 규원은 그 작가의 기발하고 풍부한 상상력에 압도당해, 그들처럼 그 작가의 작품을 변함없이 예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원은 그들 앞에서 어머니를 밝힐 수 있어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어머니야말로 작가가 그처럼 흉측하게 처단하고 싶어한 바로 그 ‘꼽추’라고.
규원은 난생처음으로 어머니를 숨겼다. 어머니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어머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렸다. 언제부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당당함의 근원인 ‘어머니’를 상실해버렸던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장애인의 신체적 결함을 악으로 상징화시켜,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인 쪽으로 고착시켰다.
규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잔인한 상상력이 창작에 동원되어야 하는지를. 그들이 한 번만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만나봤더라면 절대로 그런 묘사를 쓰지 않았을 텐데, 라고 한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녀」중에서
넌 장례를 치르면서 문득 깨달아.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네가 그에게서 받았다는 걸.
*
무거운 발걸음을 바닷가로 옮겨. 바다가 눈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바다 냄새가, 그 다음엔 파도 소리가 들려오지. 넌 바다를 보면 언제나 어머니 생각이 나. 해 질 녘이면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바닷가를 산책했지. 그때는 그가 지팡이에 의지하기 전이었고, 어머니가 바다를 보고 환하게 웃을 수 있을 때였어.
내일은 국립 호국원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이야. 요양병원에 그를 찾아갈 때처럼 그가 좋아하는 팥빵 한 바구니를 들고서. 어린아이가 된 그는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병원정원에 나와 있었지. 분홍 차림의 또래들과 어울려 해바라기하고 있었어. 그는 네가 건네주는 간식을 받아들며 활짝 웃어 보인 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지.
“누구십니까?”
과연 넌 누구일까. 넌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체적으로 보게 된다고 한 어느 과학자의 말을 떠올려. 그 사람이 주장한 건 우리는 개체가 아닌, 하나로 통합된 존재라는 내용이었지. 다시 누구냐고 한 그의 질문을 소리 내어 웅얼거려 봐. 불현듯 넌 어쩌면 여태 네 아비인 그가 그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해왔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네가 당도하게 될 세상에서 그를 또다시 만나게 될는지 지금의 넌 알 수가 없어. 다만 그때는 그가 널 확연히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누구십니까?’
이 질문은 오늘도 바람이 되어 네 귓가를 맴돌아.
---「누구십니까」중에서
아들아, 너도 혹시 ‘통곡의 방’이라고 들어보았는지 모르겠구나. 캄보디아에 가면 따 프롬 사원이 있어. 크메르 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이자 마지막 왕인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사원이야. 그가 모친의 극락왕생을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지. 거기엔 왕이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방이 있어. 그 방 이름이 바로 ‘통곡의 방’이야. 왜 통곡의 방이라고 한 줄 아느냐. 그래, 네가 짐작한 대로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왕은 그곳에서 가슴을 치며 한을 풀었다는구나. 특이한 점은 돌로 쌓은 사원의 그 방은 어떠한 소리에도 울리지 않는데, 딱 한 가지 소리만이 방을 탕탕 울리게 하지. 넌 그게 무슨 소리일 것 같으냐.
그건 바로 사람이 가슴을 칠 때 나는 소리란다.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손뼉을 치거나 벽을 두드려도 울리지 않던 방이 오로지 가슴을 치는 소리만이 그 방을 텅텅 울리게 하지. 재미있는 건 불효자일수록 그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는 것이다. 어떠냐. 아들아, 너도 한 번 그곳에 가서 가슴을 쳐보고 싶지 않느냐. 네 가슴이 어떤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그 서늘하고 청명한 울림이 네 마음을 어떻게 작동시킬지 궁금하지 않느냐.
---「아들아, 춤을 춰보아라」중에서
“당신이 우리 부모님에게 뭐라고 했어. 저를 작은아들로 여겨주십시오, 하지 않았어?”
아내는 결혼 당시에 했던 말까지 들먹이며 왜 자기 아버지를 유령 취급하냐고 따졌고, 익도의 행동을 노인 학대 수준이라며 비난했다. 장인은 점차 말수가 줄어들고 방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갈수록 위축돼가는 그가 측은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태도를 한 번 바꾸고 나니 그 다음엔 장인을 마주하기가 싫어졌고, 쳐다보면 괜히 짜증나 또다시 외면해버렸다. 어쩌다 처남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에 반가워하고 우쭐대는 그를 보면 화가 치밀었다. 아들이 엄연히 있는데 왜 내가 장인을 모셔야하냐는 불만이 불쑥불쑥 차올랐다.
악행이란 그 범주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다. 익도는 자신의 행위를 누군가는 패륜적으로까지 보기도 하겠지만, 입장에 따라선 합리적으로 여기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극렬히 미워하거나 증오해본 적이 없었다. 상대를 깔보거나 업신여긴 적은 더더욱 없었다. 심지어 거래처 사장이 사기를 쳐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때조차도 그는 앙갚음하려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단 한 공간을 공유하며 사는 이에 대한 감정은 도대체가 조절하기 어려웠다.
---「5분 전」중에서
코끼리가 발걸음을 옮기자 옆모습이 드러났다. 역시 짐작한 대로 코끼리의 등에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람은 바로 할머니였다.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자칫 할머니! 소리쳐 부를 뻔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볼 수 있길 얼마나 고대하던 할머니였던가. 순간, 보이지 않는 강력한 기운이 어깨를 찍어 누르듯 내 감정을 저지시켰다.
마주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선 어떤 근심이나 슬픔, 기쁨이나 희열 같은 것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무의한 얼굴이 내 경솔한 행동을 막았던 건지도 몰랐다. 그저 텅 비어서 고요하고, 또 가득 차서 충만함이 깃든 그런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 영상은 순식간에 빛과 함께 사라져갔다. 대신 잊고 있었던, 가장 행복해하던 순간의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 할머니 등은 왜 이렇게 튀어나왔어? 으응, 보물이 들어있어서 그래. 무슨 보물? 그건 네가 크면 다 알게 돼. 만져 봐도 돼? 돼. 아프지 않아? 내가 호 해줄까?
할머니는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지만 나는 할머니 등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움푹 들어갔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뼈 같았지만, 할머니가 보물이 들어있다고 해서 아가처럼 조심조심 어루만졌다. 내가 호 불며 등을 쓰다듬을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은 나팔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할머니는 코끼리를 탄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