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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강형철 / 고무신 술꾼-故 박영근 시인에게 고영서 / 지워진 이름이 고형렬 / 죽음에 부쳐진 자-박영근 시인에게 너의 취업 공고판 뒤에서 곽현숙 / 박영근 시인의 시를 읽다 박영근 / 추모제를 보면서 권화빈 / 최후의 詩-故 박영근 시인에게 김사인 / 봄밤 박영근 김영환 / 박영근 시인을 보내며 김왕노 / 문상-박영근 생각 박영근 생각 김용락 / 박영근 시인의 1달러 김주대 / 시인 박영근 방문기 김해자 / 놓친 손 김해화 / 사랑은 함께 길을 가는 것-박영근에게 김환영 / 진실 도종환 / 못난 꽃-박영근에게 류 명 / 자물쇠 저편-인천 부펑구 부평4동 10-22 최병은 씨 댁 옆집, 박영근 문동만 / 배웅 박두규 / 시인의 전화 박라연 / 우연히 들른 박상률 / 박영근을 만나다 안부-시인 박영근의 전화 박일환 / 최병은 씨 댁 옆집-박영근 시인을 생각하며 박정근 / 영산홍-박영근 2주기를 기념하여 쓴 시 박영근 시인 3주기에 붙여 박 철 / 박영근 생각 백무산 / 몸이 빈 손님 헛된 꿈을 접을 시간이다-박영근 시인의 영전에 서정홍 / 그대로 둔다 서홍관 / 갯벌같이 넓고 질기고 깊던 사내-영근이를 추억하며 메시지로 남겨 주세요 성효숙 / 꿈속의 꿈 작별 손세실리아 / 부음(訃音) 별사(別辭)-고 박영근 시인께 신현수 / 박영근 안상학 / 박영근 이후 양은숙 / 해식(海蝕) 오철수 / 꿈속의 사랑-박영근 시인이 죽었다 유용주 / 머나먼 항해 유종순 / 이별 윤관영 / 밥, 밥, 밥 이경림 / 오늘은 비가 와서 이승철 / 변산바다에 와서-박영근 시인에게 이시영 / 박영근 시인 이재무 / 봄밤 정세훈 / 오월 흰 구름 정용국 / 그대 불편했던 자리 버리고 정우영 / 건듯건 듯-박영근 정희성 / 시인 박영근 조영관 / 꽃을 던지며 울다-박영근 시인을 기리며 하종오 / 박영근 시인의 주소 해설 / 박영근은 박영근이다 수록 시인 소개 박영근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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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공고판을 향해 서 있는 그 사람의 등은
이 도시의 영원한 수수께끼 이제 그 춥고 을씨년스러운 취업 공고판도 사라지고 가등도 없고 어둡다 어둠만 드리운 죽음 속에서 보이느냐 얼음을 얼군 강바람만 귀싸대기를 후려치면서 사라져 가는 죽음의 파커 (중략) 눈 가리다 손사래 쳐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미어터지게 퇴직자를 싣고 한강 인터체인지를 오르고 있었지, 오늘이 오려고 한 그 시대처럼 나는 태양과 장님과 얼음장이 되어 합정동 로터리를 그때 그 보폭으로 뛰어 건너간 아직도 살아 있는 그, 그 어둠 속에서 귀만 남쪽 하늘로 열어 둔다 ---「고형렬, 너의 취업 공고판 뒤에서」중에서 그를 보내고 나니 우리가 마주치는 풀, 바람, 해와 별 구름, 정다운 얼굴과 거리마저 다 서로에게 하는 공손한 문상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지상에 불멸로 기거할 집 한 채, 불멸로 적을 둘 번지수가 없다는 것을 허공의 집에 이른 그가 말하는지 허공의 푸른 솔 한 그루로 우뚝 서서 전하는지 ---「김왕노, 문상-박영근 생각」중에서 인천시 부평4동 밤하늘 위로 흘러가는 별자리 그 아래 무엇이 남았는가 소멸을 꿈꾸는 자세로 마지막 흰빛 한 줄 시만 남았는가 옹색한 시인의 거처에서 동거하던 수챗구멍 속 쥐새끼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불면의 날들은 가고 멀리 휘황한 광고판 불빛에 가린 공장 굴뚝 같은, 휴전선 철책 같은, 시퍼렇게 칼금 그어대던 고뇌만 남았는가 ---「박일환, 최병은 씨 댁 옆집-박영근 시인을 생각하며」중에서 수없던 이별 속에서 돌아오는 6월 28일, 49재엔 한 번 더 당신을 보내네. 중환자실 앞마당에 쏟아지던 5월의 햇살에도 무덤가 꽃잔디, 노란 애기똥풀을 보고도 당신이 슬픈 눈빛으로 나를 통해 보고 있구나 (중략) 우주의 일곱 정거장을 지나 이제 다시 없던 곳으로 가기 위해 당신은 지금 공부 중이라지. 당신이 왔던 대로 맑은 영혼으로. 숙제를 마치고 껍데기를 벗고 가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조금 더 일찍 가며 내게 생의 비밀들을 알려줘서 여섯 번째 칠일을 보내고 49재엔 정성스레 당신에게 절을 올리기 위해 몸도 마음도 닦으려 한다네. 이승 떠나는 길, 당신도 그때까지 공부 잘 마치고 그때 보세… ---「성효숙, 작별」중에서 세상의 상갓집에 가장 늦게까지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는 사람이 문구 형님이었다. 사람들이 직수굿한 그를 일러 호상 체질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죽자 아무도 그 곁에 오래 앉아 있지 않으려 했다. 다만 대취한 박영근 시인만이 얼떨결에 그 곁에서 이틀이나 밤샘을 하였다. ---「이시영, 박영근 시인」중에서 문패조차 없는 집을 빠져나와 그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낯선 들판을 건너 까막까막 멀어져서는 어느 순간 검불같이 날아올라 먹먹한 산자락에 허위허위 내려앉는다. 어디선가 몰려온 수많은 검불도 그를 싸안으며 우 함께 내려앉는다. 마치도 노란 나비들 같다. 노란 검불 떼 헤치며 술 한잔 권하는데 아차, 눈물 그렁그렁 시립한 저것들은 그가 평생 써온 시들 아닌가. ---「정우영, 건듯건듯-박영근」중에서 |
뜨거웠던 한 시인을 기억하는 우정의 시집
시인 박영근의 곡진한 삶의 자취 더듬은 추모시편들 “박영근 시에 대한 어떤 규정이 내려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노동 시인이냐, 노동자 시인이냐, 나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고 그냥 시인이었어요. 좋은 시인이지.” -소설가 현기영(‘시인 박영근을 기억하다’ 영상 인터뷰 중) 시인 박영근은 잘 알지 못해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이어지는 노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 모르는 이가 드물 것이다. 이 노래의 원작시를 쓴 주인공은 시인 박영근(1958~2006). 슬프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품으며, 민중이 억압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던 시인은 2006년 5월 11일 지병으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014년 뜨거웠던 그의 삶을 기억하고자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으며, 2023년 5월 11일, 박영근 시인의 17주기에 즈음하여 44명의 시인이 참여한 추모시집 『꿈속의 꿈』이 출간되었다.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홍관 시인은 서문을 통해 “들에 피어난 풀꽃이나 여치나 잠자리 같은 풀벌레들도 지구라는 별에 살다 간 자취가 역력할진대 하물며 우리 시대를 48년간 뜨겁게 살아간 시인의 삶의 자취가 어찌 간단할 수 있겠는가. (중략) 그가 하늘에서 이 시집을 읽으며, 가끔 웃고, 가끔 눈물짓고, 가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길 것이라 믿는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추모시집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시인들의 언어가 모여 애도 시집이 되었다면, 애도 또한 박영근이라는 기표가 그들의 앞자리에 남겨 놓은 텍스트 연쇄의 회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박영근이라는 기표의 의미를 넘어, 박영근의 흔적에 의해 불러일으켜졌으되 박영근을 향해서만 환원되지 않고, 혹은 박영근으로 환원될 수 없이 무한한 의미 구성으로 시인들이 퍼져 나가는 자리”라고 이번 시집의 의미를 해석한다. 동료 시인들은 김치칼국수를 먹다가, 술잔을 들다가,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울리는 전화 벨 소리에 천생 시인이었던 박영근을 떠올린다. “동네 분식집에서 혼자 김치칼국수를 먹는데/갑자기 붉은 국물 위로 박영근 시인 생각이 나는 거라/그는 지금쯤 어딜 가고 있을까/술 깬 아침이면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밥그릇을 비우던 그.” -박철, 「박영근 생각」 부분. “허름한 식당 밖으로는 삼월인데도 함박눈이 쏟아져/몇 군데 술자리를 더 돌다가/너는 기어코 꾸역꾸역 울음을 쏟아 놓았다.” -도종환, 「못난 꽃」 부분. “창밖의 희붐한 빛살을 타고/취한 시인의 목소리가 건너왔다/20여 년 서울 생활에/지금도 갈 곳이 없다는 시인의 말이/예전엔 은유로 들렸던 그 말이/이젠 그대로 슬픔으로 온다/슬픔의 그림자까지 그대로 따라온다.” -박두규, 「시인의 전화」 부분. 박영근은 「절규」라는 시에서 “저렇게 떨어지는 노을이 시뻘건 피라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라고 노래했다. 박영근의 벗들이 절절히 써 내려간 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 박영근이 부른 모든 노래와 몸부림과 막무가내는 모두 “순결의 절규”였음을 우리는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숭고한 노동과 민중의 삶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그의 자취를 더듬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