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학교 동아리 〈글짓기 반〉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만난 후, 나는 라디오의 소리와 모습에 빠져 혼몽스러웠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현실과 다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됐다. 라디오는 나와 다른 세계를 연결해 주는 통로였다. 라디오 진동수는 내 삶을 안내해 주던 주파수였다. 나는 라디오로 인해 ‘통신보안’이라는 직업을 가졌다. 언어의 진동수가 문학이라는 주파수에 얹혀 내 마음을 통해 나오듯 라디오는 나의 글짓기를 끌어 주었다. 나는 소설을 썼고,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에세이를 쓰고 있다.
그동안의 생각을 담아 다시 집을 떠났다.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세상의 끝, 지구 최남단의 작은 마을, 문명과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곳으로 와서 12시간의 시차를 만났다. 낮에는 집중해서 나를 회상하는 글을 쓰고 밤에는 서울의 업무를 처리할 작정이다. 남극에 가까운 이곳의 밤은 10시쯤 늦은 시간에 어둠이 찾아오고 새벽 4시가 되면 어둠이 걷히고 밝아 온다. 그동안 통신 관련 전문 서적을 써왔지만, 이번에는 일반 독자들을 초대할 수 있는 책을 펴내려고 한다. 무엇보다 전문 용어를 쉽게 풀어 순화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도청보안전문가로서의 숨 막히는 비화들, 그리고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있었던 과정도 담담하게 말할 생각이다. (중략)
---「프롤로그_라디오와 문학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는 창(窓)」중에서
타투하는 과정을 아무런 기록 없이 소비하는 것이 못내 아까워서 각 과정마다 매니저를 불러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구했다. 매니저 하시는 말씀, 자기가 타투 샵 30년에 외국인이 잠시 여행 와서 타투를 하는 것도 처음 보았고, 이렇게 과정마다 사진을 찍는 경우도 처음이라고 하며 껄껄껄.
타투를 마친 다음날, 곧바로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해외라고는 하지만 조금은 낯선 터라 오전에는 와이셔츠를 입어보고, 안 되겠다며 오후에는 전날 사두었던 민소매 티로 갈아입었다. 결과는 난리였다. 이미 알고 지내던 업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까지 같이 사진 찍자며 몰려들었다. 이어서 이번 타투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덤. 그야말로 전시하러 나간 우리 제품을 넘어선 최고의 흥행이었다. 이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타투이스트의 말이 꿀맛처럼 들려왔다. (중략)
---「Part 1. 또 다른 꿈, ‘타투’로 시작하다」중에서
이제 영업이 남았다.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앞서 호텔 구상에서 작성한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보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전화벨 소리만 들리면 ‘혹시 기자?’ 하는 생각으로 뛰어가서 큰소리로 받았다. 보도 자료를 통한 기사화를 목표로 했던 것은 보안업무의 특성상 먼저 찾아가서 상담할 사항이 아니라는 조심스러운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도청 보안’ 업무는 기업체 최고위층 일부만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다. 그만큼 보안 의식이 희박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꺼내 놓고 상의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VIP 최측근에서 극비리에 처리하는 것이 관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영업 전략은 그러한 분위기와 다행스럽게 맞아떨어졌다. (중략)
첫 만남은 가짜명함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약속 장소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다. 심지어는 수차례 자세하고도 치밀한 상담을 마친 후 정작 방문 장소에 대하여는 밝히지 않은 채 보안 측정 당일 약속 시각에 ‘퇴계로’ 입구에 진입하면서 전화를 하면 그때 안내를 하겠노라고 주문하는 철저한 고객도 있다. (중략)
---「Part 2. 아무도 가지 않은 길」중에서
그리고 얼마 후, 읍내 글짓기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출전하지 말았어야 했다. 책을 덮게 된 사건도 그날 터졌다. 대회 후 인솔 교사가 사준 자장면을 먹다가, 바로 앞 전파사에 걸린 라디오 키트를 보았다. 그 순간, 한마디로 나는 이성을 잃었다. 건전지도 없이 아무 곳이나 쇠붙이에 안테나선을 붙여만 주면 방송이 잡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날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았던 그 괴물의 이름은 ‘광석 라디오’였다. 나는 부모님을 졸라 결국 300원을 주고 라디오를 샀고, 더 이상 책 읽고 독후감 쓰기를 포기했다. (중략)
그러나 부모님께서 자퇴를 허락해 주실 리 만무했다. 방법이라면 가출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오로지 가출만이 살길이었다. 그보다 좋을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가출을 꿈꾸다, 가출을 하다, 서울전파학원에 입학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일이 되고 말았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던 첫 번째 열병이었다. (중략)
---「Part 3. 꿈, 그리고 이력서」중에서
우연한 기회에 국문과 교수님을 만났다. 아무래도 보안전문가와 국문과 교수의 만남이 썩 어울리지는 않겠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괜찮았다. 서로에게 관심이 많을 터였다. 대화를 나누던 중 “당신도 글을 한번 써보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네? 글 말입니까?” “그래, 글을 한번 써봐.” 그동안 내가 써 왔다는 글 이야기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번지고 있었다. 살벌하게 보안이니 통신추적, 아니면 재미없는 전자설계 코너를 썼다지만, 약간 각도를 틀어보면 문학이 보일 수도 있겠다는 귀띔이었다. (중략) 특히, 여러 가지 전시회가 자주 열리는 라스베이거스는 자주 다니게 되면서 나중에는 공항에 도착하면 내 고향 제천의 고속버스 터미널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느꼈을 정도이다. 그만큼 지불한 수업료도 컸다. (중략)
지난번 런던 방문은 솔직히 반쪽짜리 출장이 될 각오를 하고 떠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 ** 부에서 주최하는 도청기류 전시회였는데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봉쇄된 비공개 행사였다. 이 행사에 참가를 해야 비로소 세상에 감추어진 모든 공격(도청)장비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나로서는 무조건 방문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정보기관에 납품실적이 없던 나는 도무지 참가할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이 행사에 참석하려고 재작년, 작년부터 올해까지 지구력(?)을 갖고 악착같이 신청을 했었는데 결국 승인을 못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마감이 다 되었을 때쯤 ‘승인되었으니 참석하라’고 메일이 온 것이다. 믿어지지를 않아 몇 번을 확인, 또 확인을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항공사에 문의했더니 마일리지 항공권이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믿기 힘든 것이 마일리지 항공권은 보통 4-5 개월 전에 마감이 된다. 아무튼, 티켓을 사고 이번에는 때마침 가지고 있는 마일리지로 숙소를 확보하였다. 온통 마일리지로..,하늘이 돕습니다.ㅎㅎ 그리고 나머지 반쪽짜리, 사실 이것은 2개월 후에 다시 올 것이기 때문에 그때 만나서 처리하려고 미룬 것이었는데 이번에 하자. 라고 급히 만든 스케줄이었다.
그,런,데...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입니까? 어제 승인 났다는 메일이 시스템 오류였다며 오지 말라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그래서 곧바로 메일을 보내 ‘무슨 소리냐? 나는 비행기 티켓, 호텔 예약 다해놨다. 시간이 임박해서 환불도 안된다.’ 하며 메일을 보내도 대답이 없었다. 다음날 독촉 메일을 다시 보내도 대답이 없다가, 당일 아침에 출발하려는데 메일이 왔다. 역시나 “오지 마시라고 ㅎㅎ” 그러나 이미 무조건 찾아가서 부딪혀보자. 하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승인(캔슬된) 메일을 프린트해서 떠났다. 휴~ (중략)
---「Part 4. 보안인생은 프로인생이었다」중에서
그동안 도청감시 업무를 해 오면서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내 마음을 다급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누군가 주변에서 엿들어도, 또 다른 정보를 빼가더라도 피해 당사자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기 싫은 가장 무서운 경우이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사용하는 장비가 무늬는 디지털인지 모르겠으나 속 내용은 거의 아날로그 시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기기를 도청기라고 하면서 “아~ 아! 테스팅” 하는 것을 도청감시 장비에서 들려주고(복조) “이렇게 나타난다.”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이 바로 아날로그 장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 실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도청방식은 암호화되어 도청으로 복조(청취)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UI가 잘 되어 있다고 해서 ”쉽사리“ ”덜컥“ 디지털 장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숨겨진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 폰, 와이파이, 기타 여러 가지의 전문가급 도청 기술 등을 감시, 해당 기술에 맞게 분석,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진짜 디지털 장비이다. 한 가지 더, (중략)
---「도청검증, 안교신(交信)이 나설 수밖에」중에서
[꿈, 1막 라디오]
세상에서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 가장 동쪽에 있는 나라, 또 다른 말로 지구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 태평양 한복판, 날짜 변경선 위에 떠 있는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태평양에 흩어진 33개의 섬이 지구 유일하게 4대 반구(4개의 시간대)에 걸쳐진 나라. 인구 약 12만의 작은 나라, 세계 최대의 산호초 섬이 있어 스노클링, 다이빙 포인트가 매우 아름다운 곳 등 수식어로 표현하자면 끝없이 펼쳐지는 [키리바시 공화국]에 가서 아마추어 무선 익스피디션을 멋지게 진행하는 것. 내가 하고픈 첫 번째 버킷리스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된 취미의 왕, 나는 아마추어무선국의 해외 원정 운용을 계획하고 있다. 사실 아마추어 무선이라고 하면 내 인생에서 뗄 수 없는 커다란 의미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영위하고 있는 직업도 엄밀히 따지면 아마추어 무선에서 시작되었고 46년째 계속하고 있는 내게는 영원한 취미이다.
내가 해외 원정 운용을 키리바시로 가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교신을 하더라도 교신이 힘든 곳, 어려운 곳이 있다. 그것은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고 해당 지역에 아마추어 무선국이 너무 적거나 없어서 일 수 있다. 이런 때는 그곳 아마추어 무선국의 인기가 순식간에 상한가가 된다. 어떤 주파수에 출현했다 하면 전 세계의 무선국들이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수십 명씩 줄을 선다. 물론 그때 해당 무선사는 황홀감에 빠져든다. 그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키리바시를 가려는 것이다. (중략)
[꿈, 2막 글짓기]
쿠바에 가서 소설을 쓰고 싶다. 미국 문학의 거대한 전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따르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를 들렀을 때 헤밍웨이의 생가를 방문해 본 적이 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옙스키의 생가를 방문한 적도 있다. 이 모두 내가 소설을 잊지 않고 가까이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아무튼 그와 관계없이 다음번 소설을 쓰고 싶은 곳은 쿠바가 맞다. 이유 없이 맞고 싶다.
이 희망은 지난번 책 [엿듣는 도청 엿보는 몰카]의 ‘글을 마치면서’ 에도 다음과 같이 거론되었다. “이후 보안사업에, 통신기술에 대 변혁의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남미 아르헨티나, 또는 쿠바쯤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그때의 또렷한 기억으로 소설을 집필하고 싶다. 이 작은 소망을 내 인생 또 다른 하나의 버킷리스트로 남겨 두고, 실천하려 한다.” (중략)
---「Part 5. 나는 누구인가, 꿈을 추수하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