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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드럼
우리 이거 얼른 들어볼까요 생활음악인 떨림의 연속 한 곡 떼기 닳기를 바라는 마음 수작업 악보 클럽 1열 관람기 본업이 아닌 자들의 자유 어른이 되어 좋은 것들 드럼 아니고 드럼세트 하림상과 도라무 생각보다 여려요 여성 드러머 모십니다, 밴드원 불이 켜진 그곳 |
저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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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엔 일부러 작은 가방을 메 스틱이 굳이 바깥으로 삐져나오게 넣어준다. 그것이 멋이다.
---「아침 드럼」중에서 음악 세계가 다시 한번 크게 확장되었다. 이번엔 대폭발이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시작이 있다니.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그저 반복적으로 많이 듣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 곡을 연주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가사에만 기울였던 귀를 드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렸다. 드럼이 독보적으로 귀에 띄는 곡이면 그건 그것대로, 잔잔히 깔려 있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잘 듣고 싶어졌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늘었다. ---「생활음악인」중에서 드럼을 칠 때 내 몸을 통과하는 소리는 드럼뿐만이 아니다. 옆에 세워진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도 함께다. 노래를 틀고 거기에 맞춰 연주를 하다 보면 노래랑 하나 되었다는 느낌보다는 노래에 포옥 둘러싸인 기분이다. 그럴 때면 눈앞에 금세 상상의 밴드 멤버들이 등장한다. 그러면 나는 또 심장이 떨린다. 드럼은 밴드에서 악기들을 이끄는 중추 역할을 하므로 다른 악기들보다 종잇장 한 장이라도 앞서서 박자를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동그란 음표의 앞쪽을 베어 무는 기분으로 박자의 앞쪽에 붙어 연주하라고 했다. 그러면 다른 악기들이 드럼 소리에 맞춰 연주 속도를 맞출 거라고. ---「떨림의 연속」중에서 처음 드럼을 배울 때엔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빡빡 내려칠 줄 알았는데, 그럴 새가 없다. 지금 나오는 곡을 어떻게 잘 칠지만 생각하고, 팔을 이리저리 뻗고 발을 구르느라 바쁘다. 꼬리를 무는 후회나 아쉬움을 심벌이 쨍 하고 끊어주고 베이스 페달은 정신 차리고 노래 속으로 들어오라며 나를 팡팡 두드려 깨운다. 그렇게 낸 소리들이 흩어지는 동안 내 고민들도 같이 흩어진다. ---「한 곡 떼기」중에서 수업이 끝나고 스틱을 정리하다 보니 숄더 부분에 자국이 더 깊게 패어 있다. 이 스틱은 언젠가 제 수명을 다하겠지만 드럼과 나 사이의 첫 연결고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비유이면서 실제로 그렇다. 드럼은 스틱을 통해 몸이 직접 닿지 않은 채로 연주하는 악기니까. 그 적당한 거리감에 매번 놀란다. 나는 스틱을 통해 드럼에 닿지 않고서도 드럼 속에 있다. 닿지 않으면서 완벽히 닿아 있는 이 모순이 마음에 든다. ---「닳기를 바라는 마음」중에서 유튜브에 ‘grandma drummer’를 검색하면 인종도 나이도 다양한 세계 곳곳의 드럼 치는 할머니를 볼 수 있는데, 그 영상들은 내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저 나이에도 저렇게 여리게 브러시를 다룰 수 있구나. 저렇게 정교하게 하이햇을 오픈할 수 있구나. 나도 앞으로 50년 정도는 더 칠 수 있겠구나. 이 여성들을 만나기 전엔 나조차도 내가 여자이기에 드럼을 칠 때 남자보다 힘이 달리는 게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사실 드럼의 만듦새 자체는 팔다리가 길고 손이 두껍고 힘이 좋은, 체격이 좋아서 대체로 남성으로 분류될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드러머는 피지컬이 제각각이고, 남자라고 해서 전부 체격이 큰 건 아니니까. 이들은 자신만의 요령으로 저마다 멋지게 드럼을 플레이한다. ---「여성 드러머」중에서 내 안에 나도 몰랐던 재능이 있기를, 익히는 속도가 남들보다 훨씬 빠르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실력에 대한 자기객관화가 잘된 겸손한 학생으로 보이길 바랐다. 내 마음이 실력보다 저만치 앞서 나가 있음을 들키는 게 아주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무언가를 배우면 좋은 점이 여럿인 만큼이나 체면을 차리게 되니까. 그런 내게 수업 때 배울 곡을 정할 기회가 주어지면 나는 늘 “하고 싶은 곡이지만 저한텐 아직 어려울까요?”를 덧붙이곤 했다. 사실 어렵든 쉽든 어떡해서든 해내고 싶은 곡인데도 그랬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노래를 고를 때 쉬울까 어려울까 고민하지 말고, ‘이걸 할 때 즐거울까?’만 생각하세요.” ---「불이 켜진 그곳」중에서 |
_‘이제 음악이 입체적으로 들리겠어요’
첫날 스틱 잡는 법을 배우고 스네어드럼을 내려치던 순간, 스틱 끝에서 손으로 올라오는 떨림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어릴 때 방방을 타다가 땅을 디뎠을 때처럼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현실에서 살짝 붕 뜬 기분으로 레슨실을 성실히 오가는 사이, 스틱을 내려칠 때 전해오는 섬세한 떨림에, 베이스드럼의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한 울림에, 별빛이 부서지듯 청량한 심벌 소리에 점점 몸과 마음을 빼앗겼다. 드럼을 배우기 전까지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그저 반복적으로 많이 듣기라고 생각했는데 드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는 ‘이 곡을 연주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가사에만 기울였던 귀를 드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렸다. 곡에 스민 드럼 소리를 열심히 찾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아주 많이 늘었다. _드럼을 통해 나의 세계가 다시 한번 크게 확장되었다 음악이 입체적으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음악의 언어에 대한 감각도 늘어갔다. 땡스북스 한편에 진열돼 있던 음반들을 다시 꺼내 보고, 드림팝, 슈게이징, 얼터너티브락, 사이키델릭팝 등 몇 번을 읽어도 물음표가 가시지 않아 감으로 때려 맞히던 음반 소개 내용들을 드럼을 배우고 나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땡스북스 음반 진열장에 겹겹이 포개둔 시디들을 장르에 따라 다시 분류했고, 한 장 한 장 재킷이 잘 보이도록 진열했다. 스스로 음악에 문외한이라 여기며 멀리하던 음악 분야 책들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나서서 찾아 읽고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게 되었다. 책과 되도록 멀리 떨어져보고자 시작한 드럼이, 어느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책의 세계를 확 넓힌 것이다. _어른이 되어 좋은 것들 드럼을 배우며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일은 달콤했다. 그래서 자꾸 욕심이 났다. 지금껏 몰랐던 재능이 있기를, 익히는 속도가 남들보다 훨씬 빠르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실력에 대한 자기객관화가 잘된 겸손한 학생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래서 수업 때 배울 곡을 정할 기회가 주어지면 “하고 싶은 곡이지만 저한텐 아직 어려울까요?”를 덧붙이곤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노래를 고를 때 쉬울까 어려울까 고민하지 말고, ‘이걸 할 때 즐거울까?’만 생각하세요.” 드럼으로 밥벌이를 할 것도 아니며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확률도 낮다고 한계를 긋자 오히려 드럼 앞에 더 앉고 싶어졌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지워갈수록 현재의 즐거움이 선명해졌다. 좋아하는 것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좋아하는 대상과 바람이 통하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사랑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좋아하는 일에 흠뻑 빠지는 대신, 빠져나올 때를 전보다 더 잘 아는 어른이 되어 깨달은 진실이다. 어른이 되어 만난 덕분에, 드럼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_드럼의 뜨겁고도 여린 품성을, 여리면서도 정확하게 내는 소리를 닮아가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럼을 두고서 힘차다, 격하다, 시원하다 등 센 악기로 인식하지만 드럼은 철저히 외강내유형의 악기라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다. 자신의 소리를 때에 맞게 줄일 줄 알고, 여운을 남길 줄 알며, 앞으로 나서지 않고 기타와 보컬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세 보이지만 섬세하고 유순한 악기. 손정승 작가는 드럼을 곁에 두고서 계속 닮아가고자 한다. 그것의 뜨겁고도 여린 품성을, 여리면서도 정확하게 내는 소리를. 『아무튼, 드럼』은 손정승 작가가 세상을 향해 여리면서도 정확하게 내는, 첫 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