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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개인적인 한국사 2 (큰글씨책)

아주 개인적인 한국사 2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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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10*290*20mm
ISBN13 9788998015497
ISBN10 899801549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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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년 성종은 연이어 모친상까지 치르고 탈상한 최부를 정5품 사헌부 지평에 제수했고 『표해록』 저술을 치하하며 옷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관직에 복직한 그는 운신에 제약을 당했다. 제수받은 관직에 서경(署經·관원을 임명할 때 대간에게 동의를 구하던 일)이 떨어지지 않아 다른 관직으로 옮겨야 했고, 복직 이듬해에도 경연관에 합당하지 않다고 비난받았다.
--- p.32

18세기 일본은 『당토행정기』라는 이름으로 『표해록』을 출간했고 이후 미국, 중국에서도 번역 출판되기에 이른다. 심지어 현재 중국인들도 알기 힘든 명나라 시대의 사실과 언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니 가히 ‘중국 3대 여행기’에 포함될 만하지 않겠는가?
--- p.36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1494~1567). 경상북도 성주가 본관인 그는 조광조 문하에서 학업을 닦고 관직 생활을 한 16세기 인물이다. 그는 1551년 손자가 태어난 후부터 일종의 육아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6년 동안 기록되어 당시 사대부가의 ‘양아’ 즉 아동의 성장 과정과 질병, 교육을 생생하게 전하게 될 『양아록(養兒錄)』이었다.
--- p.38

1536년 24세로 16세의 덕봉과 혼례를 올린 미암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말년에 이르도록 부부간 깊은 정을 나누었다. 그는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던 덕봉을 학문적 동료이자 정신적 지주로 인정하고 의지했는데, 시는 글을 쓰는 것처럼 직설하며 지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조언에 시를 다시 짓기도 했고, 『유합(類合)』을 번역하거나 『신증유합』을 편찬할 때에도 자문을 얻었다.
--- p.55

미암은 홍문관 관리로 한양에서 4개월 홀로 사는 동안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은 뒤 이를 편지로 써 보답하기 어려운 은혜를 베풀었다고 자랑한다. 덕봉은 답장했다. 그는 그게 자랑할 일이냐 반문하면서, 곁에 친한 벗이 있고 아래로 가족과 종들이 있어 뭇사람이 보아 저절로 공론이 퍼질 텐데, 애써 편지를 보낸 것은 미암에게 겉으로 인의를 베푸는 척하는 폐단과 남이 알아주기를 서두르는 병폐가 있는 듯하다고 답한다.
--- p.60

향약 시행 논란 중에 자신의 자질을 묻는 선조에 대해서도 어떤 왕보다 뛰어났다는 말은 과하다며 직언을 날린다. 다만 영명하고 욕심이 적으니 일을 할 만한 자질이 있는데 정치를 하지 ‘못하는’ 것은 자질 때문이 아닌 정치를 하지 ‘않는’ 탓이라며 말을 잇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목조목 뼈를 때린다.
--- p.72

하루는 명 장수가 군량이 바닥났다는 핑계로 제독 이여송에게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그는 화를 내며 류성룡과 호조판서 이성중, 경기 좌감사 이정형을 불러들여 뜰 아래 꿇어 앉히고 큰 소리로 문책한다. 서애는 사죄하면서 제독을 진정시켰는데, ‘나라의 모습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하는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 p.87

전쟁 발발 일 년여 뒤인 1593년. 그가 묘사했듯이, 사족이든 상민이든 자루를 들고 지팡이를 짚은 채 이리저리 떠돌며 구걸하느라 문간에 서 있는 이들이 매일 15~16명에 이를 만큼 전쟁은 참혹했다. 구걸해도 먹을 것을 얻지 못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과 아이, 병들고 굶주리다 죽은 엄마의 시체를 묻을 힘도 연장도 없던 두 아이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 일 년이 지나면 걸인이 드물게 되는데, 상황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전쟁이 장기화하며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 p.99

유생 안의와 그의 동문 손홍록. 이들은 전주사고 실록의 안전이 걱정되어 가동 30여 명을 이끌고 경기전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당시 병사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가, 사고는 무방비 상태일 거라고 여긴 때문이다. 자그마치 805권 614책 47궤에 달하는 실록과 64종 556책 15궤의 중요 문헌 등 총 1,368권이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내장산으로 옮긴 후 안의는 이들을 지키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 p.111

실록이 황해도 해주, 강화도로 옮겨지는 와중에 안의는 병으로 사망했고, 손홍록 등은 1597년 전란(정유재란)이 다시 일어나 안주를 거쳐 평안도 묘향산 보현사에 이안될 때까지 어진과 실록을 배행했다. 묘향산에 보관되었던 실록은 전쟁 후 영변부(평안도 중앙지방) 객사로 옮겨 졌으며, 1603년 강화도로 이안되며 피란 길을 마친다. 십여 년 동안 무려 삼천 리의 피란 길.
--- p.113

1655년 하멜 일행 중 두 명이 땔감을 하러 간다 속이고 청 사신이 지나는 길에 숨는다. 수백 명 대열을 뚫고 사신이 탄 말고삐에 매달린 그들은 조선옷을 벗어버리고 네덜란드 복장을 보였고, 엄청난 소동이 벌어진다. 청 사신은 통역사까지 요구하며 그들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조선은 뇌물로 사건을 매듭지었는데, 청이 하멜 일행의 총이나 물건을 공물로 내놓으라 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고 하멜은 기록했다.
--- p.139

명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연호 대신 청 건륭제의 연호로 날짜를 표기한 것을 비판한 사대부들에게 “이미 망한 지가 백 년도 넘는 명나라 연호에 집착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말한 그. 문체반정을 일으킨 정조가 고문체로 반성문을 쓰라고 하자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반성문을 쓸 수 없다며 거부한 그. 그와 함께 또는 그를 이어 같은 꿈을 꾸었던 수많은 이들로부터 새로운 사회를 향한 당시 조선 지식인의 저항 섞인 열망을 찾는다.
--- p.162

“가장 통탄스런 것은 김학봉(김성일)의 『해사록』, 유서애(류성룡)의 『징비록』, 강수은(강항)의 『간양록』 등의 책은 두 나라에서 비밀을 기록한 것이 많은 글인데, 지금 모두 대판(오사카)에서 출판되었으니, 이것은 적을 정탐한 것을 적에게 고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국가의 기강이 엄하지 못하여 역관들의 밀무역이 이와 같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 p.172

양복을 입은 영접관과 서양의학을 배운 군의관 배치, 증기선과 기차를 이용한 이동에 서양식 건물 엔료칸의 연회는 서양식 만찬과 서양음악을 선보이며 진행되었다. 심지어 두 차례의 공식 연회와 여섯 차례의 사적 연회 및 관람 등 외부 활동 시 숙소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길을 일부러 다르게 해 더 많은 것을 보도록 연출했다. 수신사는 메이지 근대의 일본에 철저하게 노출되고 있었다.
--- p.180

한양 주재 모든 외국인은 인천 제물포로 대피, 함정을 대기시키고 사태가 악화하면 일본으로 철수할 참이었다. 그러나 안련은 대피 대신 홀로 남아 청일 양군의 부상병들을 돌보았고 결국 민영익의 치료에도 성공한다. 이에 진단이나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조선인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진료할 건물을 물색해 사용허가를 받기에 이른다. 1885년 조선인을 위한 최초의 현대식 병원 ‘광혜원’은 그렇게 출발했다.
--- p.192

1895년 존 번연의 『The Pilgrim’s Progress』를 순우리말로 번역해 『텬로력뎡(천로역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다. 한국 최초의 서양문학 번역 작품이었는데,…풍속화가 김준근에 의한 『텬로력뎡』 삽화의 등장인물들이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있듯이, 그는 신앙도 조선식으로 전하고자 했다. ‘여호와’ ‘신’에 해당하는 호칭에 대해 ‘천주’, ‘상제’를 주장한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순우리말이면서 사람들이 이미 많이 쓰고 있던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p.196

“(조선의) 통치방법은 구식이었고 국왕과 대신들은 서구 문명에 대해서 전혀 무지했으며, 무식하고 빈곤에 찌든 백성들은 나라에 대한 강한 충성심은 있었으나 새로운 환경하에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했고 비록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지식을 활용할 힘을 가지지 못한 실정이었다. 모든 부는 소수의 양반가가 장악하고 일반 백성들은 부지런히 일하여 이들 양반들을 부양하였으며 따라서 양반들은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던 것이다.”
--- p.208

“양주삼 씨가 들은 바에 따르면, 상하이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자기들에게 합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욕하고 있으며, 욕을 하는 한편으로는 내가 물질적으로 자기들의 대의명분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관계했던 대중운동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아니 단순히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맞설 수 있는 용기의 상실이라는 개인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내게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연약한 아이들이 있으며, 어머니와 아이들의 행복이 소중하다. 거의 절망적인 사업에 모험을 할 정도로 나는 영웅적인 인간이 아니다. 조선인들은 아직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독립 국가를 운영하고 유지해나갈 만큼 정치적으로 총명하지 못하다.”
--- p.219

‘일생을 두고 지금처럼 사랑할 것,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 별거하게 해줄 것.’ 나혜석이 김우영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내걸었던 결혼 조건들이다.…나혜석이 요구한 신혼여행지는 전라남도 고흥이었는데, 무려 사망한 전 애인 최승구의 묘가 있는 곳이었다. 남편 될 사람에게 전 애인의 무덤을 돌아보고 비석을 세워주자는 요구를 결혼 조건과 함께 내건 것은 지금으로서도 기가 막힌 내용일 수 있다.
--- p.229

딸 출생에 아쉬운 말을 들은 그녀는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과 모성애에 대해 고민하다, 모성애는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장시간의 육아를 통해 아이에 대해 혈육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출발하는 것이기에, 관계를 맺으며 쌓아가는 경험적 인간관계라고 말이다. 이로써 모성애를 본성으로 여겨 의무로 간주하던 당시 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모된 감상기」가 완성된다.
--- p.233

나혜석의 삶을 달리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체면과 안위 때문에 외면했던 김우영과 최린의 성품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 그릇을 가진 자들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나혜석의 방패가 되었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다고 정월을 사회 밖으로 내친 ‘한국’의 ‘시대’가 우울하고, 유감일 뿐이다.
--- p.240

이승만은 1908년 9월부터 박사 과정을 밟아 1910년 6월 학위를 취득한다. 그런데 석사 과정 수료와 석사학위 사이에 시간 공백이 있는 것은 당시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과 관련이 있다. 이승만은 이들 재판에 선임된 변호사들의 통역을 부탁받았지만 거절해 재미 한인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의 선택은 폭력적인 행위가 오히려 미국 내 여론을 악화시킬 것이라 생각했던 때문이고, 실제로 그의 하버드대 지도교수는 한국인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해 논문 심사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 p.259

11시 40분 도착한 곳이 대구라는 사실을 안 대통령은 평생 처음 판단을 잘못했다면서 대구까지 오는 게 아니었다는 자책감에 서울로 가자며 기차를 되돌리게 해 대전에 도착한다. 남편과 20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 이때처럼 회오와 감상에 젖은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기록한 푸랜시스카는,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원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라가 불행해진다는 생각에서 남하를 권했던 것이지 목숨이 아까워서 한 짓은 아니었다고 남긴다. 이승만이 후회하는 표정을 짓거나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말을 할 때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아내로서 외로움과 설움이 왈칵 몰려왔다는 심정도 함께였다.
--- p.292

“부산은 가장 어지러운 곳으로 변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재산에 관한 걱정이나 하면서 오직 나라 밖으로 떠날 마음뿐이다.……신문은 ‘전쟁을 망각한 부산?’이라는 제목하에 이들을 향해 ‘보이소, 피난을 왔습니까? 유람을 왔습니까?’하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선에서 혹한과 싸우며 목숨을 희생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의 고통이나 부상병들의 참상, 전쟁고아들의 애처로움은 아랑곳없이 유흥과 호의호식을 일삼고 있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 p.301

“모였던 데모 군중은 모두는 어리둥절하며, 떠들던 소리도 멈추고 순간 조용해졌다.…… 총알이 우리 옆에까지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순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지면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보더니 웅성대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몸을 더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총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p.315

양반이나 지주, 일제가 이전 세대의 타도 대상이었다면 학생들에게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관료 집단과 자유당 세력 등이 무너뜨려야 할 부패 세력이 되어 있었다. 이승만 정부의 교육하에서 자라난, 이른바 ‘이승만 키즈’라 불릴 수도 있을 학생들은 결국 이승만 정부가 제시한 자유민주주의 기치 아래 이승만 정부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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