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들을 발전시킬 그럴 듯한 발전 방법들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한국에서도 시의적절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인이 누구이며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결정할 사람들은 바로 한국인 자신이다. 그러나 만약 이 책에 담긴 나의 사상과 의견이 한국인과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고 발전적인 장래의 진로를 찾도록 돕는다면, 이 책을 쓸 때 품었던 나의 소망은 충분히 이뤄질 것이다.
--- p.17
전 세계에 걸쳐, 그리고 온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제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좋지 않은 서사보다는 더욱 훌륭한 정치적 국민 정체성 서사를 필요로 하는 요구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 p.30
나는 우선 포퓰리즘, 특히 우파 권위주의 형태의 포퓰리즘의 부상을 공동체와 소속감에 관한 오래된 의식이 해체되어 온, 더 넓은 전 세계적 추이 속에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나 는 이제는 표준화된, 현대 포퓰리즘의 근원에 관한 여러 설명에 대해 논박하지는 않겠지만, 특별히 이 책에서는 ‘국민 정체성의 서사’에 집중해 지금껏 상대적으로 덜 논의해 온 요인을 조명하고자 한다. 바로 주요 학 자들이 새로운, 복잡한, 무극성(nonpolar)의 세계라고 말하는 현대의 맥락 에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경쟁적 서사들이 확산되는 것 말이다.
--- p.27
그렇기 때문에 나는 뮐러와는 달리, 스스로를 포퓰리스트라고 칭하면서 강한 반다원주의, 비자유주의,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운동들을 가리켜 ‘병리적인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병리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까닭은 내가 그 추종자들을 비이성적이라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종류의 포퓰리즘이 뮐러와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나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포퓰리즘은 민족적·종교적 타자를 배제·억압·박해하고, 겉으로는 입헌주의적 자치를 유지하면서 사실상 독재를 확립할 가능성이 크다.
--- p.34
정치적 서사들의 불협화음이 최근에 생긴 광범위한 경제적·문화적 변화들과 더불어 오늘날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강력한 민족주의 형태의 포퓰리즘이 더 호소력을 가지도록 일조했다는 것이다.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지배적이고 친숙한 정치적 집단의 서사는 여전히 민족국가들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 p.82
서사는 오히려 다원주의를 단순히 인정하는 데 그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활성화해야 한다. 해당 공동체의 정체성 서사에서 중심이 되는 구성적 주제와 조화를 유지하면서 소수 종교, 특정 지역, 원주민 집단, 성소수자, 장애인 등과 같은 다양한 하위집단들의 요구에 가능한 한 최대로 호응하는 정책들을 승인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연방주의, 입법기관을 통한 특별 대표, 일반적인 구속력을 가진 법 적용의 면제,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확대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 pp.105~106
지금 우리는 모든 특별대우를 일단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규범처럼 되어 있는데, 그러는 대신에 미국의 입법기관과 법원은 증명의 부담을 거꾸로 적용해야 한다. 즉, 집단들이 요구하는 특별한 차등 대우를 거절할 수 있는 경우는 그런 거절이 필수불가결한 통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때로 제한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특정 집단에 대한 단순한 적대감이나, 그런 집단에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한다는 명목으로 합당한 차등 대우를 거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p.174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독립선언서」의 원칙들을 실현하는 일에 헌신하는 미국인을 그려내는 미국 시민의 서사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서사보다, 심지어 듀이 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서사들이나 오바마의 ‘에 플루리부스 우눔’ 서사보다도 훨씬 더 설득력 있고 유망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선언서」가 수많은 상이한 입장을 이롭게 하기 위한 증거로 이용됐던 그간의 역사가 보여주는 바는 「독립선언서」 자체가 현대 미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데 어떤 정해진 길잡이를 제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많은 점에서 제한적이어서 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목적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을 선호할 수 있다.
---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