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다른 밀수업자를 찾을 때까지 돈을 다시 똘똘 말아 비닐에 싸서 항문에 집어넣어야 한다. 지금 이 뒷골목에 마치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쓰레기통 뒤에 숨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놈이 있을지도 몰랐다. 압둘은 그곳을 재빨리 빠져나왔다.---p.16
압둘은 탁자가 무너지는 걸 지켜보았다. 탁자 다리가 부러지고, 냄비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그 안에 남아 있던 음식이 쏟아졌다. 굶주린 남자, 여자, 아이들이 달려들어 손으로 음식을 퍼담으며, 자갈과 흙 범벅이 된 스튜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짓밟히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이 짓밟힘 아래로 사라져갔다.---p.28
“이제, 너희들 돈 내놔.”
압둘은 그곳에 남아 있는 이주민들이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어 돈 다발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랜 여정 동안 어두운 곳에 숨어 지내게 만든 돈. 또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행동으로 벌어들인 돈. 그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장소에 도달하지 못한 채 땅 끝에 와 있다. 영국은 그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p.44
두툼한 손이 깊은 바다에서 나타나더니 배 가장자리를 덥석 움켜잡았다.
두 번째 손이 뒤따라 나왔다. 마치 넵튠이 배 안으로 올라오려고 버둥거리는 것 같았다. 배는 거의 90도 가까이 완전히 옆으로 기울었다. 순간, 체슬라프가 노를 들어 밀수업자의 손을 내리쳤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p.52
군인 하나가 압둘을 일으켜 세워 앉히더니 코앞에 다가와 물었다.
“남자들 어디 있어?”
“당신들이 전부 죽였잖아요.”
압둘이 말했다.
군인이 손바닥으로 내리치는 바람에 압둘은 쓰러지고 말았다.
“저 놈 붙잡아.”
머리 위로 두건이 씌워지고, 누군가 등 뒤로 손을 잡아당겼다. 군인 하나가 압둘의 등을 무릎으로 누르며 손목에 플라스틱 수갑을 채웠다.---p.90
“늘 걱정거리가 하나씩 더 남아 있게 마련이지.”
압둘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언제나 한 가지 더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 하나가 풀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타고 갈 걸 찾아내면, 음식이 떨어진다. 음식을 찾아내면, 국경에 막힌다. 위조꾼을 찾아내 여권을 만들고 나면, 기차 사고로 친구를 잃는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언제나 한 가지가 더 있다.---p.101
“목은 어때?”
“아파.”
압둘은 요나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열은 내렸군.”
“아파서 미안해.”
“아픈 건 사과하는 게 아니야.”---p.108
로살리아는 이곳을 떠나는 게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길가 쓰레기 하치장의 쓰레기 더미로 자신을 끌고 가 끔찍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괴롭혔던 나치 문신을 한 돼지 같은 놈들의 기억으로 가득찬 곳. 삼촌과 식구들은 로살리아를 떠나보내는 게 슬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악당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들은 분명 일당이 있을 거다.---p.114
“이바나 페트로프카, 29살, 약학 석사, 취미는 바느질, 요리, 춤, 이상적인 남성상은 재미있고, 모험심 강하고, 행복한 가정.”
그레고르는 사진 밑 설명을 읽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네 엄마 통신 판매 신부잖아. 돈 많은 독일 남자 만났어?”
“오스트레일리아 사람. 엄마는 나 찾으러 돌아올 거야.”---p.157
“트럼펫을 내던진 건 정말 재즈적이었어. 재즈는 너 자신의 규칙을 스스로 만드는 거야. 그건 사물을 느끼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지. 발 맞추어 행진하는 게 아니라…….”---p.176
체슬라프는 삼각건을 묶고 꼭 여몄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압둘이 물었다. 붕대는 튼튼하고 깔끔했다.
“군사학교에 다녔어. 군대는 사람을 파괴하는 법, 그러고 나서 원래대로 붙이는 법을 가르치지.”---p.192
체슬라프는 압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트럼펫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인도 가장자리에 놓인 쓰레기통을 들어 상점 창문을 내리쳤다.
체슬라프는 트럼펫을 움켜잡았다.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압둘은 벌써 달리고 있었다. 둘은 전속력으로 달려 공동묘지를 지나 어두운 들판을 가로질렀다.
동굴로 돌아왔을 때, 압둘은 몹시 화가 났다. 체슬라프를 땅에 밀쳐냈다.
“너 때문에 둘 다 붙잡힐 뻔 했잖아! 난 힘들게 이곳까지 왔어. 그런데 너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고!”---p.208
등에 닿은 장화가 압둘은 떼밀었다. 자갈이 얼굴에 박혔다. 자갈이 얼굴에 닿을 때, 누군가 압둘에게 침을 뱉었다.
“도대체 저런 놈들은 어디서 꾸역꾸역 들어오는 거야? 누가 계속 이 나라에 들어오게 하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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