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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

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

[ 일반판 ]
진주 | 로코코 | 2014년 01월 2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6 리뷰 16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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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490g | 133*200*30mm
ISBN13 9788925799650
ISBN10 892579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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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보니 어때요? 생각했던 것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슬퍼요?”
데크의 난간에 기대선 체이스가 진중하게 물었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수안은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만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너무 슬퍼 말아요. 이 바다, 마냥 서럽지만은 않을 거예요. 저렇게 따뜻하게 안아 주는 해안선이 있으니까.”
침묵 뒤에 숨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체이스가 말했다. 깜짝 놀라 수안은 하마터면 손에 쥔 머그잔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그게, 무슨…….”
설마 했다. 설마 당신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까. 그러나 체이스는 명료한 말로 마음의 빗장을 부서뜨렸다.
“소리 없이 우는 바다를, 해안선이 꼭 안아 주는 형상이잖아요.”
앵강만의 정경을 살피는 체이스의 눈길이 가없이 따스하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수안은 두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사실 리조트가 아닌 곳에서 당신을 본 적 있어요. 물미 해안이라는 곳에 있는 카페였어. 해안 절벽 위에 지어진, 하얀 지중해풍의 건물.”
커피로 목을 축인 체이스의 목소리가 한결 낮고 깊어졌다.
“미리 한국에 와 여행을 하던 길이었는데,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당신을 봤어요. 테라스 자리에 앉아 있던,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 다가가 말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지. 여행길에, 장난처럼 만나 볼 여자가 아닌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여자를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났어요. 꼭 운명이니 인연이니 하는, 그런 것처럼.”
수안의 얼굴은 점차 사색으로 질려 갔다. 그날 자신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도, 가슴도 텅 비어 버린 날이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그건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손끝에 인 거스러미처럼 불편한 저 남자에게는 더더욱.
“이 정도면 이유가 돼요?”
체이스는 성큼 한 걸음 내딛어 수안과의 거리를 좁혔다.
“내가 이수안이란 여자에게 다가서는 이유. 여자 밝히는 놈이 재미 삼아 거는 수작이 아니라 당신이란 여자를 알고 싶은 진지한 관심이라면, 당신도 날 진지하게 생각해 줄까?”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워질수록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커졌다.
다리의 힘이 풀려 버릴 것만 같은 위기에서 수안을 구해 준 건 콕핏에서 들려온 무전 소리였다. 얼굴을 찌푸린 체이스가 서둘러 플라이브리지로 올라가고 수안은 선미에 홀로 남겨졌다.
하얀 달이 구름 뒤로 자취를 감추자 은빛으로 난만하던 밤바다도 돌연 어둠에 잠겼다. 그 막막한 어둠 속에서 수안은 흐트러진 숨결을 골랐다. 심장의 고동 소리 사이로 체이스와 해경이 주고받는 무전 소리가 흘러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은 구름을 빗겨 났다.
“가까운 곳에 정박해야겠어요.”
다시 시작된 잔물결의 반짝임을 따라 체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안은 겨우 고개를 들어 콕핏을 올려다보았다. 오토파일럿을 해제한 듯 체이스가 다시 휠을 잡고 있다.
“새벽 3시까지는 항해 금지라네요.”
체이스가 무심히 던진 말에 수안의 표정이 아득해졌다.
사방이 트인 바다를 항해하고 있음에도 꼭 밀실에 갇힌 기분이다. 형언하기 힘든 긴장과 떨림을 야기하는 남자와 단둘이, 달아날 곳 없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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