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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28*182*20mm
ISBN13 9788960217089
ISBN10 896021708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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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가 보지 않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이미 수십 번을 다녀온 섬도 있습니다

밤마다 독주에 취해 허황된 모험담을 떠벌리는 해적처럼 나그네는
도시에 사는 동무들에게 결혼을 한 뒤에는 아이들에게
솔여도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적당히 술에 취해 솔여도를 이야기하던 어느 날 저녁
이야기의 바다에 떠 있는 솔여도가
나그네가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를 빼닮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끝없는 이야기로 솔여도를 만든 것은
나그네의 명치에 사무친 그리움이었던 것입니다……

나그네가 솔여도에 발을 디딘 것은 중년이 되어서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정작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여인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입으로 능란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의 문자를 처음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의 솔여도는 이야기 속의 솔여도와 많이 달랐습니다
물개를 훈련시켜 고등어를 잡는다는 어부들은 모두 사라졌고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돌고래로 변신하는 소년들로 가득 차 있다는 분교는
오래전에 문을 닫았습니다
야생 염소들이 달밤에 모여 회의를 한다는
오백 살이 넘은 상수리나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뭍에서 건너온 집들이 군데군데 독버섯처럼 돋아나 번져 가고 있는
맥박이 잦아든 골목을 걸어 다니다가 나그네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그네의 입을 통해 이 섬의 이야기를 해 온 것이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대한 나그네의 향수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솔여도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이 섬의 이야기를 해 온 것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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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앞바다 홀로 지키며 밤새 빛을 심는 이 있어. 밤새워 어둠을 일구면 바닷속 모든 생명체도 그와 함께 혼연일체가 되는 법. 그는 밤바다의 하늘에 별을 호명하고, 새벽녘 동터 오는 파도 소리 크게 호령한다. 그때 바다는 잠잠한 숙면의 고요를 딛고 힘찬 물굽이로 살아나곤 한다. 그에게 바다는 길이요 생명이요 곧 살아 있는 실체다. 그러니 그가 쓰는 문장은 바다를 잉크 삼아 써내는 살아 있는 경전. 그는 바다 위 길을 따라 고래와 도반이 되어 심해까지 갔을 것. 우리 모두 삶의 길 찾아 나선 길 위의 발자국 아닌가. 어제는 바다를 담아 바람 소리 파도 소리 풀풀 나는 횟감 냄새 보내왔는데. 돌아보니 그의 바다 어디도 길이고 어디에도 길은 없다. 그는 길과 더불어 별의 길을 묻는데. 온종일 헤매면 사라졌던 길들 모두 빛이 되어 솟구치는 것이다.
- 김완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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