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나란 무엇인가? 진짜 보고 만질 수 있는 게 나인가? 아니면 가상활동에서 만든 캐릭터가 나인가? 보수적인 입장이라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과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경험하는 것이 나를 만들고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실재의 만남과 실재의 나를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또한 가상에서의 만남과 가상의 나 또한 나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는 실재의 만남보다 가상의 만남과 활동이 더 많이 나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이후의 세대는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일상이 되며, 디지털을 통해서 하는 친교 모임이 더 자연스러운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정신과적 진단 기준이 바뀔 수도 있다. 대인관계기피증, 사회공포증은 더 이상 질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1장 사랑 - 사이버 세계의 나는 나인가?, p. 17∼18」중에서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우리에게 슬픔을 주는 이유는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가족들로부터 겪은 소외감과 외로움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외모만 벌레로 변했을 뿐 내면은 여전히 부모님의 아들이자 여동생의 오빠인 그레고르임에도 가족들은 그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벌레 취급을 했다. 왕따도 마찬가지다. 소극적이든, 직접적이든 왕따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왕따를 당하는 사람을 향한 비난이 자신들의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상대의 본질과 진짜 모습을 무시한 채 징그러운 벌레 취급을 하는 것과 같다.
---「제1장 사랑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p. 52∼53」중에서
정신의학과에 대해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점이 있다. 정신의학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의술인데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의사들이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들은 마음을 시각화해서 볼 수도 없고 정량화할 수도 없지만 ‘언어’라는 좋은 도구를 이용해서 최대한 마음이라는 것을 구체화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환자들의 마음을 최대한 그들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살펴보고 진단하고 치료를 한다. 또한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로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은 불편한 마음이 신체로 표현되는 특징을 잘 드러내는 속담이다. 이를 정신과적 용어로는 ‘신체화(somatization)’라고 한다. 예를 들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두통이 심해지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증상, 불편했던 사람과의 약속 날 아침부터 배가 아픈 증상이 나타나는 것 등등이다. 이러한 증상은 내가 의도적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모르는 의식, 즉 무의식의 작용으로 인해서 신체가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꾀병’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꾀병은 아니다. 하지만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자해’다.
---「제2장 우울감 - 자해의 심리적 원인, p. 66∼67」중에서
2010년대 후반에 신조어로 유행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문헌에서 사회적 혹은 심리적 현상으로 사용되긴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정신질환용어는 아니며,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자면 ‘타인을 세뇌(brainwashing)하려는 의식적인 의도’로 볼 수 있다. 가스라이팅이 나타나는 사회적 영역은 아주 다양하다. 주로 긴밀한 정서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자녀와 부모, 부부, 연인 사이에 나타나 정서 및 신체적 학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불법 이민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착취할 목적으로 고용한 사업장들, 사이비 종교, 테러집단 등에서도 나타난다. 가스라이팅은 가스라이팅을 하려는 가해자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피해자가 있는데 둘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가해자는 둘 사이 관계에서 우위의 위치에 있으려고 하며 장기간 상대방을 조종하고 독점적인 관계를 원한다. 가해자는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조종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으며 심지어 그런 행동이 상대방에게도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병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나 사이코패스,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피해자는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으며, 상대방에게 의존적이며,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갖고 있고,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자신을 통제해주는 가해자에게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고 가해자를 떠나면 자신의 존재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공포감을 갖고 있다. 피해자는 병적인 의존성 성격장애나 회피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제2장 우울감 -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우리 곁의 폭력, 가스라이팅, p. 95∼96」중에서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조건, 다른 행복의 기준들이 있기에 저마다 살아야 할 이유도 다르다. 우리 인간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다. 이미 너무 정교화되고 분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고, 자고 일어나면 다른 세상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내 뿌리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 가족 안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신과 매일 대면하는 나, 자연 속에서의 나, 내 속의 나’가 있다.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너무 쉽게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자신만의 보석을 갖고 있다. 유머, 인내, 관용, 솔직함, 호방함, 창의성, 꼼꼼함 등등 수많은 인간의 속성이 각 개인들에게 해당되는 보석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해보자. 기나긴 삶의 여정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진짜 기준을 찾아보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다면 먼저 그 터널을 인식하고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찾아서 한시라도 빨리 터널을 빠져나와야 한다.
---「제3장 외로움 - 행복한 삶을 위한 진짜 조건, p. 127∼128」중에서
은둔형 외톨이들의 개인적 심리적 요인을 살펴보면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상당히 크며, 대인관계에서 혹은 외부환경에서 부닥치는 거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런 좌절감에서 회복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외래에서 은둔형 외톨이들을 상담해보면 안타까울 때가 참 많다. 청소년기 혹은 이른 성인기에서 그들이 겪은 따돌림, 과거 가족들과의 갈등의 경험들은 이후의 삶과 정서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친다. 수년 전에 입었던 정신적 상처들은 보이지 않는 큰 염증이 되어 현재를 살아갈 때도 그들의 마음을 좌지우지한다. ‘저 사람들에게 내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또 내가 우습게 보여서 그들이 나를 피하는 건가?’ ‘내가 뭘 잘못했길래 계속 나를 피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그들의 머릿속에 맴돌아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가도 그들이 너무 경계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여 다가갔던 사람들이 오히려 오해하고 그들을 피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다시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확신하게 된다. ‘맞잖아! 나를 피하고 있어. 나는 재수 없는 인간인가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고정관념으로 믿어버리고 아예 대인관계를 맺을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자신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움받을 존재라고 혼자서 결론 내리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악순환으로 그들은 점차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제3장 외로움 - 은둔형 외톨이가 고립을 선택하는 이유, p. 141∼142」중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내용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주인공 헨리 지킬 박사가 왜 이중인격으로 변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젊고 능력 있는 의사였던 헨리 지킬에게는 가슴 아픈 ‘가시’ 하나가 있었다. 바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였다.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아버지가 정신병을 앓게 되면서 점차 인격이 황폐화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난폭하게 만드는 어두운 부분들을 제거하면 고결하고 선했던 아버지로 되돌아오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연구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구원하기 위해 임상실험을 해야 했던 그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되고, 헨리 지킬과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두 존재로 분리되어 선과 악의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악의 힘을 이길 수 없었던 그는 자살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이 소설은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극단적으로 대비해 보여준 소설이지만,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보면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와 무의식과의 갈등에 대해 묘사한 소설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무의식을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제4장 분노감 - 우리 내면의 지킬과 하이드는 자아와 무의식, p. 156」중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의 출발은 사실 내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이 생기는 사람들의 특징은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함에도 쉽게 비약해서 결론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을 둘러싼 실제 상황이 감정적으로 용납할 수 없고,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가상의 현실이나 믿음을 만들어서 견디려는 무의식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부정적인 결론의 바탕에는 살아오면서 겪은 부정적인 경험이 누적되어 있다. 정신분석적으로는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은 자기애적 욕구의 좌절에서 오는 실망감이며,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덮어보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피해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잘못이나 타인의 조그만 지적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단점, 실패 등과 같은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남 탓으로 돌린다. 결국 타인을 향한 비난은 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느껴지는 굴욕감, 수치감, 손상된 자존심에 대한 방어인 투사인 것이다. 그 예가 바로 누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의 반영이다.
---「제4장 분노감 -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한 것이 많기 때문일까?, p. 174∼175」중에서
나는 정신과에 내원하는 ‘어른 아이들’에게 반드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러면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 ‘책임지는 것’ ‘스스로 결정하는 것’ 등등의 대답이 나온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이 고(苦)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장과정에서 행복한 삶이 인생의 최고 목표인 것처럼 가족들로부터, 사회로부터 세뇌를 당한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 열심히 달려간다. 높은 성적, 높은 수입, 많은 재산, 빛나는 명예, 화려한 미적 기준 등등….하지만 대부분 행복의 기준을 달성해서 기쁘다가도 어느샌가 나보다 더 높은 수준의 행복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치고, 잠시 기뻐하던 마음이 어느새 절망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인생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기쁘기만 한 삶은 거짓이고, 고통이나 고난에 대해 정직하게 마주하고 슬픔을 통과한 후에 또 다른 차원의 깊어진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는 것이 수치심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것이며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생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부정한 채 자연스럽게 나아가야 할 인생에서 그 한가운데에 멈춰 있는 것인지 모른다. 최적의 좌절은 우리를 건강하게 어른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주는 대상이 내 삶에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런 대상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의 삶은 멈춤이 아니라 좌절을 겪으며 새롭게 성장하며 끊임없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제5장 거절감 - 삶의 무게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p. 217∼218」중에서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의 발달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페르소나의 발달에서 그친다면 인간 전체의 발달이라고 볼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자존감이 형성되다가 말았다고 볼 수 있다. 자존감의 온전한 형성을 위해서는 내적인 인격의 발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봄으로써 내적인 욕망과 갈등을 인지하고 구별하면서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소망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작업은 쉽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않으며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평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로 살아가는 것은 큰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자존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완성된 그림이나 목표가 아닌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평생 지속해야만 한다.
---「제6장 집착 ? 단단한 자존감 만들기, p. 235∼236」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