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놀았던 시간들에 대한 양육자의 기록이자, 어린이의 성장에 따라 독파한 그림책들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그림책에 얽힌 사랑과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시기를 바란다. 다만 현재 아이를 키우고 계신 독자님들께는, 어린이와 책을 읽고 함께 놀 때 거창하게 많은 것을 준비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다이소에서 구입한 동물 머리띠나 바둑돌 몇 개로도, 아이들은 그림책 속 이야기를 재현하고 변형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게 놀다 보면 아이들은 다시 책을 꺼내들 것이다. 내가 주방에 있든 책상 앞에 있든, 늪지대를 지나는 악어 떼처럼 살금살금 다가와, 슬그머니 책을 내밀며 같이 책을 읽자고 조를 것이다.
…어쩌겠는가. 아이는 자라고 엄마 무릎에 앉아서 같이 책 읽을 시절은 짧은 것을.
---「들어기는 글」중에서
이 그림책을 선물로 가져다준 사람은 “내용만 보면 그냥 사과계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데, 우리 조카를 보니까 정말 이 책을 씹어 먹을 듯이 좋아했다.”라고 했다. SF를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 이야기가 외계인과 지구인의 근접 조우, “지구에 온 사과 형태의 외계인이 지구 생물들에게 사과 취급당하며 싹 잡아먹히고는 나중에 우주선 껍데기까지 비를 피하는 용도로 털리는 비극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의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중에서
나는 무리해서 모두가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서점에 펼쳐진 책의 바다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 읽고, 좋아하는 그림이 왜 좋은지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고, 편견 없이 새로운 음악을 계속 시험 삼아 들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좋은 독자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찾아나가며 제 취향을 다듬어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언제든 현실로 돌아올 수 있지만,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도 늘 문을 열어두는, 자신과 다른 이들과 웃으며 마주할 수 있는 용감하고 다정한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경계를 넘어 그림책 속의 세계로」중에서
둘째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바로 그날, 동생이 집에 온 지 세 시간 만에 한숨을 쉬며 돌아앉는 첫째를 보며 나는 우리 집에서 이제 이 책의 유통기한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동생이 태어나도 너의 생활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수시로 안아주고, 배우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놀아주고, 어린이집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동생이 태어나도 엄마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래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동생의 존재 자체가 심란했던 모양이다.
---「동생이 태어나도 너를 사랑해」중에서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에게 반발하고, 부모의 뜻을 꺾고, 부모를 뛰어넘어서 자기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금강산 호랑이』의 유복이는 그렇게 ‘아비 없는 유복자’의 운명을 넘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갔다. 자아를 찾기 위해 금강산에 가서 호랑이를 잡을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는 양육자의 뜻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때가 왔을 때 내가 적당히 꺾여줄 수 있기를.
---「옛날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는데」중에서
책이 묘사하는 그 장소에서 책을 읽는 것은 독자에게 각별한 경험을 안겨준다. 우리 주변을 묘사한 작품의 현장에서 바로 그 책을 읽는 경험은, 책 속의 이야기가 먼 나라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곁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림책 속 우리 동네를 찾아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