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에서 장세를 걷는다고요?
“시장 돌며 뒷돈 챙긴 함남 상업부장, 재산몰수·추방 철퇴 맞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상업부장이 내각 상업국 검열에서 ‘개인 권력을 악용한 비위 행위’가 드러나 출당·철직되고, 중앙검찰소로 넘겨진 사건이다. 상업부장 조씨는 지난 3년간 시장관리소와 상업과로부터 월 500~1000달러를 상납금으로 받아온 사실이 발각됐다. 월 총화 때 상업부 사업비로 뒷돈(뇌물)을 정기적으로 바치도록 강요하고, 이를 개인이 착복했다. 현재 북한에서는 국가 기관인 상업관리소를 통한 주민공급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시장을 통해 소비품이 거래된다. 이에 따라 시장관리소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장사꾼들에게 일별 장세를 걷는 일은 통치자금 마련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조씨는 본인의 직무를 악용하여 뇌물을 받고 상납금을 중간에서 갈취했다. 이에 따라 내각 상업국은 조씨가 ‘사회주의 상업관리 원칙을 훼손’했다고 낙인찍었다. 북한 당국은 조씨의 살림집과 재산을 모두 몰수한 후 가족을 함경남도 홍원군 보현리 농장으로 추방했다.
사회주의 상업법은 지켜지는가
이 사건을 법률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선택한 북한은 주민들에 대한 물자공급의 원칙과 기준을 사회주의 상업법에서 규정한다. 1992년에 처음 제정된 후 2010년까지 6번 개정된 상업법은 ‘인민들에 대한 공급사업’을 사명으로 하면서, ‘국가는 상품에 대한 수요를 생산에 정확히 맞물리고 생산된 상품을 제때에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원칙을 정한다. 상업법은 상품공급, 수매, 사회급양, 편의봉사, 상품보관관리, 상업의 문화성과 봉사성, 상업시설의 현대화, 상업부문 사업에 대한 지도통제라는 제목으로 9개의 장으로 나누어 89개 조문을 두고 있다. 북한의 법률로는 방대한 편이다.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 상업을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려고 여러 가지 원칙을 정했지만 그 원칙이 무너진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변화된 현실을 법에 반영한 흔적도 있다. ‘상품의 비법판매금지’(제27조)라는 제목으로, “회의, 강습, 경쟁, 지원 같은 명목으로 주민용 상품을 빼내거나 안면 또는 직권을 람용하여 판매 공급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고, ‘여유물건의 수매와 수매자의 신분확인금지’(제38조)라는 제목으로, “주민들이 여유로 가지고 있는 물건을 수매받아야 한다. 이 경우 수매하는 자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물건의 출처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장세징수, 근거는 있는가
현재의 북한은 장마당이라 불리는 시장이 주민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종합시장 등 다양한 형태의 시장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당국은 시장에서 장세를 걷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상업법에는 장세징수에 대한 규정이 없고, “상점을 운영하려는 단체는 영업허가를 받아 정해진 질서대로 하여야”하고, “시장에서는 팔지 못하게 되어 있는 상품을 판매하거나 한도가격을 초과하여 상품을 판매할 수 없고”, “시장 밖에서는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두면서, “이 법을 어겨 엄중한 결과를 일으킨 책임있는 일군과 공민에게는 정상에 따라 행정적 또는 형사적 책임을 지운다.” 고 규정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북한의 현실과 상업법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이번 뉴스보도로 밝혀진 사건의 배경에는 장세징수 등 상업법 위반이 일상화된 현실이 숨어있다. 법과 현실이 괴리되면 그 피해는 사회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위험에 대비한 비용이 증가하고 그것이 단계별로 전가될 것이다. 이미 일상이 된 장마당 운영과 장세 징수를 중단시킬 수도 없고, 계획경제가 전면적으로 작동하던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법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의 정체된 경제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북한사회의 변화가 법제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지켜보는 중이다.(권은민, 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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