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의 성별이 그녀가 식물학적 지식에 기여하는 본질을 형성했고 최고의 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제약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녀의 사례는 학계가 식물학적 지식 생산을 직접 겨냥하는 활동을 추구하면서 어떻게 귀족 가정의 방대한 자원과 선의로부터 여전히 혜택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서머싯의 젠더와 사회적 지위는 그녀가 식물학사에서 받아온 관심에도 영향을 주었다. 즉, 가정을 기반으로 한 그녀의 원예학적 실험과 연구는 대부분 간과되었다.
--- p.55

뒤피에리는 학문적 전문성과 지적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인정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녀 주위의 석학들은 그녀의 능력과 업적에 대해 감탄했을 것이다. 그녀는 대다수의 석학에게 잘 알려져 있었지만, 기록된 역사는 그녀를 알고리듬을 증명하지는 못하고 적용하기만 하는 인간 계산원으로, 파리 최초의 여성 천문학 교사 중 한 명으로만 기억한다. 이 장에서는 뒤피에리를 가내와 제도적 지식 생산의 광범위하고 통합된 시스템 안에 배치함으로써 여성을 포함해 가내 영역에 제한된 석학들이 어떻게 공식 기관들이 관리하는 지식 생산에 중요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 p.77

길들임의 진화는 드디어 빅토리아 가정과 강한 유사성을 가진 특징에 이르렀고, 빅토리아 가정에서 여성은 남성의 야만적 본능을 계속 완화시키며 그들을 개량하는 자였을 것이다. 거친 남성들은 자신을 인간화시켜 줄 소파 위의 부드러운 아내가 필요했다. 이는 황야의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들에게 매일 일어나는 과정으로, 야생 동물에게 유익한 것과 동일한 특징(시샘하는 자존심, 자기주장, 질긴 인내심과 같은)은 남성 간의 투쟁 및 가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투쟁에서 남성에게 도움이 되었다.
--- p.102

실험실 방법과 절차를 둘러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과 의학의 방향 전환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던 영국에서는 과학의 권위가 실험실이나 정밀 도구에서만 배타적으로 위치하지는 않았다. 다윈은 작스와 서신을 교환했고 항상 그의 전문지식을 존중했다. 다윈에게 가정과 실험실은 연속적이고 공동 생산적이었다. 다윈은 늘 선두적인 화학자와 생리학자들에게 그들의 대학실험실에서 종종 자신의 설계와 방법으로 실험할 것을 부탁했다. 다윈이 진부한 자료들을 자주 사용했다지만 전문장비도 이용했다. 실제로 이조차도 가족에서 비롯되었다.
--- p.105

이제 홈메이드 과학을 추구하면서, 에어턴은 자신의 신뢰성과 결과가 의문시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곧 그녀가 탐구를 진행하는 비전문적인 공간과 직접 관련된 도전이었다. 그녀의 가정 실험실에는, 전자기나 전기저항 같은 영역에서 값을 표준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에 해당하는,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이 지닌 신뢰성이 없었다. 이러한 기관 실험실들은 외부 세계의 진동, 소음, 그 밖의 나쁜 영향이 차단되도록 지어졌다. 이제 실험 결과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를 생산한 과학자에 대한 신뢰성뿐만 아니라 생산 장소의 신뢰성에도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 p.123

미망인으로만 약 15년 동안 계속 연구했지만 에어턴은 여전히 저명한 물리학자의 아내로 묘사되었고, 이에 수반되는 그녀의 개인적인 과학적 신용에 대한 모든 도전을 무릅써야 했다. 비록 스콧의 운명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과학적 정체성과 남편의 정체성을 융합하는 데 그녀가 대체로 공모했다고 주장될 수 있다. 스콧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역할 규정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이런 결단은 1975년까지 결혼한 여성은 지질조사국(Geological Survey)과 다른 과학 및 비과학 공무원직에서 사직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 pp.129~130

이 장은 가내 생활에 관한 문화지리적 연구에서 이전에 간과되었던, 가정 안의 중요한 한 활동으로서의 지식 생산에 주목했다. COL 회원들에게 집은 날씨가 있는 곳(home is where the weather is)이다. 왜냐하면 집에는 날씨 관측과 기록이 행해진 다양한 장소가 있고 집은 그 안에서 날씨와 기후에 대한 그들의 지식 생산 실천이 수행되는 가내 환경이기 때문이다. 날씨는 그것의 의미와 과학적 형태의 많은 부분(데이터 집합)을 가내의 맥락에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식 생산은 가정이 꾸려지고 의미 있게 되는 중요한 수단이며, 이는 가정에 대한 향후 연구에서 인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좀 더 탐구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 p.207

이 모든 평행적이고 장-확장적인 전략들에서 활동의 중요한 연결점을 형성한 것은 가족이었다. 그러나 이는 한 형제의 성공을 행위자인 다른 형제에게서 찾아야 한다거나 조카의 성공을 삼촌의 행위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핵심을 곡해하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전제 조건하에서, 형제들이 비슷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장들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추구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어떻게 그들 아들들의 성공적인 경력도 가능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 3대에 걸친 비슷한 양식을 목격한다. 상이한 가족들 간의 많은 유사점은 가족의 역할을 한 단위로 추적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231

가족정책과 연구정책은 경제성장과 (여성과 과학자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하고 (여성과 과학자들을 포함한) 고용인들에게 권력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자본과 공조하기를 원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야망 사이에서, 상품화와 탈상품화 간의 상호작용을 예증하고 있다. 권력자원이론에서 시민권은 가장 중요한 권력자원으로 간주된다. 페미니스트 연구원들은 여성이 중산층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때 달성 가능한 경제적 자율성도 권력자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 p.288

가내 환경은 과학의 현장으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장들은 주로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근대의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 장은 근대 세계의 가구와 가족의 맥락이 가지각색의 개인들에게 과학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생성에 어느 정도로 지극히 생산적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급속한 과학기술의 변화 속에서 근대적인 실험실과 같은 새로운 과학 현장들이 출현했음에도, 가내 환경이야말로 그 모든 모호함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기획에 매우 중대하다고 입증되었다.

<b>과학 발전의 관점을 가정의 영역으로 전환시킨 획기적인 연구서</b><br/><br/>지금까지는 과학의 발전을 제도 및 전문 영역과 연관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시켜 과학사에서의 가정의 영역, 즉 가사, 집, 가족, 친족 같은 개념을 분석의 중심에 놓는다. 즉, 현대과학이 형성되는 데서 가족생활과 가내 장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가정이 현대과학 발전에 물질적·사회적·상징적 요소로 매우 중요했음을 입증한다.<br/><br/>이 책의 저자들은 주로 근대 유럽의 과학의 발전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인류학, 젠더학, 지리학, 사회학, 과학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내성과 근대과학이 어떤 모습으로 얽혀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열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과학자로 간주된 사람도 있지만 아내, 아들, 딸 같은 다른 가족 구성원, 나아가 하인, 조수, 또는 다른 가구 구성원도 대거 포함되어 있어 근대과학지식의 형성에 가내성이 기여한 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br/><br/><b>세계 각국의 흥미로운 가내 공간 사례를 소개함으로써<br/>제도화된 실험실 뒤에 숨겨진 여성과 가정의 역할을 조명하다</b><br/><br/>1부에서는 제도권 밖의 여성 과학자들에게 유용한 공간이었던 가내 공간에서 이루어진 과학적 실천에 대해 탐구한다. 또한 찰스 다윈 같은 제도권의 남성 과학자가 가내 공간과 교차하며 어떻게 과학 작업을 수행했는지도 분석한다. 특히 가내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생산된 지식이 제도권에서 승인받은 사례를 소개하는데, 그 예로는 타임-랩스 기법을 사용한 동영상 사진들로 식물의 운동을 보여준 헨데리나 스콧, 유리통에 담긴 모래와 물의 실험을 통해 잔물결 자국의 기원을 설명한 허사 에어턴, 부엌 싱크대에서 표면장력을 발견한 아그네스 포켈스를 들 수 있다. 이들의 과학은 실험실에서 생산된 전문과학과 대조하면 ‘홈메이드 과학’이다. 연구주제나 장비, 실험 면에서 홈메이드 과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평가에서도 성차별이 개입했지만 홈메이드 과학은 근대과학에서 독자적인 하나의 줄기를 형성했다.<br/><br/>2부에서는 가내성을 역동적인 개념으로 포착함으로써 가내 영역과 공적 영역, 가내성과 공공성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 협상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가내성이 영역에 대한 성별분리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며, 이 이데올로기는 도시나 농촌 같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작동해 왔음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에서는 1900년 전후 수십 년 동안 농업과 원예학에서 여성 교육운동이 진행되었는데, 이 운동은 가내성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과학적 실천을 장려하는 전략적 방편이었다. 한편 라디오의 가내화를 다룬 글에서는 라디오가 가정에 들어올 당시 남편과 아내가 펼쳤던 협상을 소개한다. 또한 홈메이드 기상과학을 다룬 글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기상 관측과 기록을 하기에 으뜸인 장소인데도 가정에서 기후지식을 생산하는 데 장애가 많았던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br/><br/>3부에서는 과학적 실천의 내적인 측면이 아닌 외적인 측면에서 과학과 가족을 연결시킨다. 즉, 과학가족, 가족 내에서의 협업, 기술 상속, 가족의 이동과 관련된 역학이 과학자의 삶과 지식 형성을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고찰한다. 19세기 그리스 과학관행에서는 특정한 가문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과학의 출현과 공고화가 동일한 가족의 행위자들에게 의존했음을 말해준다. 또한 20세기 초 스웨덴의 해양학자 오토 페테르손과 아들 한스 페테르손 부자간의 지식 상속에 대해 다룸으로써 가족 내에서 과학이 전수되는 관행을 설명한다. 한편 스웨덴의 유명한 물리화학자 데오도르 스베드베리의 네 번에 걸친 결혼생활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과학적 협업과 결혼이 결합된 과학가족에서 발생하는 젠더 문제를 드러낸다.<br/><br/><b>과학자의 삶과 지식 형성에 가내성이 기여한 역사적 의의 탐구</b><br/><br/>과학은 집단적인 기획이지만 가내적인 기획이기도 하다. 이 책을 편집한 학자들은 가내성과 과학 간의 관계를 엮은 이 책이 너무 설명적이거나 피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가내성과 과학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 책의 탐구 영역을 유럽, 영국, 미국의 근대와 현대를 넘어, 동아시아 및 더 이전의 세기로까지 확대하자고 제안한다.<br/><br/>이 책은 근대의 제도적인 실험실이 과학적 탐구의 특권적인 장소로서 상징적인 지위를 얻은 후에도 가내성이 과학지식의 형성 과정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천문학, 화학, 원예학, 공학, 기상학, 자연사, 해양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세계 각국의 흥미로운 사례를 광범위하게 다룬 이 책을 통해 오늘날에도 가내 공간과 가족의 친족관계는 연구공동체를 국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며 가정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내성의 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