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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마감식 :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띵 시리즈-02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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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174g | 115*180*20mm
ISBN13 9791192908472
ISBN10 1192908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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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조용히 혼자 ‘잘’ 앉아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실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태생부터 고독한 동물이 틀림없지만, 공허를 견디는 것엔 수련이 필요한 법이니까. 차거나 뜨거운, 마실 것이 담긴 잔을 손에 쥐는 행위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 차를 마시는 건, 그래서 소설을 쓰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차를 고르고, 다구(茶具)를 꺼내고, 차를 우리고, 마시는 모든 단계가 ‘구상-예열-집필-완성’이라는 소설 쓰기의 상황과 닮아 있는 것이다.
---「염승숙_차나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중에서

컵은 노트북이나 인쇄물로부터 약간은 거리를 두고 내려놓는데, 바로 옆에 두었다가 키보드 위에 엎지르면 어쩌나 걱정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컵 안의 검은 바다가 높이 솟구치는 상상을 한다. 마치 쓰나미처럼. 갑작스러운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저 아래 움직이는 활자들을 덮치는 장면을 그려보면 컵과 내 움직임 사이에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다. 책상 위는 언제나 사건 현장으로, 낭만이라고는 자라날 틈이 없다.
---「윤고은_우리의 쇼윈도 관계」중에서

마감이란 결국 다시 쓰고 고쳐 쓰면서, 자기 작품에 확신을 갖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마감을 ‘끝’낸다는 건 완성된 초고를 몇 번이고 가다듬고 매만지는 행위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통해 거짓 없는 아름다움과 직면하려는 태세와 같다고도 생각해본다. 소설가는 자신이 주시하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변하지 않고 일어나는 양상에 대해 쓰려고 하는 동시에, (나에게) 보이지 않는 불합리와 (남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불편에 대해서도 핍진하게 쓰고자 욕망하기에 그렇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가의 경험적 진실과 진정성 있는 사유가 녹아 있는 가상의 실재이기에 또한 그렇고.
---「염승숙_파이팅… 파이팅…」중에서

마감 압박으로 몸이 너무 납작해져 절편이 되기 직전의 어느 날, 출퇴근 네 시간과 체력을 아끼기 위해 호텔 투숙을 감행했다. 밤을 홀랑 새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으로만 잘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책상이 없었고, 아주 낮은 테이블만 하나 있었다. 가장 저렴한 기본 객실이 아니었음에도 책상스러운 것은 거울이 달린 화장대뿐이었다. 거기서도 조금 작업을 하긴 했지만, 눈앞의 거울을 무시하면서 원고 작업을 하는 데에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다. 보기 싫어, 보기 싫다고, 나를 비추지 말라고! 궁여지책으로 내가 생각해낸 건 객실에 있던 스탠드형 다리미판. 그게 책상이 됐다.
---「윤고은_작업실 2호와 3호」중에서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로 바닥을 보여선 안 되는 게 작가에게 있다면 그건 당연히 커피가 아닐까? 꼭 작가로만 한정할 수도 없고 나의 경우엔 보이차도 좋아하지만 어째선지 카페인이 제공하는 활동성과 고양감은 차에 비견될 것이 아닌 듯하다. 나 역시도 캡슐과 드립백, 믹스를 가리지 않고 커피가 줄어들지 않게 점검하는 습관이 있다. 내게는 평생의 동반자 ‘얼죽호(얼어 죽을 호기심)’가 있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거의 모든 브랜드의 제품들을 사서 마셔보기도 하고, 탐정이 된 기분으로 주변 카페들을 수시로 검색, 탐문하곤 한다.
---「염승숙_오십 잔까지는 감히」중에서

두 달에 한 번씩 다가오는 장편소설 마감일. 얼마 전엔 편집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이번에 사건이 좀 많았거든요.”
그러자 편집자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죠? 사건이 나올 것 같았어요.”
“예? 어, 소설 속에서요? 제 삶에 사건이 많았다는 얘기였는데, 물론 소설 속에도 사건이 있죠. 있습니다!”
---「윤고은_곳곳에 사건이 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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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원고 노동자는 마감 앞에서 어떨지 늘 궁금했다.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거의 완벽한 답이다. 분명 키득대며 읽었는데 깊은 위안을 얻었다. 위트와 취향, 진지한 성찰까지 담겨 있는 책을 읽으며 군침이 도는 건 덤. 마감에 대해 썼지만 여기에 실린 글이 작가나 지망생, 그들의 삶이 궁금한 독자만의 양식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며 매일 회의와 보람, 불안과 자부를 오가는 모두에게 풍성한 만찬이 되어줄 것이다.
- 백수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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