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전해주는 153개의 단상(斷想)-
무엇보다 언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지나가며 툭 던진 한마디 말에 상처받고, 낙심과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말 한마디에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 한마디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단어와 낱말들을 기가 막히게 글로 표현해내는 고정현 작가는 이미 다수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하고, 작사가이기도 합니다. 저자와는 2019년 12월,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새신자로 등록하면서 처음 만났고, 가정을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리면서 그가 시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필자에게 있어서 ‘시’는 참 어렵습니다. 글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한 뒤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고, 쉽게 전달해야 하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시는 명쾌한 해석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들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과 신앙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매우 세심하고 겸손하게, 때로는 시인의 감정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면서 마음 깊이 와 닿는 울림을 전해주는 시를 들려줍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평소의 생각과 언어들을 깊이 묵상하며 기록한 짧은 글들을 모아 단상집을 낸다866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책의 제목이 『문득 153』입니다. 저자도 밝힌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153’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숫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시던 날 밤, 세 번씩이나 그를 모른다 부인하고 도망쳐 갈릴리 바다로 돌아와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하셨을 때 잡은 물고기가 153마리였습니다. ‘153’은 실패의 상처와 아픔을 경험한 모든 자에게 위로와 회복의 상징 숫자입니다.
또한, 책의 내용 가운데 〈꼴 값〉과 〈이름 값〉을 통해 저자는 독자 자신의 모습이나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도 그렇고, 공장에서도 그렇고, 건물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면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필자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사는 사람인데 적어도 이름 값은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 담긴 153개의 단상(斷想)들을 통해 오늘을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생각과, 매사에 타산이 앞서는 우리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그런 일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소중한 작은 이야기들이, 저자의 예리한 눈과 따뜻한 가슴에 여과되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리라 확신합니다.
- 진영선 목사(조치원장로교회 담임)
---「서문」중에서
지금은 나이 때문인지 그다지 마음 쓰지 않게 되었지만 청년 시절에 욕탕에서 근육질의 몸을 보게 되면 부러워하곤 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부러움에 앞서 내 부족함에 대한 자책인 것인데, 내가 편하게 누워 쉬고 있을 때 그는 근육을 다듬기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감이 좋다.’라거나 ‘눈썰미가 있다.’ ‘순발력이 좋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 “삶의 근육”이라 하고 싶습니다. 수없이 반복해야 얻을 수 있는 순간적 대처 능력인 삶의 근육입니다. 넘어질 순간에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나 어떤 물질이 내 몸에 부딪치려 할 때 몸이 반응하는 자세 같은 것입니다.
운전 중 앞 차나 옆 차의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것은, 논리보다 먼저 운전 습관에 의해 발달된 운전 근육의 대처입니다. 부인들이 주방에서 눈대중, 손대중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도 그 상황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근육의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몸의 근육 발달이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처럼 삶의 근육(생활 습관)이 발달하면 그만큼 삶의 방식이 여유롭게 될 것입니다.
---「11. 삶의 근육」중에서
어느 분이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다고 사진을 찍어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어렸을 적 클로버 무리를 보면 그 안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고 무릎을 구부리고 엎드려 헤매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성인이 되고,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이며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더 이상 네 잎 클로버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세 잎 클로버에 더 깊은 관심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 네 잎 클로버가 세 잎 클로버 무리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면 세 잎 클로버를 짓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행운을 만나려고 행복을 짓밟는 것이니 차마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운이란 말 그대로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예측하지 못한 좋은 일을 만나는 것입니다. 흔히 ‘횡재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행복을 뒤로하면서까지 횡재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생각의 허비일 뿐이니 지금의 삶이 행복하도록 가꾸는 노력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38. 클로버」중에서
사람을 평하면서 ‘심지가 곧은 사람.’이라고 칭할 때가 있는데, 이는 그 사람 마음의 바탕이 올곧아 흔들림이 없다는 의미이며, ‘심지가 깊다’는 말은 생각이 성숙하고 믿음직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릴 적 전기가 없는 마을에 살았기에 저녁이면 호롱에 불을 붙여야 했습니다. 그 호롱에는 심지가 있어 높낮이로 불의 밝기를 조절합니다. 그런데 그 심지를 많이 올리면 불꽃에 검은 연기가 오르고 조금 올리면 불이 잘 붙지 않아서 늘 불꽃이 오를 정도로 맞추어야 했습니다.
사람의 성품이 심지와 같으니 올곧은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너무 강직한 것과 너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물이 너무 깨끗하면 물고기가 살 수 없으며 너무 더러워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강직과 올곧음도 적당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필요한 것, 등에는 늘 기름이 넉넉하게 있어야 하는 것처럼 곧음도 그 내면에 충분한 지식과 지혜와 경험이 있어야 그 밝음을 더 넓게 펼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17. 심지」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