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일요일
오후 7시 15분
부모님한테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 세 가지!
첫째, “인생이란 말이지…….”
둘째, “이제 컴퓨터 끄고 들어가 공부해야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곧 네 잇몸에 하얗고 뾰족한 송곳니가 돋을 거야.”
그런데 방금 우리 부모님이 이 세 번째 말을 했어. 여기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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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앞으로 너한테 좀 이상한 일, 그러니까 네 친구들은 겪지 않는 특별한 일이 벌어질 거다.”
아빠가 말을 이어 나갔어.
“특별한 일이라니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어.
“그러니까…… 좀 지독한 냄새가 날 거야,”
엄마가 대답했어.
나는 당장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어.
“겨드랑이 냄새 같은 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주 잠시 동안 입 냄새가 심해질 거야.”
“그리고 네 잇몸에 하얗고 뾰족한 송곳니가 돋을 거야.”
아빠가 덧붙였어.
나는 놀라서 입을 벌린 채 아빠를 쳐다봤어.
“아빠,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빠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말을 이어갔지.
“지금부터 딱 하루 안에 송곳니가 돋을 거야. 그렇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야. 너같이 특별한 아이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아빠는 뭔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엄마가 큰 소리로 말했어.
“자, 이 정도면 처음 치곤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네요.”
그러고선 엄마는 아빠를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저, 잠깐만요!”
나는 부모님을 붙들어 세웠어.
“송곳니가 제 인생에 급 끼어드는 이유는요? 그러니까, 다음으로 하실 말씀은 제가 뱀파이어라도 된다는 건가요?”
아빠가 천천히 입을 떼셨어.
“넌 뱀파이어는 아니야.”
“그렇죠, 절대 그럴 리 없죠.”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어.
“세상에 그런 건 없어요, 그죠?”
아빤 잠시 우물거리더니,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외국어를 통역하듯 말했어.
“네 엄마와 나는 말이야…… 반-뱀파이어, 뭐 정확히 말하면 반 조금 못 되는 40퍼센트이긴 하지만 어쨌든, 뱀파이어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주 자랑스럽단다. 우리는 ‘반-뱀파이어’이고, 너도 그 피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단다.”
정말 황당한 말을 들으면 말이야, 팔짝팔짝 뛰지도 않고(나중엔 그렇게 될지언정), 당장은 미치지도 않아. 그저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방금 들은 말을 곱씹어 보게 돼.
‘이건 꿈이고, 몇 초 지나면 돼지들이 창밖으로 날아오를 거야. 그렇지 않고 이게 다 현실이라면, 부모님 머리가 어떻게 된 거겠지.’ --- pp.11-16
10월 15일 월요일
오후 12시 45분
오전 수업이 끝날 무렵에 조엘이 코피를 흘렸어. 단짝 친구인 내가 조엘을 양호실로 데려가야 했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가는데, 손수건이 네 개나 피로 물들었어.
“다음부턴 코피 좀 일찍 쏟아라. 수업 4분 남기고 이게 뭐야? 너무하잖아.”
조엘은 그 상황에서도 까르륵 소리를 내며 웃었어.
나는 양호실 문을 두드린 다음, 홱 열어젖혔어. 마트론 양호 선생님이 방해받는 건 딱 질색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더군.
“코피네.”
마트론 선생님이 느릿느릿 중얼거리곤 나에게 시선을 돌렸어.
“알았으니까, 넌 교실로 돌아가.”
선생님은 마지막 말을 툭 던지고는 문을 사정없이 닫아 버렸어.
내가 그걸 본 건 바로 그때였어.
조엘의 코피가 묻어 있는 손수건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거야. 그래서 주웠지. 피가 흠뻑 젖어 있었어. 그리고 나는 일생일대 가장 미친, 가장 어리석은 충동을 느꼈어. 손을 받치고 피를 짜내기 시작한 거야! 그러자 위가 뜨겁게 반응을 했어.
사실, 그토록 허기를 느낀 것도 인생에서 처음이었어. 꼭 며칠 굶은 것 같았어. 그래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조엘의 피를 후루룩후루룩 들이킨 거지. 입에 넣고 잠시 음미하다가 꿀꺽 삼켰어. 따뜻하고 촉촉한 맛이 끝내주더군! 그렇게 맛있는 건 평생 처음이었어.
그 순간 조엘이 나머지 손수건을 양호실 밖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것이 번뜩 떠올랐어. 나는 쓰레기통으로 재빨리 달려가서 이 상큼하고 달콤한 피를 목으로 넘겼지.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했어. 더 들이키고 싶었어, 더! 만약 때맞춰 수업 종이 울리지 않았다면, 내가 어디로 달려갔을지는 아무도 모를 거야. 수업 종소리를 듣는 순간, 꼭 알람 소리를 듣고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어.
지금 뭐야? 그러니까 내가…… 뱀파이어처럼 피를 들이킨 거야? 내가 이렇게 혐오스러운 짓을 하다니!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젖히고 울부짖고 말았어.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것 같은 소리였어. 솔직히 그다지 위협적인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소리였어. 그리고 이곳, 양호실 밖이자, 문 두 개를 지나면 교장실이 있는 쳀곳은 그런 소리를 내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지.
--- pp.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