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원, 책임자, 팀장, 지점장, 고경력 직원 순으로 연결되는 5단계의 직책에 세 번의 승진 그리고 30년이 넘는 세월. 회사와 함께한 인생을 요약해보니 이렇게 단출한데 뭘 그리 욕심부리고, 갈망하고, 좌절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현직으로서의 직장 이력을 한 줄로 정리해보면 행원 8.5년, 책임자 8.5년, 팀장 4.5년, 지점장 8.5년이다. 30년 현역 시절은 이렇게 유수같이 흘러갔고, 지금은 Pre-퇴직러가 되어 임금피크제로 근무하고 있다.
나의 이력은 동년배나 입사 동기들과 비교해 화려하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는 아주 평범한 수준이다. 물론 나보다 먼저 승진해 지점장을 더 오래 한 인물도 있고, 지역본부장·부행장까지 역임한 동기들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누구나 다 지점장을 할 것 같아도 개중에는 본의 아니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러 있다. 본인은 분명 지점장까지, 아니 그 이상을 간절히 원했고 노력 또한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삶인가 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혹은 남의 모함이나 견제 등으로 원치 않은 일이 수없이 발생한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좌절감을 맛봐야 하는 때도 있고, 친구나 동료와 의견이 틀어져 크게 싸우기도 하고, 함께 근무하던 동기보다 먼저 승진하여 기쁨을 누릴 때도 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러한 격정적인 포인트가 당시와는 달리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었고, 이해되는 것이 참 많다.
2021년 1월 현직 생활을 마감하고 고경력 직원(교수)으로 전환되었다. 이른바 Pre-퇴직러가 된 것이다. 지점장을 하다 인사발령 부임일부터 곧바로 다른 일을 하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일의 무게가 감소한 만큼 급여도 자동 삭감되었다. 누구라도 언젠가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자리를 비워준 셈이다. 아끼던 후배들에게 소중한 자리를 내주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한편으로는 어리게만 보이는 후배들이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잘할 것이고, 앞으로는 더욱더 큰일을 해낼 것이다. 후배들을 믿고 응원해줘야 한다. 현재 주어진 업무가 전과 비교해 상당히 단순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줄어들면서 평화로운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평소 좋아하던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취미생활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여유와 여기에서 발현되는 마음의 여백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즐거움이다.
직장생활 중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많고 많은데 그중에서도 나만의 신념을 바탕으로 앞만 보고 내달리느라 생애 최고의 VIP인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점, 평판 약화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강함을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던 점, 미래를 대비한 자격증 취득이나 공부가 부족했던 점이 지금도 마음에 걸리고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내게는 소중한 가족과 더없이 친한 직장동료들이 있고, 특히나 직장에서 갈고닦은 역량과 밑천은 인생 리오프닝을 열어가는 강력한 엔진이 되어줄 것이다. 여기에다 보이지 않는 나만의 자산도 있다. 30년 세월의 다양한 인생 경험, 틈틈이 쌓아온 사람들과의 관계와 오랜 기간 열심히 해왔던 메모 콘텐츠이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5단계의 직급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를 현실감 있게 풀어 당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직장살이 비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살이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장생활에서는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이 필요한지, 일찍 알아 두면 더 많은 도움이 될 것들이다.
이 글이 대단한 어록은 아닐지라도 직장살이 비결을 통해 더욱 지혜롭고 풍요로운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조금만 더 생각하면 누구나 피해갈 수 있는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현직에서 목표로 했던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또다시 일어서 전과 다른 길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평범한 직장인의 평범한 이야기이기에 조금은 공감되리라 믿는다.
---「prologue」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