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나는 늘 꾹 참았다. 내가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니다. 일부러 느려 터지게 구는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잖아.
-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낫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손도 발도 모두 점점 약해질 뿐이다. 팔도 다리도 점점 가늘어지고 있는데, 왜 그런지 전보다 몸은 훨씬 무겁게 느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 난 해마다 돌아오는 운동회가 슬펐다. 내 몸이 쓸모없게 변해 가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 운동회란 몸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여 줄 기회인데 내 몸은 자란다기보다 뭐랄까, 쓸모없어진다는 걸 알리는 발표회나 다름없었다. 나는 햄버거를 꽉 쥐고 입에 가져갔다. ‘입에’ 햄버거를 가져간 것이 아니라 햄버거에 ‘입을’ 가져간 것이다. 다시 말해 ‘개처럼 먹는’다. 손이 올라가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예의에 어긋나는 걸 따질 겨를이 없다. 그런 걸 따지다 보면 굶어 죽고 말 것이다.
- 쓸모없어진다는 것
“오줌, 부탁해.” …… 가즈요는 요강을 들고 와서 “꺼내.” 하고 말했다. 꺼낼 수 있으면 부탁하지도 않지,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허리를 비비 꼬며 “빨리.”라고 재촉할 뿐이다. “에잇! 더러워 죽겠어, 진짜!” 가즈요는 내 바지 지퍼를 내리고 움츠러든 고추를 잡아 뺐다. “아파.” “해 달라며, 말이 많아.”뭐, 하느님이라고? 하느님 같은 게 어디에 있는 거야? …… 하느님이 있다면 있다는 걸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 힘이 있다면 날 어떻게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공평하게 해 주기를 바라는 거다. 나에게 이런 몸을 줬다면 적어도 뭐 하나 다른 좋은 걸 줘야 하지 않은가. 안 그러면 너무 불공평하다.
- 하느님은 불공평하다
어젯밤에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높은 낭떠러지로 보이는 곳에서 엄마와 동생이 나에게 등을 진 채 서서 즐거운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 마음속에서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두 사람에게 다가가 있는 힘껏 등을 떠밀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는 두 사람의 얼굴이 또렷하다. …… 꿈이라 다행이다.
- 꿈
사람은 변한다. 슬픈 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일, 실망스러운 일, 괴로운 일, 짜증나는 일, 그런 일들이 너무 많으면 견딜 수 없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병이 걱정되어도 자살조차 할 수 없다.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완전히 식물 같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래도 사람이다. 사람이긴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식물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진정한 식물인간인 것이다.
- 사람은 변한다
텔레비전에서 “다가오는 해에는 밝은 희망을 품도록 해요. 올해도 잘 가요.”라는 아나운서의 말에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가오는 해에 밝은 희망을 가지란 말이지…….” 나도 엄마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희망’이라는 말이 흐릿하듯, 엄마에게도 ‘희망’이라는 말은 별로 힘이 솟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상태는 하루하루 나빠지고 있다. 제자리걸음 하는 날은 있어도 결코 좋아지는 날은 없다. 몸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 새가 되고 싶어
난 애물단지다. 애물단지인 데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나. 살아 있어 봐야 소용없다. 나 때문에 아빠와 엄마는 헤어져 버렸다. 나 때문에 동생은 제멋대로 굴게 되었고, 엄마는 술을 마시게 되었다. 내가 없어지면 된다. 그러면 모두들 지금보다 행복해진다. 틀림없이…….
그 애가 죽고 나서 난 비로소 알았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건 나만이 아니라는 걸. 모두 괴로움이 있다는 걸. 모두 괴로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야.
- 단 한 번뿐인 인생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