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덜덜 떨었다. 온몸이 달콤한 향기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저 무서웠다. 무섭고 또 무서웠다.
역시 그 꽃을 꺾지 말아야 했어. 미요는? 이제 찾았을까? 그 아이,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아아, 미요가 그 붉은 꽃의 이름을 뭐라고 했더라?
지독하게 강렬한 향기와 공포에 사로잡힌 사치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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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 사쿠는 몸을 던지듯 겨우 집의 문을 통과했다.
간발의 차였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남자아이가 뻗은 손끝에 머리카락이 붙잡힐 뻔했던 것이다.
가면을 쓴 남자아이는 문밖에 멈춰 서서 한순간 분하다는 듯이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큭큭큭 하고 웃었다.
“빠르네. 정말 빨라. 하지만 내일은…… 도망칠 수 있을까?”
남자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쿠는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사쿠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오른발 복사뼈가 보랏빛으로 부어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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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쿠의 몸속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동시에 몸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쿠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온통 바싹바싹 말라 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말라 가는 것이 느껴졌다.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바다뿐이었다.
“비켜! 바다에 가야 해! 안 그러면 나, 죽고 말 거야! …… 비켜! 비키라니까! 방해하지 마! 방해하지 말라고!”
분명 다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지만, 그것은 다쿠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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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못 가. 나랑 스모를 더 해야지.”
가나가 손뼉을 치자 다섯 남자아이가 휘청거리며 움직이더니 신사의 출구를 막았다. 다들 가나에게 진 남자아이들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노부도 있었다. 다섯 명 모두 눈이 죽은 생선처럼 탁하게 변해 있었고, 반쯤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공포에 사로잡힌 아이들을 보면서 가나가 히죽히죽 웃었다.
“자아, 다음은 누구 차례야? 나랑 대결하지 않으면 여기서 단 한 사람도 나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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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히나? 뭐 하는…… 어?”
쓰유는 움찔했다.
땅바닥에 자신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낯선 아이의 그림자가 나란히 있었다.
쓰유는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지만 옆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땅에는 분명 그림자가 하나 더 있다. 오직 그림자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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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주인은 아마도 여자아이일 것이다. 짧은 머리칼이 두 갈래로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 팔다리는 가녀리고, 입고 있는 옷은 소매가 짧고 길이도 깡총한 기모노였다.
그때 그림자의 손이 아이들을 향해 쑥 뻗어 왔다.
“히익!”
쓰유는 무심코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림자의 손은 쓰유에게 닿지 않고 그대로 주저 없이 히나를 향했다.
그림자에 닿은 순간, 히나가 사라졌다. 훅 하고 바람 속으로 녹아든 것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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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는 노래를 부르면서 세이지를 향해 점점 손을 뻗었다. 어느새 그 손바닥은 새까만 털로 뒤덮였고, 긴 손톱도 돋아 있었다. 게다가 손이 점점 더 커졌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세이지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붙잡힐 거야! 반딧불이가 되고 말 거야! 싫어, 싫어!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괴롭힌 사람들도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이제 그런 짓 안 할게요!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약속할게요! 살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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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슌의 앞으로 검은 금붕어가 홀연히 헤엄쳐 왔어. 그리고 입을 벌리더니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어.
“약속을 어겼구나. 약속을 어긴 아이는 신의 것. 바로 녹색 물의 신의 것이 되지. 자, 어서 가자. 신이 기다리고 있다.”
마당 쪽으로 난 장지문이 탁 하는 소리를 내며 멋대로 열렸어. 그 앞에는 미도리누마가 있었어.
미도리누마가 금붕어들과 슌을 데리러 온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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