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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신화

시시포스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 양장 ]
리뷰 총점9.0 리뷰 14건 | 판매지수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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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에세이 top2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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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1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32g | 128*188*20mm
ISBN13 9788994054483
ISBN10 899405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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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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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오영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대학원 불문학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현재 마르셀 프루스트 연구로 학위논문을 준비중이다. 현재 프랑스 인문학 연구모임인 ‘시지프Sisyphe’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및 동대학 국제사회교육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아내의 슬리퍼를 신은 남자Elle est moi』가 있으며, 2014년에는 『장애의 역사Corps infirmes et societes』(그린비), 『즐거움과 나날Les plaisirs et les jours』(연암서가)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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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 삶이 고생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나머지, 가령 세계가 삼차원으로 되어 있다든지, 정신의 범주가 아홉 가지 혹은 열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든지 하는 문제들은 나중 일이다. 이런 것들은 장난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 우선해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니체의 주장대로, 어떤 철학자가 자신의 사유를 설파하되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만 비로소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터, 왜냐하면 대답이란 결정적인 행동에 앞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7

이제껏 자살은 어떤 사회적 현상으로밖에 취급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반대로 우선 개인의 생각과 자살 사이의 관계를 문제 삼고자 한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마치 어떤 위대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침묵 속에서 준비된다. 당사자인 본인도 어찌 되어 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방아쇠를 당기거나 강물에 몸을 던진다. 언제였던가,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건물 관리소장을 두고, 그가 5년 전 딸을 잃었고, 그 후로 부쩍 변했으며, 그리고 그간의 사정이 ‘그를 쇠약하게 만들었다’며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곧 쇠약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 p.19

위대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심오한 감정들은 항상 의식적으로 말하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한 인간의 영혼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어떤 생동(生動)이나 척력(斥力)은 실천하거나 사고하는 습관들 속에서 다시 발견되고, 영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숱한 귀결들에서까지 계속해서 추구된다. 크나큰 감정들이라면 찬란한 것이든 비참한 것이든 그 감정들 특유의 세계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특유의 열정으로 배타적인 어떤 세계를 해명해냄으로써, 그 안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풍토를 되찾는다. 여기엔 질투의 세계도, 야망의 세계도, 이기심 혹은 이타심(利他心)의 세계도 존재한다. --- p.28

모든 위대한 행동들과 모든 위대한 사상들은 극히 하찮은 발단에서 시작된다. 위대한 작품들은 종종 어느 길모퉁이에서 혹은 어느 레스토랑의 회전문을 지나며 탄생한다. 부조리도 마찬가지다. 부조리의 세계는 다른 어떤 세계보다도 더욱더 초라한 탄생으로부터 스스로의 고귀함을 이끌어낸다. 가령 어떤 상황들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본심이 뭐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이 “그냥”이라고 답했다면, 이것은 그저 가식(假飾)으로 한 것일 수 있다. 연애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만일 이 대답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그리고 그 대답으로 말미암아 공허함이 설득력을 얻고, 일상적인 제스처들의 연쇄 고리가 끊어지고, 마음이 그것을 다시 이어줄 자그마한 고리를 찾아보지만 아무 소용없게 되는 영혼의 기이한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 대답은 부조리의 첫 징후나 다름없다. --- p.31

인간들 역시도 비인간적인 것을 분비한다. 명철함이 발하는 몇몇 순간들이면, 인간들이 취하는 제스처의 기계적인 면모와 의미 없는 무언극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바보짓거리처럼 여기게끔 만들어 놓는다. 유리 칸막이 뒤로, 한 사내가 통화를 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부질없는 그의 몸짓은 보인다. 그러다 문득,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밀려든다. 인간 자체의 비인간성 앞에서 느껴지는 저 불편한 감정, 우리 존재 자체의 모습 앞에서 느끼게 되는 저 헤아릴 수 없는 추락, 우리 시대의 어느 작가가 이름 했던 저 ‘구토’, 이것 역시 부조리다.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거울 속에 불쑥 나타나 우리 자신과 마주치는 낯선 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사진들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낯익지만 불안스러운 형제, 이것 역시 부조리다. --- p.35

하이데거는 인간 조건을 냉철하게 고찰하고, 인간의 실존이 모욕당했음을 공언한다. 유일한 현실은 무수한 존재들이 온갖 층위들에 걸쳐 기울이는 ‘염려’라는 것이다. 세계 안에서 그리고 이런 세계의 위희들 속에서 길 잃은 인간에게, 이런 염려란 잠시 왔다 사라져버리는 잠깐의 공포일 뿐이다. 하지만 이 공포는 의식 되는 순간, 명철한 인간이 처하게 되는 영속적인 풍토, 즉 불안이 되며, 이때 명철한 인간 안에는 ‘실존이 다시 자리하게’ 된다. 이 철학 교수는 한 치 흔들림 없이, 세상 더할 나위 없이 추상적인 언어로 “인간 실존의 유한하고도 제한적인 성격은 인간 자체보다도 훨씬 더 근원적이다.”라고 적고 있다. 칸트에게 관심을 기울인 그였지만, 그것은 칸트의 ‘순수이성’이 갖고 있는 한정적인 성격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분석의 말미에서 “불안에 휩싸인 인간에게 세계는 더 이상 아무것도 제공해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상 그에게 이 염려라는 개념은 추론의 여러 범주들을 어느 정도 뛰어넘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그는 오직 그것만을 고려하고, 그것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 p.49

부조리의 인간이 보기에, 세계의 모습들 모두가 하나 같이 특권적이라는 저 순전히 심리학적인 견해 속에는 어떤 진리만큼이나 동시에 어떤 씁쓸함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특권적이라는 말은 곧 모든 것이 등가(等價)라는 말로 귀착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의 형이상학적 양상은 후설을 너무나도 멀리까지 이끌고 가버린 나머지, 지극히 단순한 반응에서 후설 자신은 플라톤 쪽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 것 같다. 실제로도 사람들은 후설에게서 모든 이미지가 어떤 특권적 본질을 동등하게 전제하는 관점이 엿보인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계급 없는 관념의 세계에선 장군들만으로 정규군이 편성되어 있는 셈이다. 분명 초월성은 그 전에 제거되고 없다. 다만 사고의 어떤 급격한 전환만큼은 일종의 단편적인 내재성을 세계 안에 다시 끌어들임으로써 우주에 그 본연의 깊이를 회복시켜 놓는다. --- p.82

부조리와 마주치기 이전의 일상적인 인간은 숱한 목적들을 품은 채, 미래를 내다보며 혹은 정당화(이 정당화가 누구에 관한 것인지, 혹은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간다. 자신의 운을 가늠하는가 하면, 먼 훗날, 그러니까 자신의 은퇴나 자식들의 연금 혹은 일자리에 기대를 걸어 본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 속 무언가가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사사건건 이 자유를 반박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데도, 그 자신은 마치 자유롭기라도 하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조리와 마주치고 나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관념도, 모든 것에 다 의미가 있다는 듯 행동해온 나의 태도도(막상 그런 경우가 닥치면, 아무것도 의미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부조리함으로 인해 현기증 날 만큼 부인되고 마는 것이다. 다음날을 생각하는 것, 목표를 설정하는 것, 선호를 분명히 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은, 더러 자유를 실감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해도, 역시나 자유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부조리와 마주치는 순간, 저 우월한 자유, 어떤 진리를 성립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토대인 ‘존재’의 자유가 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연하게 깨닫게 된다. 바로 그곳에 죽음이 유일한 현실로 존재한다. 죽음이 찾아오고 나면,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자신을 영속시켜줄 자유가 박탈된 그야말로 노예, 영원한 혁명을 꿈꿀 희망도, 경멸에 호소할 길도 없는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런데 혁명도 경멸도 않고 과연 그 누가 노예인 상태로 머물 수 있겠는가? 영원이라는 보장도 없이 과연 그 어떤 자유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 p.100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만사는 너무나도 단순할 것이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부조리는 더욱 더 견고해진다. 돈 후안이 이 여인 저 여인을 전전하는 것은 결코 애정결핍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마치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환상가로 묘사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가 이 천부적인 재능을 반복해 가며 자꾸만 깊이를 더해갈 수밖에 없는 까닭은 똑같은 열정으로, 그것도 매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해서 그녀들은 아무도 그에게 가져다준 적 없는 것을 저마다 그에게 가져다주고 싶어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들은 깊은 착각에 빠져들고, 그는 이전과 같은 반복의 욕구를 느낄 뿐이다. --- p.121

언덕 위, 외딴 스페인 수도원 독방에 홀로 남겨진 돈 후안의 모습이 내 눈 앞에 선하다. 혹시라도 그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사라져 간 수많은 사랑의 환영들이 아니라, 아마도 불타오르는 총안(銃眼)의 틈새로 엿보이는 스페인의 어느 고요한 평원, 제 자신을 고스란히 알아볼 수 있는 영혼 없는 찬란한 대지일 것이다. 그렇다, 우수 어린, 그러나 햇살 가득한 이 이미지에서 이제 그만 멈추기로 하자. 최후의 종말, 그렇게 기다려 왔건만, 그렇다고 결코 바란 적도 없는 저 최후의 종말이라면, 경멸해도 좋다. --- p.132

배우는 필연적으로 소멸하는 것 가운데서 군림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세상 모든 영광들 중에서도 배우가 누리는 영광이란 가장 덧없는 것이다. 적어도 사람들은 화제 거리 삼아 그렇게들 말하곤 한다. 그러나 영광은 모두가 덧없다. 시리우스에서 내려다보면, 괴테의 작품인들 1만 년 후에는 티끌이 될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잊히고 말 것이다. 어쩌면 몇몇 고고학자들만이 우리 시대에 관한 몇 가지 ‘증거물’을 찾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생각은 늘 어떤 가르침을 주어 왔다. --- p.134

소멸하고 말 것을 흉내 내는 자인 배우는 오직 외관을 통해서만 자신을 단련하고 완성시킨다. 연극의 관습이란, 오로지 몸짓으로 그리고 육체로만?혹은 육체만큼이나 영혼에 속하는 것이기도 한 목소리로만?자신을 표현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연극 예술의 법칙은 모든 것이 육신으로 확대되어 표출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만일 무대 위에서 현실에서 사랑하듯 사랑하고,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마음의 목소리를 사용하고, 평상시에 바라보듯 응시한다면, 우리가 전달하려는 언어는 그저 암호 상태로 남겨질 것이다. 여기선 침묵마저 들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어조를 높여가고, 부동의 상태마저 광경이 되는 것이다. 육체가 곧 왕이다. 그저 마음으로 바란다고 ‘연극적인 것’이 되는 건 아니기에, 부당하게 평가절하 되어왔던 이 연극적이라는 말은 하나의 미학 전체, 어떤 도덕 일반을 포괄한다. --- p.138

모름지기 인간은 자신이 말하는 것들보다도 침묵하는 것들로 인해 한결 더 인간다워지는 법이다. 나는 많은 것들을 침묵하려 한다. 다만 나는 이제껏 개인에 대해 언급한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판단근거를 내세우면서도 우리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경험에 기대어 판단해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
성, 저 감동적인 지성이라면 어쩌면 확인해야 할 그 무엇을 진작부터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대와 시대가 남긴 폐허 그리고 그 시대가 흘린 피는 수많은 자명함들로 우리를 채우고 있다. 고대인들, 심지어 기계적인 우리의 시대와 가장 가까이 있는 과거의 사람들조차도 사회와 개인의 힘을 저울질해보고, 어느 쪽이 다른 한 쪽을 위해 봉사해야만 했는지 탐색할 수 있었다. --- p.146

모든 교회들이 우리를 적대시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바 아니다. 이토록 팽팽히 긴장된 마음은 영원을 회피하고 있고, 신을 섬기는 교회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교회든 할 것 없이 교회들은 하나같이 영원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행복과 용기, 대가나 정의 같은 것들은 그들 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차적인 목적일 뿐이다. 교회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바로 교의(敎義)로, 그것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숱한 관념들이나 영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게 꼭 맞는 진리란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것들 뿐. 나는 이러한 진리들과 떨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나를 근거 삼아서는 아무것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즉 정복자의 것이라고 영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이는 심지어 정복자의 강고한 주장들마저도 그렇다. --- p.153

부조리라는 희박한 공기 속에서 유지되는 저 모든 삶들은 그 삶들에 힘껏 생기를 불어넣는 어떤 심오하고 일정한 사유 없이는 지탱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도 핵심은 역시나 충직함이라는 어떤 특이한 감정, 바로 그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어리석은 전쟁들 와중에도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고 저마다의 임무를 완수해내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그 무엇도 모면하려고 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떤 형이상학적 행복은 세계의 부조리를 떠받치는 가운데 주어진다. --- p.161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주인공들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자문한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은 근대적이다. 즉 그들은 어리석은 짓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근대적 감수성과 고전적 감수성의 구별은 후자가 도덕적 문제들에 몰두하는 데 비해 전자는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통해 함양된다는 데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에서 문제는 극단적인 해결책들을 개입시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강력하게 제기된다. 실존이란 허망한 것이거나 ‘아니면’ 영원한 것, 둘 중 하나라는 식으로 말이다. 만일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검토에만 그쳤다면, 그는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 p.178

도스토옙스키의 대답은 굴종(屈從), 스타브로긴의 표현을 빌자면 ‘치욕’이다. 반면 부조리의 작품은 답을 내놓지 않는데, 바로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끝으로 한 가지 일러두기로 하자. 이 작품에서 부조리와 모순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의 기독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작품이 내세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은 기독교도이면서도 동시에 부조리할 수 있다. 또한 내세를 믿지 않는 기독교도들의 예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과 관련해, 앞선 여러 들을 통해 예감할 수 있었던 부조리의 여러 분석 방향들 중 하나를 명확히 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즉 분석은 ‘복음서의 부조리성’에 관한 문제제기 쪽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분석은 숱한 확신들이 있다고 해서 불신앙(不信仰)을 막을 수는 없다는 생각,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여러 가능성을 보이게 될 바로 그 생각을 조명해줄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우리는 저 숱한 갈래길들에 친숙했던 『악령』의 작가가 끝내는 완전히 다른 외길을 택하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 대한 창조자의 뜻밖의 대답, 도스토예프스키가 키릴로프에게 내놓은 대답은 결국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실존은 허망한 것이요, ‘또한’ 그것은 영원하다.”라고 말이다. --- p.190

미학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여기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어떤 명제를 두고 인내심을 갖고 조목조목 지식을 전달하거나, 쓸데없이 장황하게 예증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분명하게 내 의도를 설명했다손 치더라도, 오히려 정반대다. 경향소설, 즉 무언가를 증명해내려는 작품, 모든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작품은 대개가 ‘자기만족’에 심취한 어떤 사상으로부터 영감을 구걸한다.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진리, 사람들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작동되는 것이 바로 관념들의 조작인바, 이런 관념들은 사유와는 반대된다. 이런 부류의 창조자들은 수치스러운 철학자들에 불과하다. 내가 언급하고 혹은 상상하고 있는 창조자들은 이들과는 다른 명철한 사상가들이다. 사유가 사유 자체로 되돌아와 스스로를 반추하는 그 어느 지점에선가 그들은 한계에 봉착하고 필시 소멸할 테지만, 저마다 반항적인 어떤 사유의 명백한 상징들로 작품의 이미지들을 작성해 나갈 것이다. --- p.195

호메로스의 말에 따르면, 시시포스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현명하고 가장 신중한 자였다. 하지만 또 다른 설화에 의하면, 강도질이 전문이었다고도 한다. 나는 이 이야기들에 모순된 점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가 저승에서 쓸모없는 일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들에 대해, 의견들은 제각각이다. 우선 그는 신들에게 다소 경솔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신들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건은 아조프의 딸 에기나가 주피터에게 납치되면서 벌어진다. 딸의 실종에 아버지는 놀랐고, 시시포스에게 읍소했다. 이 납치 사건을 알고 있었던 시시포스는, 아조프로부터 코린트 성에 물을 대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대신, 그에게 신들의 비밀을 가르쳐주었다. 시시포스는 하늘에서 내리칠 벼락들보다도 물의 혜택을 더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저승에서 그 같은 벌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호메로스는 시시포스가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플루톤은 황량하고 적막해진 자신의 왕국의 광경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전쟁의 신을 급파해, 저 정복자의 손으로부터 죽음의 사신을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 p.201

우리는 시시포스가 부조리한 영웅임을 진작에 알아보았다. 그는 그 자신의 고뇌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느낀 온갖 정념들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멸시, 죽음에 대한 그의 증오, 삶에 바쳐진 그의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해낼 수 없는 일에 온존재를 다 바쳐야만 하는 저 형용할 길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다주었다. 그것은 바로 이땅에 대한 열정들 때문에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였던 셈이다. 저승에서의 시시포스에 관해서라면 아무것도 전해진 바 없다. 무릇 신화들이란 상상력으로 생명을 불어넣게끔 되어 있는 법. 다만 시시포스 신화에서는 거대한 돌덩이를 쳐들어 굴려 올리기 위해, 또 그 돌덩이가 수백 번이고 다시 시작되는 경사면을 힘겹게 타고 오르도록 떠받치기 위해, 잔뜩 긴장되어 있는 한 육체의 노력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 p.203

시시포스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까닭은 바로 이 되돌아 내려가는 순간, 이 잠깐의 휴지(休止) 때문이다. 돌덩이들에 바짝 붙여진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얼굴은 이미 그 자체가 돌이다! 나는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을 향해 다시 걸어 내려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본다. 가쁜 숨을 고르는 이 시간, 그의 불행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이 시간은 의식의 시간이다.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접어 들어가는 매순간,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자신의 바위보다도 더 강하다. --- p.204

카프카 예술의 핵심은 독자로 하여금 다시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데 있다. 작품의 갖가지 결말들 혹은 결말의 부재가 여러 설명 가능성들을 암시해주고는 있지만, 이 설명들이란 것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타당한 근거를 갖추려면 이야기 전체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읽어내지 않을 수 없다. 더러는 이중의 해석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어, 부득불 두 번 읽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저자가 의도한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에서 모든 것을 세세한 부분들에서까지 해석해내려 든다면 그건 잘못이다. 하나의 상징이란 항상 일반적인 것 가운데 있는 법이어서, 그에 대한 번역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예술가는 그 움직임만을 복원해놓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p.211

인간 조건, 모든 문학의 흔해 빠진 주제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준엄한 위대함과 동시에 근원적인 부조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 둘은 마치 당연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때를 같이해 나타난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이 둘은 우리 영혼의 방종과 육체의 덧없는 기쁨들을 갈라놓는 저 터무니없는 절연상태 속에서 나타난다. 측정할 수 없으리만치 엄청나게 육체를 초월하는 것이 바로 이 똑같은 육체에 속한 영혼이라는 사실, 여기에 바로 부조리가 있다. 이런 부조리를 형상화하려는 이가 부조리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면, 그것은 평행하는 상호대조의 유희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이렇듯 카프카는 일상적인 것을 통해 비극을, 그리고 논리적인 것을 통해 부조리를 표현해내고 있다. --- p.216

카프카는 자신이 마주한 신에게서 도덕적 위대함, 자명함, 선의, 일관성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정작 이는 신의 품안에 좀 더 제대로 뛰어들기 위한 것이었다. 부조리가 인지되고, 받아들여져, 인간이 부조리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그 순간부터, 부조리는 더 이상 부조리가 아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 조건의 제반 한계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희망보다 더 큰 희망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통상적인 견해와는 달리 실존사상이 실로 엄청난 희망, 다시 말해 원시 기독교 및 복음의 전파와 더불어 고대 세계를 고무시켰던 것과 같은 바로 그런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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