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인생 최고 하이라이트(high light)는 부토 여사 암살로 촉발된 폭탄 테러가 난무했던 ’07~’08년의 파키스탄 LG 핸드폰 현지 영업을 담당하면서 일궈낸 성과였다. 동종 업계(GSM 핸드폰 사업)에서 시장에 신규로 진입한 브랜드가 1년 반 만에 시장 점유율 0%에서 26%를 차지하며 ‘국민 브랜드’로 등극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획기적인 사례이다.
현지인의 생활 습관과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3개월마다 15일씩 9차례에 걸친 지방 딜러 순회 활동,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슬람 문화와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파키스탄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에 착안하여 ‘아티프 아슬람’이라는 가수를 핸드폰 셀럽(Celeb)으로 활용한 ‘스타 마케팅’ 기법을 업계 최초로 도입한 사례, 뮤직폰(Music phone) 출시에 맞춰 LG Music Festival 개최, Nokia의 지방 대상(大商)들을 LG VIP 딜러로 회유하기 위해 ‘6고초려’한 일 등 ‘성공 신화’를 창출하게 한 수많은 노력과 사실에 기반한 영업 노하우(know how)를 이 책에서 자세하게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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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김 대리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가방을 찾을 수 있었고 바로 터미널 2, 체크인 카운터로 달렸다. 비행기 이륙 시간이 1시간도 채 남질 않았다. 헉~헉. 그런데, 그때는 경황이 없어 눈치를 채지 못하고, 김 대리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으로 알고 고마움을 표현했던 그 공항 직원이 나중에 알고 보니, 고의로 김 대리 가방을 수하물 창구 한쪽에 버려 놓고 마치 자기가 찾은 것처럼 행세한 것이었다. 터미널 1에서 2까지도 차량으로 이동할 만큼 먼 거리가 아니라 걸어서 충분히 5분이면 다다를 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즉 김 대리의 첫 해외 출장 중, 이스라엘로 가는 중간 경유지인 카이로 공항에서의 해프닝은 보기 좋게 ‘사기’ 당한 것이었다. 이후로 김 대리는 이집트인들을 좋게 보지 않는 선입견이 생겼고, 그 상처는 그의 마음 한편에서 분노와 실망으로 늘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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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시장은 중동의 허브(Hub)이자 특히 가격 경쟁이 심한 지역이다. 더더욱 IT 제품의 경우 모니터, 스토리지(storage) 제품은 단품 자체의 가격 포지셔닝보다는 두바이 인근 국가에서 데스크톱 PC 조립·판매하는 부품 공급자들은 그야말로 ‘가격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하루살이 목숨인 거다. 그들은 LG나 S사로부터 통 큰 가격 지원을 받으면 단숨에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 그야말로 속칭 ‘똥 재고’로 껴안으면서 몇 달을 제 살 깎아먹으면서 버텨야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 두바이 재수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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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외부 인원의 방해 없이 진행된 김철민과 카림 간의 9번에 걸친 ‘두바이 담판’은 철저히 김철민의 간절한 필요와 요구에 의해 제안되고 진행되었다. 가격 중심의 네고(negotiation ; 협상)는 중동 아랍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상술 중의 하나이다. 지루하고 뻔한 가격 얘기를 하면서 상대방의 진을 빼는, 그래서 상담의 우위에 서고자 하는 그들의 독특한 상담 기술이다. 만일 김철민 과장이 카림 형제의 지루한 가격 협상 전략에 휘둘렸다면 4년 동안 6배 성장하는 매출 성과를 절대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9번의 ‘두바이 담판’은 김철민에게는 ‘신의 한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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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두바이 시티 몰(Dubai City Mall). 두바이 내 최대 쇼핑몰로 두바이 랜드마크(land mark)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 6개월 전에 김 차장이 기획하고, 꿈에 그리던 〈중아 지역 PC 게임 경기〉가 열리다니!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당시로서는 특정 법인에서 그것도 LG전자라는 전 세계 최대 가전회사에서 주력 제품도 아닌 IT 제품 담당 매니저(product manager) 1인이 백만 달러에 가까운 마케팅 비용을 써가면서 단일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법인, 본사 모두 ‘김철민은 또라이’라고 모두들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행사를 준비하는 데 방해도 많았고 노골적으로 뒷담화하는 동료·직장 상사들이 많았음을 김 차장이 왜 모를까. 하지만 영업의 가장 기본은 투자 대비 효과, 즉 알 오 아이(ROI_return on investment)다! 단 1달러라도 영업이익이 나면 무조건 전진이다. 못 먹어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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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차장은 그동안 가전 사업에 너무도 충실했던 New Allied사의 조직 역량을 핸드폰 사업으로 확대·강화하고 사업의 실질적 오너인 지샨을 완전히 제로 베이스에서부터 단련시키기로 했다. 일전에 확인한 대로 지샨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LG AV(Audio & Video) 제품을 맡아서 사업을 해 봤으나 모두 말아먹은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지샨이 주색잡기에 능했지만 사업에 대한 관심이나 욕심이 없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악타르 사장은 LG 중아 지역 대표 및 본사를 상대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딜을 걸었는데, LG GSM 사업에 지샨을 오너로 하고 회사의 사운을 걸 요량이었다. 그만큼 악타르 사장은 후계자 양성에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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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샨을 거의 양아치 정도의 수준으로 가치 절하해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지난 10여 년간 파키스탄 LG 가전 사업으로 계속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온 악타르 사장의 후계자가 아니던가? 일보다는 놀기를 더 좋아한 성향 탓이었지 기본적인 사업가 기질은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저녁 7시에서 새벽 1~2시까지 ‘나머지 공부’를 한 탓이었는지 지샨도 이젠 어느 정도 일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단말 조직을 가전 조직에서 분리 운영(신규 인력 과감히 채용)하고, 연간 제품 로드맵(product road map)을 기획하면서 어느 가격대에서 어떤 모델로 월 5천 대에서 1만 대 판매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제품 운영 전략을 세우고, 가격 포지셔닝 시 모델별 타깃 물량과 연계된 가격 운영 전술을 협의했으며, 전국적인 딜러 채널 진입 방법에 대한 고찰 등 참으로 많은 부분을 다뤘다. 김 차장도 슬슬 누적된 피로감 때문인지 뭔가 새로운 것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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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딜러들과의 첫 공식적인 ‘만남의 시간’은 예상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제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딜러도 있었고, 경쟁사 대비 합리적인 가격 포지셔닝에 대한 의견을 주기도 하는 반면, 어떤 딜러는 대놓고 KG200, KG270, SHINE 폰에 대한 첫 오더(1st PO_Purchase Order)를 제시하기 하였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쳇! 소주라도 있으면 주~욱 한 잔씩 돌리면서 “위하여!”를 외쳤을 텐데, 술을 멀리하는 이슬람 문화가 그때만큼 야속한 적이 없었다.’ 김 차장은 만찬이 끝나고 약간은 누추하면서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호텔방의 소파에 몸을 던져 누웠다. 그러고는 오늘 있었던 활동 및 딜러 반응을 복기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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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270 셀럽인 아브라(Abrar)가 연단에 나타나 노래를 부르자, 금방 무대는 흥겨운 리듬과 춤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 신이시어~! 진정 이 행사를 수포로 만드시렵니까? 부디 비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다시 십여 분쯤 지났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금 전까지 짙게 내리었던 검은 먹구름이 물러나고 비가 그쳤다. 무대에서는 악타르 사장의 연설이 끝나고, 뒤이어 LG 중아 지역 대표 김 부사장님의 축하 메시지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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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은 흘러 ’07년 상반기 끝 무렵에, 그야말로 큰 것이 제대로 터졌다. KG200 모델이 월 3만 대, 저가폰인 KG270 모델이 월 9만 대까지 판매되면서 시장 내 LG GSM의 위치는 점점 더 확고해졌다. 6개월 전의 나약한 LG GSM이 아니었다. 매직 포인트(Magic point)에 도달한 것이다. 시장 점유율 0%에서 시장 점유율 2%를 6개월 내 만든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다시 시장 점유율 2%에서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시장 점유율 7%의 매직 포인트(magic point)를 찍은 것이다. 사업 시작 후 꼭 1년 만이다. ’07년 130만 대 판매하면서(sell-in 기준) LG GSM은 이미 1년 전의 ‘하룻강아지’가 아니었다. 시장 점유율 7%를 찍는 순간, 그동안의 모든 힘겨움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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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파키스탄 정부가 주관하는 ‘2008 브랜드 of Year Award’에서 LG가 휴대폰 분야에서 ‘국민 브랜드’로 선정된 것이다. Nokia도 Samsun도 아닌 LG가…, 브랜드 인지도, 선호도, 제품 시장 점유율, 성장률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내려진 최고의 선물이었다.2년 전 LG GSM은 김철민 차장이 GSM 오픈 시장 태스크의 일원으로 파키스탄 시장과 딜러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본사에 ‘GSM 사업 출시 가능’ 리포트를 한 후 정확히 2년 만의 일이다.
모든 것이 ‘zero’인 상태에서 시장 점유율 26%, ’07년 Biz 성과를 바탕으로 LG GSM이 ‘파키스탄 국민 브랜드’로 선정된 것이다. 어느새 하룻강아지는 큰 범이 되어 2009년 3백만 대 판매라는 큰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객관적 타당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09년 3백만 대 판매 달성을 위해 LG 카라치 지사는 지난 ’07, ’08과는 또 다른 전략과 전술을 기획·실행에 옮기는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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