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늘 벅차고 흥분되게 만드는 테마 중 하나는 세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다 결국 자신의 길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주위의 평가와 상식에 연연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범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굳건하게 밀고 나가는 강한 정신은 그 무엇보다도 스펙터클하게 다가온다.
『생명의 느낌』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저자 이블린 폭스 켈러는, 1983년에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바바라 매클린톡의 일대기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노벨상을 받은 한 여성과학자의 성공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여성,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끄는 패러다임 등 복잡다난한 과학사적 맥락에서 그녀의 업적이 지니는 의미를 탐구하려는 태도에서 비롯한 성과이다.
`멘델의 법칙'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 바바라 매클린톡이 태어나기 이태 전인 1900년이었고, `유전학'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진 것이 1906년이었으니 매클린톡은 유전학과 함께 성장해온 셈이다.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실행하고, 혼자서 조율하는” 능력이 남달랐던 그녀는 아이들이 지닌 잠재력이 발휘되도록 북돋아주는 부모님의 지원으로 1919년에 코넬대학교 농과대에 진학한다.
첫 강의였던 동물학 개론 시간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 거의 황홀경에 빠졌었다고 기억하는 이 명석한 아가씨는 코넬농과대학에서 옥수수를 통해 생명의 신비를 하나하나 벗겨나간다. 1931년 같은 과 후배였던 해리엇 크레이튼과 함께 공동 발표한 「옥수수의 교배 실험에서 세포와 유전물질의 상호관계」라는 논문에서, 생명체의 생식 세포가 생성되는 동안 유전 정보가 교환되는데, 바로 이때 염색체가 교환됨을 규명함으로써 그녀는 미국 유전학을 선도하는 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후 그녀는 영예로운 국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된 1944년에 문제의 `자리바꿈'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생물학자들에게는 산만하고 조악하게 보였던 이 개념은 `미친 소리'로까지 치부되며 무시당하지만, 그녀는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은둔자 같은 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온다. 결과는? 물론 그녀는 옳았고, 이어 노벨상과 맥아더상 수상, 록펠러 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의 명예박사학위 헌정, 여러 재단에서 주는 상금.
촌철살인의 말솜씨로 주변 사람들을 종종 당혹스럽게 할 만큼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그녀의 빛나는 업적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에 접근하는 매클린톡의 태도이다. 다른 동료들보다 30년이나 앞서서 유전학의 신비에 더 깊고 멀리 빠져들 수 있었던 비결은 “대상이 나에게 와서 스스로 얘기하도록 마음을 열고”, “생명에 대한 느낌을 개발”하며, “생명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깨우치고, “생명의 각 부분을 빠짐없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성과 더불어 오감을 활짝 열고 온전히 생명에게 집중하는 겸허한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남자 과학자들이 자연에 대해 가졌던 논리, 약육강식과 정복으로 대표되는 힘의 논리와는 여러모로 차별된다.
몰지각한 사람들과 세상의 편견 속에 천덕꾸러기로 묻혀 살다가, 드디어 진실과 용기가 빛을 발하며 지난 세월을 보상 받는 미운 오리 새끼나 신데렐라 같은 동화 정도로 간단히 얘기될 법하기가 십상인 매클린톡의 일대기를 저자는 매클린톡과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 여기에 생물학사 전반을 짚어보고 아우르는 지성을 가세하여, 굵직한 감동을 주는 한편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그 감동은 독자들에게, 복잡다단한 맥락 속에 얽혀 있는 한 개인적 삶이 드러내는 학문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개인과 집단간의 부단한 상호 관계에 대한 성찰을 강하게 제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