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종하는 침묵을 통해 침묵의 영지에 들어가는데, 순종하는 침묵에 이르는 지도는 없다. 하지만 순종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기술은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지도에 없는 땅을 마침내 발견한다. 그뿐 아니라 이미 죽었거나 현재 살아 있는 동료 순례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들의 지혜는 수많은 책과 사랑의 행위를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그들은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고후 5:7이 어떤 것인지도 가르쳐준다. 이 책은 이러한 영성 기술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그리스도교 영성 전통이 침묵 수련을 통해 어떻게 그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10쪽)
우리는 인간의 신비를 바다에 떠 있는 스펀지에 비유할 수도있다. 스펀지는 자기 밖에서도, 안에서도 바다를 본다. 이 스펀지는 자기를 통과하면서 흐르는 바닷물에 점점 잠긴다.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된 스펀지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구별되면서도 하나인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수록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된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마땅히 되어야 하는 존재로 창조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이 샘솟는 사랑이라면, 피조물은 그 사랑에 힘입어 샘솟은 사랑이다. (32쪽)
관상은 순전한 은총이다. 관상의 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관상의 기술도 중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관상의 꽃은 피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총은 서로 협력할 때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 없이 당신을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없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의롭게 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아빌라의 성 테레사St. Teresa of Avila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83쪽)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머릿속에서 지어내는 이야기들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살아간다. 관상기도가 자랄수록 그런 이야기들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많아지며, 우리를 사로잡는 생각과 감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눈여겨 바라보면 지어낸 이야기들은 힘을 못 쓴다.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문장에 숨어 있는 뜻이 바로 이것이다. “이제 나는 나이가 든 노인일세. 그리고 내겐 많은 문제들이 있지. 하지만 그 문제들의 대부분은 결코 일어난 적이 없다네.”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쓸모가 없다. 침묵으로 고요해진 마음은, 두려움과 통증, 내면의 혼란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임을 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마음에게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관상기도는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이코드라마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이다. 관상기도를 통해 내적 침묵을 발견할 때 연민이 샘솟는다. 침묵이 깊어지면 타자에 대한 연민도 깊어진다.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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