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국정원은 공동정범이다
#국정원, 기소는 됐지만 처벌받은 사람이 없다
국정원의 조작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과거 중앙정보부, 안기부 시절부터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죽임을 당했다. 기왕지사 과거엔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한 수 접고 들어가자(물론 여전히 억울한 피해자가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그건 어떤가.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여동생을 불법감금하고 협박하고 폭행했다. 여동생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까지 시도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저지른 대머리 수사관 유병화, 아줌마 수사관 박영남은 그런 일은 없노라, 재판에서 위증했다. 이 두 사람은 여동생 유가려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만난, 그녀를 직접 폭행한 국정원 직원들이다. 이들은 이름을 알려 주지 않기 때문에, 유가려는 특징으로 그들을 불렀다.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최일선에서 유가려를 고문하고 협박한 이들은 2020년에 와서야 위증죄 등으로 기소되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증거들을 조작하고 중국의 공문서도 위조한 대담한 국정원의 다른 직원들과 그들의 협조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총 기소 인원 11명, 대부분 불구속기소, 집행유예, 무죄를 받았다. 그러면 윗선의 개입 없이 하급 수사관들끼리 작당해서 저지른 행동인가? 국정원 직원 이인철이 주심양총영사관의 영사확인서를 허위 발급해서 전달할 때 주고받은 메시지에 이런 글이 있다.
“회장님이 연일 아침 하문하실 정도로 관심도 높고 걱정하신다.” 여기서 회장님은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자명하다. 이 사건은 국정원 제일 윗선부터 하달된, 사전에 계획된 범죄다. 하지만, 법적인 책임은 직접 행동한 수사관들이 졌고, 그마저도 집행유예와 무죄를 받는 선에서 무마되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경질 또한 증거 조작 혐의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유우성이 2심에서도 무죄를 받은 뒤의 일이다.
#검찰, 조작에 적극 개입했지만 몰랐다?
국정원이 사건의 처음을 담당했다면 이 사건의 마무리는 검찰이 맡았다. 검찰 해명대로라면, 국정원의 조작 증거를 검찰은 검증 없이 국정원만 믿고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재판의 진행 과정에서 이들의 공모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음은, 1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가려가 검사에게 한 말이다.
“나한테 왜 거짓말했습니까? 전부 왜 거짓말했습니까? 2013년 3월 4일 오빠 재판(증거보전 재판) 끝난 다음에 법정에서 검찰에 오라고 해서 갔는데, 진술을 쭉 하면서 오빠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 저에게 ‘이런 부분은 사실인가’라고 물어봐서 내가 다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빠와 맞지 않는 말, 맞지 않는 부분을 얘기하면서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검찰청 가서 물어보기에 제가 ‘오빠는 설에 온 사실이 없고, 집 문제도 우리가 최?? 언니에게 팔고 2011년 7월 9일에 다 넘어왔다, 그 후에 북한에 들어간 적도 없고, usb를 전달한 적도 없고, 간첩 이런 것도 없다’고 다 사실대로 얘기했습니다.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이시원 검사는 ‘네가 이렇게 말하게 되면 너희를 도와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유가려가 증거보전 재판 직후 자신의 자백이 모두 허위임을 이시원 검사에게 밝혔지만, 검사가 이를 막았다는 충격적인 증언이다. 검찰의 조작 개입은 법정에서 또 폭로되었다. 재판정에서의 이시원 검사와 증인 유가려의 문답이다.
이시원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본 검사에게 ‘오빠가 몇 년 정도 교화소에 가야 됩니까’라고 묻고 ‘선처를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유가려가 답했다.
“그렇게 얘기했지만 우리 가족을 도와주고 여기에서 살게 해 주겠다, 집도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얘기를 한 것입니다. 내가 오빠를 뭐 하러 간첩 만들겠습니까?”
그러자 이시원 검사가 다시 물었다.
“그에 대해서 검사로부터 ‘그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답변해 줄 수 없다. 오빠의 태도에 달려 있는 부분도 있으니 함께 노력해 보자’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지요?”
일개 검사가 무슨 권한으로 유우성과 유가려가 한국에서 살 수 있게 하고 집도 주겠다고 말하는가. 상식적인 검사라면 유우성이 자백해야 선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정도까지의 조언만 가능하다. 공판조서에 고스란히 남는데도, 재판정에서 그들의 말은 이처럼 거침이 없었다. 2014년 7월 국정원 권세영 과장이 모해증거위조죄로 불구속기소되었는데, 이 재판에서 권세영 과장 측은 이렇게 주장했다.
“증거 제출 권한이 있는 공판 담당 검사가 ‘일사적답복’ 및 ‘거보재료’에 대하여 확인서 작성을 결정하고, 국정원 직원인 김?? 등에게 그 작성을 지시하였으며, 위 확인서가 허위임을 알면서 이를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검사는 공판 담당 검사를 기소하지 아니하고, 범행 과정에 관여 부분이 적은 권세영만을 기소한 것은 공판 담당 검사와 권세영을 불평등하게 대우한 것으로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공소권 남용이다.”
검찰은 이시원, 이문성 검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 없이 2014년 4월 14일 모해증거위조 등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했고, 여론이 잠잠해진 2015년 6월 30일 유우성이 고소한 국가보안법위반(무고 · 날조)죄를 기소하지 않고 종결했다. 검찰은 절대 검사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검찰은 유우성 사건 재판에서 총 3회에 걸쳐 위조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첫 번째 제출한 유우성 출입경기록이 위조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두 번째로 출입경기록의 발급처로 기재되어 있던 중국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발급 확인서를 제출했는데 이 또한 위조 문건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위조되었다는 중국 공안국 공무원들의 동영상 진술을 제시했다. 그리고 검사와 국정원의 위조 증거 제출 행위는 국가보안법 제12조 제1항의 증거 ‘날조’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어진 재판부의 반응은 엉뚱했다. 당시 윤성원 부장판사는 증거 날조를 주장하는 변호인에게 자신의 신성한 법정에서 ‘날조’라는 품격 없는 표현을 써서 너무 슬프다고 했다. ‘날조’는 법률용어다. 판사의 이 말은 제 식구 감싸기이며 궤변이다.
반성하지 않는 그들
대한민국 검찰이 위조 증거를 제출했음은 엉뚱하게도 중국에서 보내온 사실조회 회신문으로 드러났다. 변호인단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에서 위조 증거를 제출한 검찰에 해명과 조사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침묵했다. 당시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브리핑을 통해 간첩 증거는 외교 경로로 받은 문서이며, 이들 문서가 위조라는 중국의 입장에 대해서도 중국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결국 위조문서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후 이시원 검사는 법정에서 검찰도 대한민국 국가기관인데 중국 정부의 말만 믿지 말고 검찰의 말을 믿으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검찰 스스로가 국가임을 천명하는 검찰 지상주의의 위험한 발상이다.
결국 검찰은 억지로 수사를 개시해 이 사건에 가담한 검사들은 모두 불기소처분하고 국정원 직원 일부에 대해서만 법정형이 낮은 범죄로 기소했다. 무고한 피해자를 간첩으로 만들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된 범죄치고는 매우 초라한 수사 결과였다. 유우성 사건 2심 재판이 무죄로 선고되고 2주 뒤인 2014년 5월 9일, 검찰은 유우성에게 새로운 혐의를 씌워 보복 기소를 단행했다. 2010년 3월 29일에 서울동부지검에서 불기소한 사건을 4년 만에 다시 들고 나왔다. 검사는 이전에 불기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재수사하지 않는다는 내부 규정이 있다. 하지만 유우성 보복 기소의 경우 새로운 증거는 없고, 일방적인 고발과 검찰발 기사뿐이었다. 결국, 검찰은 간첩 조작의 피해자 유우성에게 일말의 미안함도 없었다. 이후 보복 기소 재판은 검찰의 공권력 남용이라는 사상 초유의 판결이 내려졌다. 당연한 결과이다.
유우성은 2013년 1월에 간첩 혐의로 긴급체포되어 2015년 10월에 3심 최종 무죄 확정되었고, 동시에 검찰의 보복 기소로 2014년에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2021년 10월 대법원 선고로 최종 무죄로 판결되었다.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이 사건에 그의 인생을 몰수당했다. 그가 어렵게 탈북해 이룩한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모두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유우성에게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대국민 사과는 있었지만 그것이 유우성 개인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우성이 증거가 부족해서 그렇지 간첩이 맞는다는 주장을 지금도 굽히지 않고 있다. 그 이유를 물으면 정황상 간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정황들은 모두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유우성은 간첩이다. 다만 그가 간첩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을 뿐이다.” 수사기관은 증거로 말해야 한다. 검찰에게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4항 ‘무죄 추정의 원칙’을 굳이 설명해줘야 하는가. 확증편향적인 검찰의 이러한 논리가 과연 유우성에게만 걸려든 올가미일까? 검찰공화국이라는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중에 이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을 재간이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사건 관련자 몇 사람만 처벌하고 쉬쉬 넘어가면 이 사건은 끝나는 것인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조작 · 지시한 윗선의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한, 이 사건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