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다른 이들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엄마를 선택한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녀가 가진 장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일 테니까!
일단 그녀는 누구보다 현명하다. 그녀를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정답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엄마는 쇼핑왕이다.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보세 옷가게 등 어떤 장소에 가면 3초 안에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골라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빠와 나는 엄마랑 쇼핑을 갈 때마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내갑이 언제 자연스럽게 털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다. 내가 내 물건을 고르는 동안 그녀는 매의 눈으로 빠르게 자신의 물건을 고른다. 내가 물건을 골라서 계산하려는 순간 엄마는 내 옆에 다가와 물건을 슬며시 내민다. 계산을 거부할 수 없을 만한 것들을 골라오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는 일은 애매하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물건을 득템한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 과정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래도 엄마는 선택에 후회하는 법이 없다. 그것이 놀라운 점이다.
--- pp.21~22
요즘 내가 다시 일을 다니며 평소보다 더 지쳐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엄마가 물었다.
엄마, “쉬다가 나가니까 더 힘들지?”
나, “다 그렇지. 일하는 게 좋기만 한 사람이 어딨겠어. 그래도 하는 거지.”
엄마, “난 좋아서 하는데?”
나, “좋아서 한다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우리 아침 챙겨주고, 집안일 때문에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데, 정말로 즐겁다고?”
엄마, “응. 난 진짜 좋아서 하는데?”
나, “그게 왜 좋아?”
엄마 “너랑 아빠랑 밥 챙겨 먹이고 너네 챙겨주는 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역시 답은 사랑이었구나. 사람이 그 일을 진정 좋아하게 되려면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는구나. 나의 노동으로 인해 행복해질 사람들을 생각해야 그 일이 즐거워지는구나. 엄마와 그 찰나의 대화를 통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의 대화는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가끔 툭하고 깨달음을 준다. 나는 지금 나의 직업을 꿈꿀 때 그 일을 하며 행복해질 ‘나’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치자 내 길에 대한 의심부터 들었다.
--- pp.54~55
아빠, 우리 아빠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번에 장점을 말하기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말씀하실 때 늘 얄밉게 한 마디를 덧붙일 때가 많다. -(중략)- 그렇지만 아빠는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성실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하시다. 어릴 때는 성실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 덕목인 줄 몰랐다. -(중략)- 그런 성실함으로 우리를 키워온 그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버텨냈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이 한 사람을 그렇게도 지독히 성실하게 만들었나 보다. ‘내가 노력하면 가난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애절함이 그 시대 어른들을 가만히 쉬도록 두지 않았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그래, 가족을 먹여 살린 그 성실함이 앞에 말한 단점들을 다 상쇄시키는 ‘치트키’인 것 같다. 앞에 했던 욕은 취소다.
--- pp.59~62
어느 날은 남자 친구에게 어떤 풍경 찍는 것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다. 남자 친구는 오후 서너 시의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당시 나는 어리둥절했다. 열두 시나 세 시나 풍경이 뭐가 다른 거지? 둘 다 쨍쨍한 시간 아닌가? 그래서 왜냐고 물었다. 남자 친구는 해가 정점에서 조금 내려왔을 때 자연을 비추는 그 모습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 시간의 빛의 색이나 그 빛에 비친 나뭇잎을 보면 다르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도 그 느낌을 알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풍경을 나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한 시의 풍경과 세 시의 풍경이 다름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확실한 그 느낌은 잘 모르지만 가만히 보다 보니 이 풍경은 이 풍경대로, 저 풍경은 저 풍경대로 다 좋아져 버렸다. 그의 자연 사랑은 엉뚱한 지점이 있다.
--- p.88
또 J선배는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일에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싸웠다. 부당한 일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잘못한 일에는 그 상대가 선배이더라도 찾아가서 그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 점들이 멋있었다. 나는 직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수많은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서 좋은 어른이란, 좋은 선배란, 좋은 후배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 알아가는 중이다. 그들의 좋은 점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직장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중이지만 동시에 어른이 되는 방법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 p.113
주말에 거실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그 풍경만으로 벅찰 때가 있었다. 그리고 꺄르르 웃는 사람들의 소리. 집 앞 작은 공원은 정말 규모가 작아 아주 소수의 사람만을 허락한다. 시간대별로 몇 명의 사람들만이 이 공원에 드나든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벤치에서 책을 읽는 엄마의 모습, 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견주들, 아침마다 작은 공원을 한 바퀴씩 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소수의 사람만이 이 공원을 알고 이 풍경을 즐긴다. 평화로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가 된다.
“거, 집주인 양반, 보는 눈 있구만.”
--- pp.180~181
그런 나에게 가르침을 준 책이 있다. 심윤경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라는 작품이다. 작가님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렸을 적 할머니의 육아 방식을 떠올린다. 그런 기억들을 기록한 글이다. 할머니는 거창한 육아 방법을 구사하진 않는다. 다만 그만의 조용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작가를 돌봐왔다. 특히 할머니가 아이를 돌볼 때 구사하셨던 다섯 가지의 언어가 인상적이다.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쨔” 이 단어들이다.
“그려(그래)”와 “안 뒤야(안 돼)”는 가능한 것과 안 되는 것들을 구분하는 말이다. 이때 그려의 비율이 안 뒤야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에게 긍정과 부정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 주지만 아이가 해도 되는 행동의 허용치가 넓은 것이다. “뒤얐어(됐어)”는 괜찮다는 의미이다. 아이가 깽판치더라도 할머니는 “됐어”로 마무리한다. 엄한 불호령은 없다. 아이가 사고치더라도 관용을 베푸는 말이다.
--- pp.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