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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윤혁 | 신세림 | 2023년 05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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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148*210*20mm
ISBN13 9788958002635
ISBN10 895800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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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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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가 죽은 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상우 어머니는 학교에 오셔서 선생님께 상우 사진을 졸업앨범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난감해하시자, 상우 어머니는 ‘상우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친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게 해 달라’고 사정하셨다고도 했다. 졸업앨범을 펼쳐 보니 과연 상우 사진이 우리와 함께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찍지 못한 졸업 사진」중에서

등굣길,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정도 갔을까.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비집고 안내양 옆 버스 문 쪽으로 정신없이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 누군가 하며 내 손을 잡은 이를 쳐다보니 형관이었다. 나보다 한 학년 위인 형관이는 명문 상업고등학교 교모를 쓰고 있었다. 순간, 나는 표현하기 힘든 죄책감 때문에 온몸이 마비된 듯 멍하니 그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따뜻한 손」중에서

열차 안에서 무료하게 광경을 지켜보던 승객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청년이 점퍼를 땅바닥에 내던진 후 스웨터와 상의 속옷까지 벗자 아주 큼직한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차장이 저지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바지와 팬티까지 벗었는데 여자였다. 당황한 차장은 무전기로 근처의 역무원을 불러 담요로 상대의 나신을 감싼 채 역 구내로 강제로 데리고 갔다. 잠시 후 차장이 돌아오자, 열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발했다.
---「어른이 되기 위해 떠난 여행」중에서

멀리서 붓다가 오는 모습을 본 그는 붓다도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고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99명을 죽인 전력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도 걸어가는 붓다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붓다를 향해 소리쳤다.
“멈추어라. 사문. 멈추어라. 사문!”
그런데 붓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멈추고 있다. 너야말로 멈추어라.”
앙굴리마라는 그 뜻을 붓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사문이여, 당신은 길을 계속 가면서도 자신이 멈추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멈추어 섰는데도 당신은 ‘내가 멈추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문이여, 나는 그 의미를 묻고 싶다. 어찌하여 당신은 멈추고 있으며, 나는 멈추지 않고 있는가?”
붓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앙굴리마라여, 나는 생명을 해치려는 마음을 버리고 멈추어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생에 대한 자제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어 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살인자 앙굴리마라」중에서

나는 친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포옹하고 악수했는데 감회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게 누구야? 인마! 반갑다. 아, 이십 년만이네…….”
그런데 밤이라서 그랬는지 머리에 포마드를 짙게 바르고 청바지를 입은 낯선 친구는 전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었다. 어색함을 감추려 나는 그에게 다가가 힘차게 포옹하고 무뚝뚝하게 악수했다. 그런데 순간, 친구들은 나의 행동을 모두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뿔싸! 담임선생님이었다. 밤이어서 그랬는지, 모임을 기다리다가 마신 소주 때문인지, 많이 늙으셨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선생님을 몰라보고 내가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 것이었다.
---「선생님과의 재회」중에서

물자가 귀하고 가난했던 그 시절,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 때마다 목욕하는 일이 큰 숙제였는데 아버님은 자신이 근무하는 철도청 가야역 직원 목욕탕에서 아들 세 명을 씻기셨다. 우리 형제는 역사驛舍 옆의 가야역 직원 목욕탕에 몸을 씻으러 갈 때마다 그곳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고, 목욕탕 안에서는 여러 철도원의 따가운 시선을 받곤 했다. 그 순간은 흡사 거지 취급을 받는 느낌이어서 ‘죽어도 그곳에 목욕하러 가지 않겠다.’라며 앙버티곤 했던 기억이 낡은 사진처럼 남아 있다.
---「지금도 사랑 속에서」중에서

잠시 주저하던 그는 예의 쓰레기 공터로 안내했는데 병무청 뒤편의 그곳이었다. 집이란 다름 아닌 크고 작은 두 대의 고물 버스 차체車體였다. 버스 문이 대문이었고 모든 세간과 집기를 넣기에는 버스 안이 좁아서였는지 장독 단지며 솥 따위의 살림 도구들은 대문 밖 풀밭 맨땅에서 천대받고 있었다. 큰 버스에는 부모님이, 작은 버스에는 그와 동생, 형 등 삼 형제가 기거하는 듯했다. 폐차 두 대가 놓인 곳은 잡초가 드문드문 난 모래땅으로 쥐들이 이곳저곳에서 달리기 대회를 하고 있었다. 막상 그곳에 당도한 나는 당혹스럽기 시작했다.
---「전리단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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